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금나라의 제7대 황제, rd1=위소왕(금))] [include(틀:역대 위(전국시대) 군주)] ||<-3> '''{{{#ece5b6 위(魏)나라 3대 왕[br]{{{+1 소왕}}}[br]昭王}}}''' || ||<-2> '''[[성씨|{{{#ece5b6 성}}}]]''' ||희(姬) || ||<-2> '''[[본관|{{{#ece5b6 씨}}}]]''' ||위(魏) || ||<-2> '''[[휘|{{{#ece5b6 휘}}}]]''' ||속(遬) || ||<-2> '''{{{#ece5b6 아버지}}}''' ||[[위양왕]](魏襄王) 위혁(魏赫),위사(魏嗣) || ||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277년 || ||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기원전 295년 ~ 기원전 277년 || [목차] [clearfix] == 소개 == [[전국시대]] [[위(전국시대)|위나라]]의 5대 군주. 3대 [[왕]]. [[위양왕]]의 아들. [[위안희왕]]의 아버지. 이때부터 [[전국사군자]] 중 하나인 [[신릉군]](信陵君)이 등장한다. [[제(춘추전국시대)|제나라]]에서는 [[맹상군]], [[연(춘추전국시대)|연나라]]에서는 [[연소왕]]이 [[악의(전국시대)|악의]]를 [[대장군]]으로 삼아 제나라를 쳐 70여개 성을 점령하였다. 열국지에서는 위애왕(魏哀王), 위소왕이라고 나와 혼란을 준다. == 재위 기간에 있었던 일 == 위소왕 원년(기원전 295년), [[진(통일왕조)|진(秦)나라]]의 국위(國尉) [[사마착]](司馬錯)이 위나라를 공격하여서 양성(襄城)을 취했다. 위소왕 2년(기원전 294년), 위나라와 진나라가 싸웠으나 또 위나라가 패했다. 위소왕 3년(기원전 293년), 위나라는 [[한(전국시대)|한(韓)나라]]와 힘을 합해 진나라에 맞섰다. 이에 진나라에서 명장 [[백기(전국시대)|백기]](白起)를 보내 이궐(伊闕)에서 싸워 위군이 12만 병력을 잃으며 대패하니, 이것이 이궐 전투였다.[* 이것으로 위나라는 [[신릉군]]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었다. 그 외에 이름있는 장수는 진비(晉鄙) 뿐이었다.] 위소왕 6년(기원전 290년), 위나라에서 진나라에 화친을 청하였는데, 그 조건은 위나라가 하동(河東)의 400리 땅을 떼어서 진나라에 바치는 조건이었다. 위소왕은 할 수 없이 그대로 하였다. 위소왕 7년(기원전 289년), 진나라가 대량조(大良造) 백기와 객경(客卿) 사마착을 보내어 위나라를 치고, 크고 작은 성 61개를 취했다. 위소왕 9년(기원전 287년), 진나라 군대가 위나라의 신원(新垣)과 곡양(曲陽) 땅을 차지했다. 위소왕 10년(기원전 286년), 제나라가 [[송(춘추전국시대)|송나라]]를 멸망시키고, [[송강왕]](宋康王)을 죽였다. 그리고 위나라의 온읍(溫邑)에 매장했다.[* 이것을 굳이 쓴 이유는 위나라도 이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위소왕 12년(기원전 284년), 제나라가 송나라를 같이 친 위나라, [[조(전국시대)|조나라]], 한나라,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에게 땅을 주지 않자[* 알짜배기 땅을 몽땅 제나라가 가지고, 그 나머지를 분배했다는 말도 있다.], [[연(춘추전국시대)|연나라]]는그 틈을 타서 위나라, 한나라, 조나라 즉 [[삼진(전국시대)|삼진]](三晉)과 함께 제나라를 쳤다. 이때 연나라 군대가 제나라의 수도 임치에 이르렀다. 같은 해에 위소왕은 [[소양왕|진소양왕]]과 주나라의 도읍인 [[낙양]](洛陽)에서 회맹했다. 위소왕 13년(기원전 283년), 진나라가 위나라의 안성(安城)을 함락시켰다. 그리고 진군은 대량(大梁)에 이르렀다가 물러났다.[* 그만큼 위나라가 진나라를 상대하기 힘들 정도로 약해졌음을 알 수 있다.] 위소왕 19년(기원전 277년), 위소왕이 죽고 아들인 위어(魏圉)가 뒤를 이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위안희왕]](魏安僖王)이다. [각주] [[분류:위(魏)나라의 군주]][[분류:기원전 277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