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응씨배 역대 우승자, top=준우승자)] ||<-2>
'''{{{+1 요다 노리모토[br] 依田紀基 / Yoda Norimoto}}}''' || ||<-2> [[파일:요다_노리모토.jpg|width=300]] || || '''{{{#white 직업}}}''' || [[바둑기사]] || || ''' {{{#white 생년월일}}}''' || [[1966년]] [[2월 11일]] ([age(1966-02-11)]세) || || ''' {{{#white 국적}}}''' || [include(틀:국기, 국명=일본)] || || ''' {{{#white 소속}}}''' || [[일본기원]] || || ''' {{{#white 출신지}}}''' || [[홋카이도]] [[이와미자와시]] || || ''' {{{#white 입단}}}''' || [[1980년]] || || ''' {{{#white 단급}}}''' || 九단 || || ''' {{{#white 누적우승경력}}}''' || 36회 || || ''' {{{#white [[한큐바둑]] 닉네임}}}''' || tiger || ||<-2> [[https://www.nihonkiin.or.jp/player/htm/ki000101.htm|일본기원 요다 노리모토 소개 페이지]] || [[파일:attachment/winner12.jpg]] [[1992년]] 12회 [[NEC배]][* [[일본]]의 속기 기전. [[2012년]]에 폐지됐다.]에서 우승했을 때의 [[리즈 시절]]. [[파일:attachment/pht_face.jpg]] 요즘 모습. [목차] [clearfix] == 개요 == [[일본]]의 [[프로]] [[바둑]] [[기사(바둑)|기사]]. == 경력 == [[1980년]] 14세의 나이로 입단했고 [[1983년]] 신인왕전 우승, [[1986년]] 신예 토너먼트전 우승, [[1992년]] NEC배 우승 등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일본]] [[바둑]]계의 주목을 받았다. [[1993년]] [[NHK배 TV 바둑 토너먼트|NHK배]] 우승으로 九단으로 승단. 기풍은 유연하고 발 빠르고 사석작전에 탁월하다.[* 1994년 월간바둑에서는 요다 九단의 기풍에 대해 '질서정연한 초반, 균형감 있는 중반, 이창호 만큼은 안 되지만 치밀한 후반'으로 평한 바 있다.] 장작 패기로도 유명한데, 바둑돌을 세게 놓는 습관을 묘사한 별명이다. [[일본]] [[바둑]] 기사 중에서 [[대한민국]]에 특히 유명한데, '''전성기를 달리던 [[1990년대]] [[이창호]]의 천적'''이었기 때문. 국제 기전에서 이창호와 만나기만 하면 한때 상대 전적이 80%를 넘을 정도로 이창호 킬러로 불렸다. 물론 [[2000년대]] 이후로는 이창호 바둑만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강동윤]] 같은 이창호 잡는 '''기계'''가 나오기도 했지만, 1990년대 이창호의 적수가 없던 시절에 요다 九단은 이창호의 천적이라 불릴 정도로 이창호에게 유독 강했다. [[1998년]] 이창호가 요다 九단을 보고 "요다는 내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길 수 없을 거 같다."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저 인터뷰 [[1999년|다음 해]] [[춘란배]] 16강전에서는 이창호가 요다를 반집 차이로 이겼다.[* 요다가 마지막 [[초읽기]]에 몰려 [[끝내기(바둑)|끝내기]] 순서를 틀리는 바람에 한 집 손해 본 것이 컸다.] 서로 엎치락 뒤치락 한 결과, 2023년 11월 현재 공식전 기준으로 9승 8패다.[* 비공식 대국을 포함한 전체 성적은 요다 기준으로 13승 10패.] 전성기 이창호에게 유독 강했던 이유에 대해 요다가 직접 말하길, '''"[[이창호]]가 출전한 모든 기보를 어떻게든 구해서 몇 번이고 [[복기]]했다."'''라고.(...) 이창호의 대국은 2천국이 넘고, 이걸 다 복기해서 패턴을 숙지했다고 할 정도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참고로, 제 7회 [[농심신라면배]]에서 불패를 달리던 이창호에게 첫 패배를 안김과 동시에 이 대회 유일한 일본의 승리를 가져오기도 했다.[* 전 대회인 [[제6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6회 대회]]가 소위 일컬어지는 '''상하이 대첩'''임을 생각한다면 [[충격과 공포]]...] 이쯤 되면 [[천적]] 확정. 반면에 1999년 [[삼성화재배 월드 바둑 마스터스|삼성화재배]]에서는 [[안조영]]에게 완패당해[* 불과 '''73수'''만에 끝났다(...)] 본선 첫판에서 탈락하기도 했고, 2002년 [[토요타덴소배 세계 바둑 왕좌전|토요타 덴소배]] 본선에서는 한국의 여류기사 [[박지은(바둑)|박지은]]에게 패하는 등, 비교적 약체로 분류되는 기사들에게 종종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심지어 1997년 제2회 [[LG배 조선일보 세계기왕전|LG배]]에서는 독일 대표로 나온 한스 피치[* 독일 출신의 [[일본기원]] 소속 프로 바둑 기사. 2003년에 바둑 보급 활동을 위해 방문한 [[과테말라]]에서 강도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에게 반집 패를 당한 적도 있었다.