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fff {{{+1 윌리엄 존스}}}[br]Sir William Jones [[왕립학회|FRS]]}}}''' || ||<|2> '''{{{#fff 출생}}}''' ||[[1746년]] [[9월 28일]] || ||[include(틀:국기, 국명=그레이트브리튼 왕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 ||<|2> '''{{{#fff 사망}}}''' ||[[1794년]] [[4월 27일]] || ||[[영국 동인도 회사령 인도|[[파일:external/www.rumormillnews.com/British_East_India_Company__1801_.png|width=20]] 영국 동인도 회사령 인도]] [[벵골]] 주 [[콜카타|캘커타]][br](現 [include(틀:국기, 국명=인도)] [[서벵골]] 주 콜카타) || || '''{{{#fff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영국)] || || '''{{{#fff 학력}}}''' ||[[옥스퍼드 대학교]] [[유니버시티 칼리지]] || || '''{{{#fff 직업}}}''' ||[[언어학|언어학자]], [[판사]], [[법학|법학자]], [[인류학|인류학자]] || [목차] [clearfix] == 개요 == [[영국]]의 [[언어학|언어학자]]이자 [[법조인]], [[법학|법학자]], [[인류학|인류학자]]로,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 고대 [[페르시아어]]가 [[인도유럽어족|동계]]라는 강력한 근거를 제시하여, 훗날 언어학의 하위 분과인 [[비교언어학]]의 시초가 된 인물이다. == 생애 == 1746년에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에서 태어난 그는 [[수학자]]였던 아버지[* 아들과 이름이 같은 윌리엄 존스라는 인물인데, [[원주율]] 기호를 [[그리스 문자]] π로 표기한 최초의 인물이며,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었던 [[아이작 뉴턴]]이나 [[에드먼드 핼리]]와 친분이 깊었다.]의 영향을 크게 받아, 학구적인 집안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이미 10대 시절부터 [[언어학]]에 두각을 나타내었는데, 당시 그는 혼자서 [[고대 그리스어]]와 [[산스크리트어]], [[라틴어]] 등을 익혀서 도합 28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읽고 쓸 줄 알았다.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법학]]을 전공한 존스는, 번역가와 가정교사 일을 병행하면서 생활비를 벌었고, 대학 졸업 후에 20대의 나이로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이후인 1783년에는 당시 [[영국 동인도 회사]]의 영지였던 [[콜카타]]로 파견되어 현지에서 [[판사]]를 지냈는데, 이 와중에 [[인도]]의 문화에 대해 연구하다가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의 문법과 어휘가 서로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 그리고 1786년에 자신이 근무지인 [[콜카타]]에서 창설한 왕립아시아학회에 연구 성과들을 소개했는데, 학계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1783년에 당시 [[영국]]의 [[조지 3세]] 임금에게 [[기사(역사)|기사]] 작위에 서임되었고, 1794년에 [[콜카타]]에서 사망했다. == 업적 ==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그리스어]], 고대 [[페르시아어]]가 서로 친연 관계가 있음을 처음으로 입증하였다. 비록 존스 본인은 이 연구의 최종 결과인 [[인도유럽어족]]의 존재를 입증하기 전에 사망하였으나, 1816년에 [[독일]]의 [[언어학|언어학자]]인 프란츠 보프가 존스의 자료를 분석하여 인도유럽어족의 존재를 발견하여 학회에 제출하였고, 이는 [[비교언어학]]이라는 언어학의 분과가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다. [[분류:1746년 출생]][[분류:1794년 사망]][[분류:영국의 언어학자]][[분류:영국의 법조인]][[분류:영국의 법학자]][[분류:동양학자]][[분류:영국의 기사]][[분류:웨스트민스터 출신 인물]][[분류:옥스퍼드 대학교 출신]][[분류:인도유럽어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