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파일:월인천강지곡1.jpg]] ||<-2>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국보|{{{#f39100 대한민국 국보 제320호}}}]]''' || ||<-2> {{{#fff {{{+1 '''월인천강지곡 권상'''}}}[br]{{{-1 月印千江之曲 卷上 }}}}}}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너비=100%, 높이=100%)]}}}|| || '''{{{#fff 소재지}}}'''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운중동, [[한국학중앙연구원]]) || || '''{{{#fff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 활자본 / 금속활자본 || || '''{{{#fff 수량/시설}}}''' || 1책(71장) || || '''{{{#fff 지정연도}}}''' || 2017년 1월 2일 || || '''{{{#fff 제작시기}}}''' || 1447년([[세종(조선)|세종]] 29)경 || [목차] [clearfix] == 개요 == 月印千江之曲. 제목을 해석하면 '달이 즈믄[* '1000'의 순우리말] 가람에 비치는 노래'이다. [[조선]] [[세종대왕]]이 [[수양대군]]이 지은 [[석보상절]]을 본 후, 각 구절마다 찬가찬송의 형식으로 직접 지은 송시 500여 수를 첨한 장편 한글 찬불가. 상중하 3권으로 구성되었으나 현존하는 책은 상권뿐이다. 현재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이 소장 중이고[* 소유자는 주식회사 미래엔.]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제320호로 지정되었다. == 내용 == >부톄 百億 世界예 化身ᄒᆞ야 敎化ᄒᆞ샤미 ᄃᆞ리 즈믄 ᄀᆞᄅᆞ매 비취요미 ᄀᆞᆮᄒᆞ니라 >부처님이 백억 세계에 화신하여 교화하심이 달이 일천 개의 강에 비치는 것과 같으니라. >---- >《[[월인석보]](1459)》에 실린 월인천강지곡 제1 주석 中 세종 28년(1446) [[소헌왕후]]가 사망하자 수양대군[* 소헌왕후는 피접을 나갔던 수양대군의 사저에서 죽었다.]은 충격을 받고 죽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스스로 불교 서적을 공부한 후 한글로 석보(釋譜), 즉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지어 모친의 영전에 바쳤다. 이를 보고 세종이 수양대군에게 석보를 개인적인 작품을 넘어 모든 이가 볼 수 있게 완성하라는 명을 내리자, 고승 [[신미]]와 함께 다른 불경들 또한 모두 완독하여 우리 나라 최초의 한글 불경 언해서를 완성했는데, 이것이 바로 [[석보상절]]이다. 세종 29년(1447) 세종이 완성된 석보상절을 읽어본 후 그 내용과 완성도, 작품성에 크게 감동하여 석보상절의 각 구절마다 그에 대한 찬가를 직접 지었다. 현재 남아있는 월인천강지곡 권상에 수록된 찬가는 총 194곡이고, 수년 후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철하여 세조대에 발간한 [[월인석보]]에 나오는 찬가의 수는 총 440곡이다. 상중하 전체로는 찬가 580여 곡인데 세종이 직접 지어 수록했던 듯하다. [[한글]]로 표기된 작품으로 한글 창제 극초기의 국어학 연구와 출판 인쇄사를 연구하는 데에는 [[용비어천가]]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역대 최고의 자료라 국보로 지정되었다. 현존하는 월인천강지곡은 상권 하나뿐으로 총 194곡만이 남았다. 하지만 세조가 재위 5년(1459) 월인천강지곡의 내용을 합철하여 우리나라 불교계 제일의 강창문학(講唱文學)으로 손꼽히는 [[월인석보]]를 펴낸 덕분에 월인천강지곡의 내용 자체는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 其三 기삼 === >阿{{{-3 ᅙᅡ}}}僧{{{-3 스ᇰ}}}祇{{{-3 끼}}} 前{{{-3 쪈}}}世{{{-3 셰}}}劫{{{-3 겁〮}}}에〮 님〯금〮位{{{-3 위〮}}}ㄹ ᄇᆞ리〮샤〮 >精{{{-3 져ᇰ}}}舍{{{-3 샤〮}}}애〮 안잿〮더〮시니〮 >五ᅌᅩ百ᄇᆡᆨ前쪈世셰怨ᅙᅯᆫ讎쓔ㅣ나랏〮쳔〯일버ᅀᅡ〮 >精{{{-3 져ᇰ}}}舍{{{-3 샤〮}}}〮ᄅᆞᆯ 디〯나〮아〮 가니〮 >---- >아승기 전세 겁에 임금 자리를 버리시어 >정사애 읹았었으시니 >오백 전세 원수가 나라의 재물을 훔쳐가 정사를 지나가니 글씨가 안보이는 사람을 위한것 [[파일:월인천강지곡 권상 기삼.jpg]] == 여담 == * 가사는 남아있었으나 음정은 전수되지 않았는데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곡을 붙인 [[https://youtu.be/VZsis7woePU|버전]]이 나왔다. 