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한국의 독립운동가, rd1=김원봉, other2=후한의 관료, rd2=원봉(후한))] [목차] == [[한국사]] [[후삼국시대]]의 [[호족(한국사)|호족]] == [include(틀:후삼국시대 호족들)] 元逢([[삼국사기]]) / 元奉([[고려사]]) [[후삼국시대]]의 [[호족(한국사)|호족]]. 오늘날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현재 [[하회마을]]과 [[경상북도청신도시]]가 있는 곳이다.]에 있던 하지성의 [[호족(한국사)|호족]]이었다. 후삼국시대 초반에는 독자 세력을 지키고 있었지만 인근 형세가 [[고려]]에 유리해 보이자 922년 고려에 항복했다. [[왕건]]은 원봉의 귀순을 환영하며 원봉이 안동 풍산읍 지방을 [[순주]](順州)라는 이름으로 승격시키고 본성으로 계속 다스리도록 했다. 923년 왕건은 원봉에게 원윤(元尹) 관직을 하사했다. 그가 고려를 택했지만 927년 [[후백제]]의 [[견훤]]의 기습 공격으로 [[신라]]의 수도 [[서라벌]]이 [[약탈]]당하고 곧이어 [[공산 전투]]에서 [[고려군]]이 크게 패배하면서 한때 [[삼한]]의 대세가 후백제에 넘어가는 듯 했다. 견훤은 고려군이 제대로 지원하지 못 하는 틈을 타 [[경북]] 북부 지역을 맹공격했고, 929년 7월 견훤이 직접 5천 군대를 이끌고 [[의성군|의성부]]를 공격할 때 [[성주]] [[홍술]]이 항전했으나 패해 [[전사]]했다. 곧이어 의성 옆 순주로 공격해 들어오자 원봉은 [[고려사]] 기록으로는 후백제에게 [[항복]], [[삼국사기]] 기록으로는 도망쳤다고 한다. 이후 기록을 봐선 도망쳤다고 해도 견훤이 순주를 약탈하고 물러간 후 다시 성에 돌아온 듯 하다. 왕건은 이 소식을 듣고 화를 냈으나 원봉의 지난 공을 생각해 그를 용서하고, 대신 순주를 [[현(행정구역)|하지현(下枝縣)]]이라는 하위 [[행정구역]]으로 [[강등]]시켰다. 930년 [[고창 전투]]에서 왕건이 견훤에 대승리한 이후 직접 순주에 행차해서 원봉을 처벌했다. 그가 후백제에 잠깐 붙었든 도망쳤든 간에 본보기를 세울 필요가 있었던 듯 하며 이후 원봉이 어떻게 됐는지는 더 이상 기록에 나오지 않는다. [[분류:동명이인]][[분류:후삼국시대/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