袁約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파족의 인물. 기록에 따라 임약(任約)으로 다르게 나온 경우도 있다. [[장로(삼국지)|장로]]가 [[유장(삼국지)|유장]]에게 대항할 때 [[두호]], [[부호(삼국지)|부호]] 등과 함께 장로를 도와줬다. 215년에 파군에서 부호와 함께 무리를 이끌고 [[조조]]에게 투항했으며, 위나라에서 파군을 파동, 파서, 파군 등 3곳으로 나누면서 각기 태수를 임명할 때 파군태수에 임명되었다. 또한 [[유비]]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하후연]], [[장합]], [[조앙(조위)|조앙]] 등을 한중에 배치했다. 정사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화양국지 한중지에 그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그 기록도 대부분 두호, 부호와 함께 행동한 내용이라 기록되지 않았지만 두호, 부호 등과 함께 열후에 봉해지고 [[황권]]이 이끄는 촉군이 공격할 때 함께 격파된 것으로 보인다. == 미디어 믹스 == 소설 [[삼국지 마행처우역거]]에서는 파서 만이의 수령이자 익주의 대성으로 부호의 지원을 받았고 한학에 심취했다고 하며, [[비관#s-2]]의 기습을 받고 부상입은 두호를 부축해 도망가려다가 [[뇌동]], [[방덕]]이 달려오자 달아나다가 방덕이 던진 칼을 허리에 맞아 쓰러지면서 사로잡혔다. 비관에게 자신이 습격한 것에 대해 말할 것이라면서 살려달려고 빌다가 비관이 몸값을 제시하라면서 대신 부하를 처형하겠다고 협상하는 척 해서 10명을 죽이자 [[조전#s-2]], [[양앙]] 등이 이 일에 개입된 사실을 말했는데, 그 다음에는 고환 값을 대신해 5명의 부하를 죽이면서 풀려났다. 그러나 비관이 살아남은 원약의 병사들을 선동하면서 다시 붙잡혔으며, [[왕평]]에게 코, 혀를 잘리다가 참수되어 사망했다. [[분류:삼국시대(중국)/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