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BBC 선정 위대한 영국인)] ||<-2> '''{{{+1 윌리엄 부스}}}[br]William Booth'''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윌리엄 부스.jpg|width=100%]]}}} || ||<|2> '''출생''' ||1829년 4월 10일|| ||[[영국]] [[잉글랜드]] [[노팅엄]] 스나이톤|| ||<|2> '''사망''' ||1912년 8월 20일 (향년 83세)|| ||[[영국]] [[잉글랜드]] [[런던]] 하들리 우드||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영국)]|| || '''직업''' ||목회자, 자선사업가|| || '''배우자''' ||캐서린 부스[* 참고로 윌리엄 부스의 아내인 캐서린 부스 또한 구세군 내에서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였으며, 사관으로 함께 사역했다. 그런 측면에서 전세계 개신교 교단중 가장 먼저 여성에게 목회자의 자격을 부여한 교단은 구세군이라고 할 수 있다.]|| || '''자녀''' ||브램웰, 에반젤린, 밸링턴[br]케이트, 엠마, 허버트[br]루시, 마리|| || '''형제자매''' ||조지 스콧 레일튼[br]엠마 부스[br]앤 부스[br]메리 뉴웰[br]헨리 부스[br]윌리엄 해드콕 부스|| || '''종교''' ||[[개신교]]([[감리회]] → '''[[구세군]]''')|| || '''서명''' ||[[파일:Lefnadsteckning_öfver_Catherine_Booth-039-William_Booth-signature.png|width=200]]|| [목차] [clearfix] == 개요 == 개신교 교파이자, 자선단체인 [[구세군]]의 설립자이자 초대 대장[* 천주교의 교황과 비슷한 위치이다. 참고로 구세군은 군대식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이다. 영국 감리회 목사로 사역하다가 당시 빈민들의 비참한 현실과 빈민들을 차별하던 교회에 실망하여, 소속교단과 결별하고 자선단체를 설립하여 빈민들을 대상으로 자선 및 선교활동을 하였다.[* 당시 영국의 교회의 분위기는 빈민들을 더럽고 냄새가 난다며 배척하고 귀족들과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때문에 기껏 전도한 빈민들이 교회에서 쫒겨난 후 윌리엄 부스에게 돌아오는 일이 잦았고 빈민들 또한 차라리 윌리엄 부스와 예배를 드리기를 원했기 때문에 소속 교단의 지시에 구애받지 않기 위해 교단을 떠나 직접 빈민들을 위한 단체를 세운 것이다. 더불어 빈민들에게 옷을 제공하기 위해 당시 구하기 쉬웠던 영국 해군의 군복을 착용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군대 형식의 운영체계와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다만 군대식 명칭을 뺀 중앙 집권식 운영체계는 [[가톨릭]]과 [[성공회]] 등과 유사하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가톨릭과 비슷한것이 있다면 극도로 경계하는 국내의 일부 극보수주의 저교회파 교단들이 반감을 표하기도 한다.] 그후 그가 창설한 자선단체는 지금의 구세군이 되었다. 과거 [[성공회]]와의 신학적 마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성공회에서는 그를 [[성인(기독교)|성인]]으로 공경하고 있다. 축일은 [[8월 20일]]이다. == 신학적 성향 == 윌리엄 부스의 신학적인 성향은 그가 속해있던 [[감리회]] 신학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신학적인 이유가 아니라 당시 그가 속한 감리교회가 빈민들과 예배를 드리지 않은 것을 이유로 그가 직접 빈민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독립한것이기 때문이다. 생전 [[감리회]] 창시자인 [[존 웨슬리]]를 무척이나 지지했다고 한다. 다만 생전 신학적으로 [[성공회]]와의 마찰도 있었는데, 구세군의 모토이며 로고에도 들어있는 "피와 불"(Blood and Fire)이 신학적인 오해를 산다거나, 당시로서는 여전히 급진적이었던 여성 평등에 대한 마찰이 있었다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다. 당시 사회적으로도 구세군이 일종의 가족 사업이 아니냐는 의심이나[* 주요 근거로는 가족 대부분이 구세군 조직에 참여한 것, 구세군 사관인 사위들 역시 아내 성을 따라서 Booth를 이름에 넣은 것, 구세군 2대 대장이 맏아들에게 넘어간 것 등등이 지적되었다.], 심지어 돈에 눈이 먼 사기꾼의 모금 행각으로 취급되는 경우도 있었다. 알콜 중독자들이 많았던 빈민들을 구제하는 과정에서 금주, 금연, 도박 금지 등을 계율로 제시했는데, 이 때문에 주류 취급자들과의 반목도 있었고 이들은 해골군(Skeleton Army)을 결성해서 구세군 시위와 유혈 충돌을 벌이기도 했다.[[https://en.wikipedia.org/wiki/William_Booth#Opposition|#]] == 어록 == >불가능한 일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을 >하나님은 위대한 사랑으로 사랑하신다. >지금과 같이 여성들이 울고 있는한 >나는 싸우리라 >지금과 같이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는 한 >나는 싸우리라 >지금과 같이 교도소에 드나드는 남성들이 있는 한 >나는 싸우리라 >술에 취한 사람이 남아있는 한 >거리에 잃어버린 가련한 소녀가 있는한 >하나님의 빛 없이 살아가는 영혼이 한사람이라도 >남아있는 한 나는 싸우리라 >나는 끝까지 싸우리라 >어떤 사람의 야망은 명예에 있고 >어떤 사람의 야망은 예술에 있고 >어떤 사람의 야망은 황금에 있지만 >나의 야망은 사람들의 영혼에 있다 >----- >1904년 6월 24일 에드워드 7세를 만나기 위해 왕궁을 방문하였을때 방명록에 적은 말이라고 한다 == 기타 == * 슬하에 8남매를 두었으며, 대부분 구세군 사관으로 종사했고 맏아들 브람웰 부스는 구세군 2대 대장을, 딸 에반젤린 부스[* [[제1 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전을 치르던 미군 병사들에게 도넛을 구워 보급하던 [[도넛#s-11|도넛 걸]]의 창시자로 유명하다.]는 4대 대장을 지낸다. 하지만 그 중 일부는 구세군의 군대적인 문화나 아버지와의 반목으로 구세군 활동을 접거나 탈퇴하였고, 그렇게 탈퇴한 이들 중 아들 발링턴 부스의 경우 이후 비영리 단체 Volunteers of America을 설립하기도 했다. == 관련 문서 == * [[구세군]] * [[구세군대한본영]] *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 * [[감리회]] * [[자선냄비]] [[분류:1829년 출생]][[분류:1912년 사망]][[분류:종교 창시자]][[분류:구세군]][[분류:영국의 개신교 신자]][[분류:개신교 신학자]][[분류:성공회 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