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요사)] [목차] == 개요 == 王繼忠 (? ~ 1023) [[북송]], [[요나라]]의 인물. 송나라 황제인 [[진종(송)|진종]]의 측근이었다가 요나라에서 붙잡힌 후에는 사성을 할 정도로 총애받았고, [[전연의 맹]]을 성사시킨 사람이다. == 생애 == === 북송 시절 === 아버지가 와교관 전투에서 전사하자 여섯 살에 동서반전시에 임명되었고, 진종이 태자가 되었을 때 좌우근시가 되어 최측근이 되었으며, 진종이 즉위하자 내전숭반으로 옮겼다가 전전도우후, 영 운주관찰사가 되었다. 심주부도부서에 임명되었다가 고쳐서 진, 정, 고양관 삼로검할 겸 북도전운사가 되었으며, 고양관부도부서로 갔다가 정주로 옮겼다. 1003년에 정주 망도에서 요나라의 군사가 도착하자 강촌에 도착해 싸웠지만 패하고 야율노과에게 생포되었으며, 송나라에서는 왕계충이 이 때 죽은 것으로 알아서 대동군절도사에 봉하고 그의 아들들은 벼슬을 받았다. === 요나라 시절 === [[예지황후|예지태후]]가 왕계충이 현명한 것을 알고 호부사에 임명하면서 강묵기 집안의 딸을 아내로 주어 요나라에 살도록 했으며, 왕계충도 감격해 요나라를 섬겼다. 송나라에서 왕계충이 선제 때의 원로급 신하라면서 사신을 보낼 때마다 하사품을 보냈고, 성종이 왕계충에게 받으라고 지시했다. 1004년에 송나라의 사신으로부터 화살, 채찍, 평화협정의 주선을 요청하는 글을 받았으며, 성종이 허락하자 [[전연의 맹]]을 체결시켰다. 집에 노비가 없다고 해서 황실에 예속된 30호를 하사받고 좌무위상장군에 책봉되었고 1013년에는 중경유수, 검교태보에 임명되었으며, 1016년에는 한족행궁 도부서, 낭야군왕이 되었고, 1017년에는 초왕이 되고 국성을 하사받았다. 성종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소합탁]]을 북원추밀사로 삼으면 어떻냐고 묻자 문장에 재능이 있지만 정치에 어둡다고 했으며, [[소적렬]]이 재능과 행실을 겸비해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성종은 소합탁을 임용했고 소합탁을 보내 고려를 공격하면서 야율계충을 출동군 부부서로 임명했으며, 소합탁이 흥화진을 공격했다가 1개월이 넘도록 점령하지 못하고 철수하자 야율계충이 사람보는 눈이 있다고 해서 추밀사에 임명되었다. 1023년에 벼슬에서 은퇴하고 죽었다. [[분류:송나라/인물]][[분류:요나라의 인물]][[분류:1023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