[include(틀:후한서)] [목차] == 개요 == 劉昆 (? ~ 57) [[후한]] 초의 인물로 자는 환공(桓公). == 생애 == [[연주(중국)|연주]] 진류군(陳留郡) 동혼현(東昏縣) 사람으로 양효왕(梁孝王) 유무(劉武)의 후손이다. [[평제]] 때 《시씨역》을 공부했고 악기를 연주해 [[왕망]]이 집권할 때는 제자가 5백명이 넘었다고 한다. 봄과 가을에는 연회를 베풀어 활쏘기를 보여주었고 예절을 올렸다고 한다. 왕망은 이런 유곤을 조정에 거역할 마음이 있는 것으로 보고 유곤과 유곤의 가족들을 수감했다. 이후 왕망이 죽고 유곤은 풀려나 면직 되었으며 이후 난이 일어나자 독산(犊山)으로 피난을 갔다. 건무 5년([[29년]]), 유곤은 효렴(孝廉)으로 추천 되었으나 유곤은 가지 않고 강릉현(江陵縣)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이에 [[광무제|유수]]는 소식을 듣고서는 유곤을 강릉령(江陵令)에 임명했다. 당시 강릉현에는 여러해를 거쳐 화재가 발생했는데 유곤은 이에 비를 내리게 하여 대처했다고 한다. 이후 유곤은 의랑(議郎)에서 시중(侍中)에 홍농태수(弘農太守)로 승진되었다. 이번에는 호랑이가 재난이 되었는데 백성들이 이 때문에 교통이 불편해 고통받자 유곤은 3년 동안 선정을 베풀어 평안하게 하니 호랑이들이 작은 호랑이를 업고 다리를 건너 갔고 광무제는 이것에 의아 했다고 한다. 건무 22년([[46년]]), 유곤은 광록훈(光禄訓)으로 임명되었다. 조서에서 유곤에게 물으니 > 강릉에서 바람을 맞아 불을 껐다가 홍농태수가 되어 호랑이가 북으로 건넜는데 도대체 무슨 덕정으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 ---- > 您以前在江陵,反風滅火,後來當上弘農太守,老虎北渡過河,到底是實施怎樣的德政導致這類事情的發生 그러자 유곤이 대답하니 >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 > ---- > 這只是偶然的巧合罷了 이 말을 듣고 광무제는 윗사람은 이렇게 말을 한다면서 감탄 했다고 한다. 광무제는 유곤을 황태자를 비롯해 수십 명의 제왕(諸王), 소후(小侯)의 스승을 맡겼다고 한다. 건무 27년([[51년]]), 기도위(騎都尉)에 임명되었고 건무 30년([[54년]]), 나이가 들어 귀향을 요청했고 유곤은 천석의 녹봉으로 일생을 바쳤다. 중원 2년([[57년]]), 사망하니 광무제가 매우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아들로는 유일(劉軼)이 있는데 자가 군문(君文)으로 유일 또한 관리를 지냈으며 유일의 열전은 후한서 유곤 열전에 같이 실려있다. 성종실록에 따르면 대사헌(司憲府大司憲) 박건(朴楗)이 상소를 올릴 때 유곤과 호랑이의 일화가 언급된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유곤, version=17, paragraph=3)] [[분류:후한의 인물]][[분류:57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