袁忠 (? ~ 196)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대]] [[중국]]의 [[후한]] 말의 인물로 자는 정보(正甫). == 행적 == [[예주]] 여남군 여양현 사람으로 [[범방#s-1]]과는 친구였고 169년에 [[당고의 금]]에 휘말려 붙잡혔다가 범방이 증인이 되어 감싸주자 석방되었으며, [[초평]] 연간에 패상이 되자 초라한 수레를 타고 관부에 이르자 맑고 깨끗하다고 칭송받았다.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지자 관직을 버리고 [[회계]] 상우현으로 갔으며, [[왕랑(삼국지)|왕랑]]을 수행하는 무리들이 정돈하면서 꾸미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꺼려 병을 칭하면서 절교했다. [[손책]]이 왕랑을 격파하고 회계를 깨뜨리자 바다를 통해 남으로 도망가서 [[교지]]에 이르렀는데, 196년에 [[헌제]]가 [[허창|허]]에 [[천도]]해서 [[위위]]로 삼기 위해 불렀지만 도착하기 전에 사망했다. [[조만전]]에 따르면 원충이 패상을 지낼 때 조조를 법으로 처벌하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이후에 조조가 [[연주(중국)|연주]]에서 [[반란군]]을 몰아내고 평정한 뒤에 반란군에 가담한 [[호족]]들을 숙청했는데, 이 때 [[변양]]이 죽임을 당했다. 그러자 원충은 [[환엽]]과 함께 피난을 갔다가 조조가 환엽의 일족과 함께 원충의 일족을 죽였다고 한다. [[삼국지집해]]에서 [[황산]]이 [[원비]]가 [[황건적의 난]]에 죽었고 [[원굉(후한)|원굉]]은 부름에 응하지 않다가 집에서 죽은 점을 설명하면서 원충의 가족은 많지 않았음을 지적했으며, 원충이 관직을 버리고 피난을 갔기에 환엽과 함께 교지에 의탁했어도 그들의 일가가 모두 갈 수 있었다고 할 수 없기에 조조가 어떻게 다 [[멸족]]시켰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 대중 매체에서의 묘사 ==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비열한 성자 조조]]에서는 조조가 [[하진(삼국지)|하진]]의 부름을 거절하려다가 끝내 출사하기 위해 [[낙양]]으로 가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패상이 준 문서를 받아야 했기에 조조가 원충을 만나게 된다. 조조가 만나기를 청하자 환엽의 요청에 따라 일부러 기다리게 했으며, 문서는 진작에 써놨다면서 환엽이 조조가 욕심이 많아 재야에 묻혀 살 리가 없다고 했다는 말을 했다면서 조조를 모욕한다. 조조가 연주에 기반을 마련하면서 진궁이 변양, 환엽 등과 함께 중용하도록 자리를 주선했지만 조조가 [[장개#s-1]]에게 아버지 [[조숭]]을 비롯한 일가가 살해당한 일로 분노한 상황에서 진언을 하던 변양이 살해당한 것을 보고 자신도 죽이라고 조조를 도발했다가 진짜로(...) 죽임을 당했다.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등장해 군사 42, 무용 24, 지모 45, 정무 55, 인사 51, 외교 45의 능력치로 158년생으로 나온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원충, version=48)] [[분류:후한의 인물]][[분류:196년 사망]][[분류:여남 원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