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贊 (? ~ 238년?)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대]] [[중국]]의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요동]] [[공손씨 정권]] [[공손연]] 수하의 인물. [[현도군|현도]][[태수]]로 233년에 [[손권]]이 공손연에게 사신을 파견해 [[양평]]으로 4백여 명이 도착하자 공손연이 그들을 도모하기 위해 그들 무리를 요동군의 여러 [[현(행정구역)|현]]에 나누어 두었는데, 그 중에서 [[진단]], [[두덕]], [[황강]] 등과 병사 60명을 현도군에 두었다. 왕찬은 2백 호와 3, 400백명 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진단, 두덕, 황강 등이 군사를 일으켜 관리를 죽이기로 모의했고 [[장송]]이 이를 알려주자 왕찬은 곧바로 군사들을 모아 성문을 닫았지만 모의했던 관리들은 모두 성을 넘어 달아났다. 공손연이 [[사마의]]가 지휘하는 [[위(삼국시대)|위나라]] 토벌군의 공격으로 [[멸망]]하자 공손연이 임명한 관원들을 [[사마의]]가 모두 처형했기에 만약 이 때까지 살아있었다면 별다른 일이 없는 한 238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 미디어 믹스 == [[진삼국무쌍 6]]에서는 공손연의 난에서 등장해 공손연군의 서쪽에 있는 작은 진채의 바깥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서쪽 요충지 3곳 중에 한 곳이라도 장수를 격파하면 곽흔, 손종과 함께 위군을 격파하기 위해 남하한다. [[진삼국무쌍 7]]에서는 양평의 전투에서 등장해 양평성의 남쪽에 위치하다가 플레이어가 서쪽을 공격하는 틈을 타서 [[숙서]], [[유보]]와 함께 남동쪽의 위군 본진을 공격하기 위해 남하했다가 [[장춘화]]가 투입한 연노의 공격으로 혼란에 빠진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왕찬, version=95)] [[분류:공손씨 정권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