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 있어서 그 공동체 전원이 공유하는 어떤 공통의 요소를 공유하지 않는 존재가 외부에 있다고 가정했을 때, 공동체는 그 실체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존재를 [[적]]으로 규정하고서 공동체의 일치단결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원시시대부터의, [[인류]]가 [[인간]]으로 [[진화]]하기 이전부터의 습성으로 여겨진다. 집단생활을 영위하는 [[생물]]이라면 이러한 성향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동물 집단에서 이러한 성향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집단생활을 하더라도 위기상황에서 '[[단결]]'이라는 해답을 찾아낼 정도의 [[지능]]이 없는 생물의 경우는 그저 적을 피해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인간은 '적이 있으면 단결한다'는 [[DNA]]에 새겨져 있는 습성을 역으로 이용하여 '집단의 단결을 이루어내기 위하여 적을 만들어내는' 행위도 할 수 있다. 이질적인 존재를 상정하여 개개인의 [[공포]]를 자극하는 것이 단결을 만들어내는 방법 중에서 가장 비용이 적게 들고 효과가 우수하다고 볼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어떤 것보다 공포에 쉽게 굴복하며,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항을 기꺼이 양보하기 때문이다. [[종교]], [[사회]], [[정치]]의 지도자들이 예로부터 이 방법을 선호해왔다. 집단의 단결은 일단 이루어지면 그 [[에너지]]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전용할 수 있으며, 자신의 [[권력]]이 그로 인해 공고해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권력자들로서는 실로 나쁠 것이 없는 [[꽃놀이패]]이며, 유능한 [[리더]]일수록 적을 규정하여 구성원에게 [[공포]]를 확산시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많은 정치 지도자들은 [[오월동주]]의 원리에 따라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를 통일하려고 시도하곤 하는데, 이는 [[독재]] 정권의 상투적인 수단이며 동시에 [[민주주의]] 정권에서도 마찬가지로 활용하고 있는 수단이다. 아주 훌륭한 인류사상 이의 일례로 [[나치 독일]] 존속연간 [[나치즘]]의 대표적인 근간중 하나로 활용된 [[반유대주의]]가 있다. 이는 실제로 [[홀로코스트]]로 이어졌다. 문제는 '외부의 적'에게 실체가 없거나 [[공동체]]에 위협이 되지 않는 경우이다. 단결을 와해시키지 않기 위해서 권력자들은 [[거짓]]을 양산하여 적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유포한다. 그럼에도 '외부의 적'이 보이지 않는 경우에는 공동체의 일부를 떼어내어 [[차별]]과 박해의 대상으로 지정해 '내부의 적'으로 삼는다. 이것이 [[이지메]]의 실체이다. [[집단괴롭힘]] 문서 참조. [[분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