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일:1000px-Flag_of_the_Isle_of_Wight.svg.png|width=21]] {{{#cf091f '''와이트 섬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nclude(틀:세계의 섬들)] [include(틀:영국의 전례 주)] [include(틀:잉글랜드의 지역)]}}} || ||<-2> [include(틀:지도, 장소=와이트 섬, 높이=224px, 너비=100%)]|| The Isle of Wight [목차] == 설명 == [[영국]] [[잉글랜드]] 남부의 섬. [[잉글랜드]]에서 (본토를 제외한) 가장 넓은 섬[* 사실 땅넓이론 [[맨 섬]]이 더 넓지만, 애초에 맨 섬은 [[잉글랜드]]가 아니라 별개의 [[왕실령]]이다.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외 영토같이 두기에 맨 섬에 사는 영국인이 본토로 이주한다면 외국인 귀화하듯이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와이트 섬은 그런 거 없다.]이고,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섬이다.[* 가장 인구가 많은 섬은 해협 맞은편 [[포츠머스(영국)|포츠머스]] 시에 위치한 포트시(Portsea) 섬] 구어로 '''그 섬'''(The Island)으로 불리기도 한다. 면적 384 km2에 2018년 기준 인구 약 11만이다. 경관이 다양하여 "잉글랜드의 축소판(England in miniature)"이라 불린다. 행정구역상으로는 1890년 이래 아일오브와이트 주를 이루고 있으며, 주도는 인구 25,000명의 섬 중앙에 있는 뉴포트(Newport). 다만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는 동북쪽 해안에 있는 항구 라이드(Ryde, 인구 3만)으로 여기는 본토 항구들로 가는 항로교통의 중심지다. 본토와 다리는 연결되어 있지 않다. [[파일:The Isle of Wight Railway.png]] 라이드에서 출발해 섬의 동해안을 잇는 철도 1개 노선 13.7 km가 아직 남아있다.[* 이 철도도 [[내셔널 레일]] 소속이다.]주도 뉴포트에서는 1966년 노선이 폐업되어 철도가 지나지 않는다. 섬 내부 철도에는 2021년 대규모 리뉴얼 사업과 함께 [[런던 지하철]]의 [[런던 지하철 1938년식 전동차|'''1938년산''' 중고차]][* Class 483이라는 이름을 받았다]가 운행 중단 되며[[https://youtu.be/liSvASshaf4|#]] 2021년 11월 기준으로는 영국철도 484형 기존 D형 전동차를 리뉴얼한 전동차로 대체되고 있다. --런던 지하철의 쓰레기통-- 잉글랜드 남쪽 해안에 있어 기후가 온난하고 경치가 좋아 [[빅토리아 여왕]] 시대 이후 휴양지로 개발되었다. 이 때에 참여한 건축가로 [[정글북]]의 작가 [[키플링]]의 아버지 존 록우드 키플링(John Lockwood Kipling)과 영국 지배 하의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 중 하나였던 바이 람 싱(Bhai Ram Singh)의 협업자이자 멘토이기도 했다. 이 둘이 함께 만든 작품이 와이트 섬에 있던 빅토리아 여왕의 피서용 별장 오즈번 하우스(Osborne House)의 제후접견실(Durbar room)이다. 한편 본토와 떨어진 섬이라는 점을 이용해 교도소 2곳(Albany, Parkhurst)이 들어서 있으며[* 아쉽게도(?) 보안등급은 1990년대 이후로는 두 군데 다 B등급이다.] 중세 왕조 시기에도 정치범과 죄수들의 유배지로도 사용되었다. 공룡 화석의 산지로도 유명한데 [[이구아노돈]], [[바리오닉스]], [[힙실로포돈]], [[폴라칸투스]], [[네오베나토르]], 발도사우루스 같은 백악기 전기 시대에 번성하던 공룡의 화석들이 이 섬의 백악기 전기 지층에서 출토되었다. == 역사 == 칠왕국 시대에 와이트 섬에는 본래 주트족(유트족)이 세운 '위흐트와라(Wihtwara)'라는 독자적인 왕국이 존재했다. 이 왕국의 이름과 와이트 섬이라는 이름은 로마 시대에 이 섬을 웩티스(Vectis, 지레)라고 부른 데서 유래됐는데, 앵글로색슨 연대기에선 다른 민간어원을 제시한다. 위흐트가르(Wihtgar)라는 사람이 왕국의 초대 국왕인데, 위흐트와라라는 이름도 위흐트가르의 백성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앵글로색슨 연대기에선 위흐트가르가 스투프(Stuf)라는 자와 공동왕이었고, [[웨식스]]의 [[체르디치]]의 조카들이었다고 전해진다. [[베다]]의 『앵글인의 교회사』에선 그들이 512년부터 왕이었다고 하고, 앵글로색슨 연대기에선 534년에 [[킨리치]]에게 땅을 받았다고 한다. 다른 앵글로색슨 왕국들처럼 와이트 섬의 기독교화는 좀 늦었는데, 661년 [[머시아]]의 왕 울프헤레(Wulfhere)가 [[웨식스]]를 정벌하면서 이 섬을 빼앗았고, 속국이었던 [[서식스]]의 왕 애델웨알흐(Æðelwealh)에게 주어 와이트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울프헤레가 떠나자 추방되었던 [[캐드왈라]]가 군대를 모아 서식스를 침략해 애델웨알흐를 죽이고 섬이 다시 해방되자 그들은 [[오딘]]을 섬기는 [[게르만 신화]]로 돌아갔고 20여년 뒤 완전히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도 신앙을 유지했다. 마침내 7세기 후반 [[머시아]]와 [[웨식스]]의 경쟁자들을 모두 무찌르고 [[웨식스]]의 유일한 왕이 된 [[캐드왈라]]는 베다의 기록에 따라 곧 686년 [[서식스]]와 [[켄트(잉글랜드)|켄트]]를 정복하고 와이트 섬을 침략하여 멸망시켰다. 섬의 주민들은 모두 살해당했고, 마지막 군주인 아르왈드는 처형되었으며 도주했던 그의 두 형제도 본토에서 발각되어 주살당했다. 대신 아르왈드의 누이가 살아남았다고 하는데, 이름이 전해지지 않지만 그녀는 [[켄트 왕국|켄트]]의 왕 에그버트 1세(Ecgberht I, 에즈베르흐트)와 결혼하여 후대 왕 위흐트레드(Wihtred)를 낳아 모후가 되었다고 추측되는데, 위흐트레드는 [[알프레드 대왕]]의 가까운 조상이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와이트, version=116)] [[분류:잉글랜드의 주]][[분류: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분류:영국의 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