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繼春 (? ~ 1862년) [목차] == 개요 == [[조선]] 후기의 인물. [[임술농민봉기]]의 시초인 진주민란의 주도자. == 생애 == 잔반 출신으로 본래는 진주 원당면 출신이었으나, 35세 때 어머니를 따라 축곡면 내평촌에 거주했다. 진주에서 환곡을 거두면서 아전들이 횡령하고 주민들에게 협박해 수탈하자 1862년 1월 29일에 유계춘은 환곡 보충을 위해 본래 정해진 금액 이상으로 징수하는 도결, [[오가작통]]에 따른 가호의 총수에 따라 환곡을 분배하는 통환의 부당함을 알리고, 철회를 위해 수곡장시에서 논의하자면서 통문을 돌렸다. 2월 6일에 수곡장시에서 3백여 명을 모아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 고을의 폐습을 고칠 수 있다면서 맹세하자며 연설을 했다. 마을의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유계춘 이외에는 대부분 정씨나 강씨였고 그 중 강쾌가 그의 이종사촌이었으므로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상당수가 유계춘과 친척 관계로 추정되고 있다. 수곡장터에서 한 연설로 인해 체포되었다가 2월 13일에 집안 제사를 이유로 풀려났다가 14일에 군사를 일으켰고 탐관오리와 토호 세력 등을 공격했으며, 23일에 해산했다가 체포되어 다른 주모자들과 함께 5월 30일에 처형되었다. [[분류:조선의 인물]][[분류:1862년 사망]][[분류:살해된 인물]][[분류:진주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