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남진 황후)]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91531 0%, #10275d 20%, #10275d 80%, #091531)" '''{{{#fff 남진의 황후[br]{{{+1 宣皇后 | 선황후}}}}}}'''}}} || || '''{{{#fff 시호}}}''' ||<(> 없음 || || '''{{{#fff 성}}}''' ||<(> 유(柳) || || '''{{{#fff 휘}}}''' ||<(> 경언(敬言) || || '''{{{#fff 생몰}}}''' ||<(> 531년 ~ 615년 || ||<|4> '''{{{#fff 재위}}}''' ||<:> '''{{{#fff 남진의 황후}}}''' || ||<:> 568년 ~ 582년 || ||<:> '''{{{#fff 남진의 황태후}}}''' || ||<:> 582년 ~ 589년 || || '''{{{#fff 배우자}}}''' ||<(> [[선제(남진)|선제]](宣帝) 진욱(陳頊) || || '''{{{#fff 부친}}}''' ||<(> 유언(柳偃) || || '''{{{#fff 모친}}}''' ||<(> 장성공주(長城公主) || [목차] [clearfix] == 개요 == [[남북조시대]] [[진(육조)|남진]]의 황후로 휘는 경언(敬言). 남진의 마지막 황제인 [[후주(남진)|후주]] 진숙보의 모친이기도 하다. 진나라가 멸망한 뒤에 사망하여 시호는 없으며, 선황후(宣皇后)는 [[선제(남진)|선제]] 진욱의 시호를 중복한 존호이다. == 생애 == 본관은 하동군(河東郡) 해현(解縣)이다. 부친인 유언(柳偃)이 [[양(남조)|양나라]]의 초대 황제인 [[무제(양)|무제]]의 딸 장성공주(長城公主)에게 장가를 들었기에 유경언은 양무제의 외손녀가 된다. [[후경]]이 반란을 일으키자, 유경언은 아우인 유반(柳盼)과 함께 강릉으로 가서 [[효원제]]에게 의탁하였고 원제는 유경언과 유반을 후대하였다. 이후 진욱이 강릉으로 오자, 원제는 유경언을 진욱에게 시집 보냈다. 553년, 유경언은 강릉에서 진숙보를 낳았다. 554년, 강릉이 함락되고 진욱이 서위로 끌려가자, 유경언은 진숙보와 함께 양성(穰城)에 남았고 561년에 진나라로 돌아와 안성왕비(安成王妃)가 되었다. 568년 진욱이 황제로 즉위하니 이가 제4대 황제인 [[선제(남진)|선제]]이다. 유경언은 황후로 책봉되었지만 선제는 오흥군 출신의 전씨(錢氏)를 귀비로 삼고 전씨에게 총애를 주었다. 582년, 선제가 사망했다. 이때 진숙보의 이복동생인 [[진숙릉]]이 반란을 일으켜 진숙보를 살해하려고 했지만 유경언과 진숙보의 유모인 오씨(吳氏)가 진숙보를 보호하였기에 진숙보를 죽이지는 못했다. 진숙보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유경언은 황태후로 높여졌고 홍범궁에 거처하였다. 이때 진나라는 안으로는 진숙보가 진숙릉에게 입은 상처가 심해서 정무를 볼 수 없었고, 밖으로는 회남 일대를 상실한 상황이었다. 결국 정무를 볼 수 없는 진숙보를 대신해서 유경언이 정무를 처리했고 진숙보의 병이 나은 뒤에는 진숙보가 직접 정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589년, 진나라가 멸망한 뒤 유경언은 장안에 거처하였고 615년 낙양에서 사망하여 [[북망산]]에 안장되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진서(남조역사책))] [include(틀:남사)] [[분류:남북조시대/황후]][[분류:531년 출생]][[분류:615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