가사는 월인천강지곡 기2곡의 내용이며, [[전미선]] 배우의 유작이기도 한 작품에서 공교롭게도 '진혼곡'으로 재생되어 슬픔을 더했다. >世{{{-3 솅}}}尊{{{-3 존}}}ㅅ 일 ᄉᆞᆯᄫᅩ리니, 萬{{{-3 먼}}}里{{{-3 링}}}外{{{-3 ᅌᅬ}}}ㅅ 일이시나 눈에 보논가 너기ᅀᆞᄫᆞ쇼셔. >世{{{-3 솅}}}尊{{{-3 존}}}ㅅ 말 ᄉᆞᆯᄫᅩ리니, 千{{{-3 쳔}}}載{{{-3 ᄌᆡᆼ}}}上{{{-3 쌰ᇰ}}}ㅅ 말이시나 귀예 듣논가 너기ᅀᆞᄫᆞ쇼셔. > >세존의 일 사뢰리니, 만 리 밖의 일이시지만 눈에 보는 듯 여기시옵소서. >세존의 말 사뢰리니, 천 년 전의 말이시지만 귀에 듣는 듯 여기시옵소서. >---- >《월인천강지곡》 기2곡 >세존 일 여쭈리니 / 만 리 밖 일이오나 / 눈에 보는가 여기소서 / 세존 말 여쭈리니 / 천 년 전 말이시나 / 귀에 보는가 여기소서 >---- >[[나랏말싸미]] OST에서 번안된 가사 * 정설은 아니지만 월인천강지곡 안에 세종의 정실부인이었던 [[소헌왕후]]에 대한 비밀 메시지가 있다는 해석이 있다. 상술한 월인천강지곡 기2곡의 내용이 바로 소헌왕후를 향한 메시지라는 견해이다. [[소헌왕후]]는 시아버지인 [[태종(조선)|태종]]에 의해 친정이 멸문의 화를 입었다. 당시 세종은 군권을 쥐고 있던 태종에 맞서 처가의 멸문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음을 안타까워했으며, 이후 소헌왕후도 폐위하라는 상소가 빗발쳤으나 세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태종도 심씨 집안을 숙청하기는 했으나 소헌왕후를 폐위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소헌왕후가 승하한 후 세종은 [[창덕궁]] 곁에 불당을 세우려 했고, 대소 신료들이 강하게 반발하였으나 '나는 어진 임금이 아니니 불당 하나쯤 지을 수 있는 거 아니냐?' 하는 논리로 건설을 강행하기도 하였다. == 외부 링크 == * [[https://ko.wikipedia.org/wiki/%EC%9B%94%EC%9D%B8%EC%B2%9C%EA%B0%95%EC%A7%80%EA%B3%A1|한국어 위키백과 : 월인천강지곡]]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461048&cid=46674&categoryId=46674|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월인천강지곡 권상]]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93287&cid=41708&categoryId=41711|국어국문학자료사전 : 월인천강지곡]]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5195&cid=41826&categoryId=41826|한국고전용어사전 : 월인천강지곡]]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31226&cid=42955&categoryId=42955|한국 미의 재발견 : 월인천강지곡]]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19090&cid=42957&categoryId=42957|한국고중세사사전 : 월인천강지곡]] == 국보 제320호 ==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1,03200000,31&flag=Y|문화재청 홈페이지 : 월인천강지곡 권상 (月印千江之曲 卷上)]]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이 그의 아내인 소헌 왕후의 공덕을 빌기 위하여 직접 지은 찬불가이다. 훈민정음 창제이후 가장 빠른 시기에 짓고 활자로 간행한 점에서 한글 창제 후 초기의 국어학 연구와 출판 인쇄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비록 3분의 1 정도만 남은 零本이나 이 책이 갖는 국어학적, 내지 출판 인쇄사적 가치는 매우 높다는 점에서 국보로 승격할 가치가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국보]][[분류:조선의 도서]][[분류:훈민정음]][[분류:100대 한글 문화 유산]][[분류:장서각 소장품]][[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