[* 프로 바둑 세계 대회에서 유럽 출신 기사가 승리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일본]] 국내 기전에서는 1996년~1998년, 2003년~2005년 기성(碁聖)전 3연패, 1998년~2000년 NHK배 3연패, 2000년~2003년 명인전 4연패 등의 성적을 거두었다. 국제 기전에서는 1993년 [[제5회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 우승, 1996년 [[삼성화재배]] 우승,[* 덧붙여 삼성화재배 초대 우승자이자, 이는 현재까지 일본 국적 기사의 유일한 삼성화재배 우승 기록이다. 일본기원 기사로는 [[2003년]] [[삼성화재배]] [[조치훈]] 九단의 현재까지 유일무이한 [[와일드 카드]] 우승이 있다.][* 당시 [[유창혁]] 九단과 [[응씨배]] 결승 5번기, [[삼성화재배]] 결승 3번기로 연달아 맞붙었는데, 유창혁 九단이 응씨배를, 요다 九단이 삼성화재배를 가져갔다. 우승 상금도 각각 40만 달러로 같았다.] 1998년 [[제10회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 1999년 [[제11회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 2연패(통산 국제 속기전 3회 우승), [[후지쯔배]]와 [[응씨배]] 준우승과 상술했듯이 [[농심신라면배]] 일본 우승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국제 기전에서 맥을 못추던 일본 바둑의 구세주 역할을 한 셈. 2014년 3월 바둑 프로그램 Crazystone, Zen과의 4점 [[접바둑]]에서 각각 2집반 패, 불계승을 거두었다. 2015년 3월 [[조치훈]]이 바둑 프로그램 돌바람, Crazystone과 각각 4점, 3점 접바둑을 뒀을 때 해설을 맡아 조치훈, 바둑 프로그램을 모두 디스했다. 조치훈은 돌바람과의 대국에서 지도대국 같은 느낌으로 두다 포석이 약한 대신 중후반과 사활에 강한 돌바람에게 당해 30집 이상 불리한 상황이었고, 컴퓨터 프로그램은 팻감 활용 등에서 가끔씩 이상한 수를 뒀기 때문이다. 2021년 [[제22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 최강전]]의 특별 이벤트에 참가하였는데, [[고바야시 고이치]]와 함께 일본 대표로 출전했다. 이 이벤트에서 일본은 1승 7패로 부진했지만, 요다가 [[이창호]]를 상대로 승리하며 '이창호 킬러'임을 다시 확인시키고 일말의 자존심은 챙겼다. 2022년 [[제27회 삼성화재배 월드 바둑 마스터스]]의 시니어조 일본 예선에서 [[유키 사토시]]를 꺾고 본선 진출에 성공했지만 일본기원 내부 사정으로 인해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자리에는 [[나카무라 스미레]] 三단이 와일드 카드로 출전했다.] 2023년 6월 23일 제4회 신안 월드 바둑 챔피언십 결승에서 [[위빈]]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2023 쏘팔코사놀 레전드리그]]에 KH에너지 4지명으로 선발되어 외국인 선수 자격으로 [[한국시니어바둑리그]]에서 활동하게 됐다. 시즌 성적은 5경기 출전해 전승을 했다. 시즌 도중에는 11월 11일과 12일에 [[유창혁]], [[이창호]]와 '한일 20세기 라이벌 매치'라는 제목으로 특별 대국을 가졌다. 11일 열린 유창혁과의 대국에서는 매우 우세한 바둑을 역전패 당해 반집을 졌고, 12일 열린 이창호와의 대국에서는 완승을 거두며 불계승을 거뒀다. 11월 16일 삼성배 32강전에서 한웅규에게 패했다. 12월 3일 2023 쏘팔코사놀 레전드리그 플레이오프 3차전 2국에서 김동엽 九단에 패하며 팀의 챔피언 결정전 진출이 좌절되었다. == 여담 == * [[고바야시 고이치]], [[조치훈]] 등이 수놓던 1980년대를 이어 1990년대를 대표한 일본 기사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1990년대를 기점으로 쇠퇴하기 시작한 일본 바둑의 최후의 보루라고도 여겨졌던 기사. 요다 노리모토 九단이 나이가 들면서 쇠퇴하자, 일본 바둑은 본격적으로 [[갈라파고스화]]되어버렸다. 그러다가 [[대만]] 출신 [[장쉬]] 九단의 [[LG배]] 우승 이후로 일본 바둑은 세계 무대에서 완전히 도태되어버렸다. * 그의 부인인 [[https://www.nihonkiin.or.jp/player/htm/ki000285.html|하라 사치코]][* 전 부인 요다 마사코]와 아들 [[https://www.nihonkiin.or.jp/player/htm/ki000518.html|요다 오조라]] 역시 바둑 기사이다. * [[조훈현]]의 [[트래시 토크]]에 대응하기 위해 [[귀마개]]를 끼고 대국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귀마개가 너무 신경쓰여서 계속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빼버렸다. * 과거 농심배에서 [[목진석]]과의 대국 때 첫수를 천원에 놓다가 바둑돌을 놓쳐 또르르 굴러간 적이 있다. 그 직후 요다가 "아! 스미마셍."이라 말하고 다시 착점했다. == 주요 기사들과의 상대 전적[* 2023년 12월 3일 기준.] == === 한국 기사 === * [[서봉수]] 九단 4:1 * [[유창혁]] 九단 10:8 * [[이세돌]] 九단 1:4 * [[이창호]] 九단 9:8 * [[조훈현]] 九단 5:6 [[분류:1966년 출생]][[분류:이와미자와시 출신 인물]][[분류:바둑 기사/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