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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왕국 오톤의 왕비[br]{{{+1 아말리 마리 프리데리케 }}}[br]Amalie von Oldenburg ''' || ||<-3>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Amalie_of_Oldenburg,_Queen_of_Greece.jpg|width=100%]]}}} || ||<|2> '''이름''' || 독일어 ||아말리 마리 프리데리케[br]Amalie Marie Friederike|| || 그리스어 ||아말리아 마리아 프레데리키[br]Αμαλία Μαρία Φρειδερίκη|| || '''출생''' ||<-2>[[1818년]] [[12월 21일]][br][[올덴부르크 대공국]] [[올덴부르크]] || || '''사망''' ||<-2>[[1875년]] [[5월 20일]] (56세)[br][[바이에른 왕국]] 밤베르크 || || '''배우자''' ||<-2>[[오톤]] ,,(1836년 결혼 / 1867년 사망),, || || '''아버지''' ||<-2>올덴부르크 대공 아우구스트 || || '''어머니''' ||<-2>안할트베른부르크샤움부르크호임의 아델하이트 공녀|| || '''형제''' ||<-2>프리데리케, 페터, 알렉산더, 아우구스트, 엘리마르 || || '''종교''' ||<-2>[[루터교]] || [목차] [clearfix] == 개요 == [[그리스 왕국]]의 초대 국왕 [[오톤]]의 왕비. [[올덴부르크 대공국]]의 대공 아우구스트의 장녀로 태어났다. == 생애 == 1836년 12월 22일에 그리스의 국왕 오톤과 결혼했다. 결혼식으로부터 2달 후에 그리스에 도착한 아말리는 그 아름다움과 뛰어난 패션 센스로 그리스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결혼 후 아말리아 왕비로 불렸다. 그러나 왕비에게 반감을 가지는 이들도 있었다. 아말리아는 [[루터교]]를, 오톤은 [[가톨릭]]을 믿었다. 그리스에서는 [[그리스 정교]]를 믿기에 개종을 하는 게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각각의 종교를 유지했다. 자식이 태어날 경우 그리스 정교 신자로 키우기로 약속되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불만을 가졌다. 하지만 당시 아말리아의 종교 문제는 그리 큰 논란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말리아가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면서 '정치에 개입하는 외국인 왕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도 국왕 부부는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부부는 의사를 찾아가며 아이를 갖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말리아는 매미를 삼키거나 꿀을 섞은 화약을 먹어보기도 하고, 생식기에 스펀지를 넣고 다니는 등 온갖 기상천외한 요법까지 다 시도해보았다.[*A The infertility of the first royal couple of Greece (1833–1862), J R Coll Physicians Edinb 2011] 그러나 아말리아가 35살이 되는 15년의 노력에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후계자가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자 국민들은 왕비를 비난했다. 1861년에 아리스티디스 도시오스라는 대학생이 아말리아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한 뒤 체포되었다. 당시 아말리아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 대학생을 영웅 취급할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1862년, 인기도 없고 실책을 반복한 오톤은 퇴위해야 했다. 망명길에 오른 아말리아는 남편과 함께 [[바이에른 왕국]]에 정착해 살다가 1875년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사후 아말리아의 시신은 부검되었으나 임신을 하지 못한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스에서는 부검 결과 아말리아 왕비가 처녀였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오톤을 매우 싫어했던 그리스 국민들이 그를 [[고자]]로 몰았기에 생긴 루머로 보인다.[*A] == 아말리아 드레스 == [[파일:Queen Amalia in her garden.png|width=600]] [[파일:Porträt_von_Katharina_Botzaris.jpg|width=600]] 미녀에다가 패션 센스가 뛰어났던 아말리아는 그리스의 패션을 선두했다. 아말리아가 그리스의 왕비일 때 입던 드레스는 '아말리아 드레스'라는 이름의 그리스의 의복으로 자리잡았다. 아말리아 드레스는 그리스의 전통의상을 당시 [[독일]]에서 유행하던 비더마이어 스타일 느낌으로 연출한 의상이였다. 하얀 실크 또는 면으로 만든 드레스는 목부분이 깊게 파였으며, 그리스의 전통의상이자 긴소매 드레스인 카바디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몸에 딱 붙는 짙은 색에 금실로 자수를 놓은 벨벳 자켓을 입는다. 마지막으로 상황과 신분에 따른 모자를 착용하면 스타일이 완성된다. 아말리아가 그리스에 도착했을 당시 그리스에는 각 나라와 지역에서 온 그리스계 사람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에 같은 그리스인임에도 의복이 전부 달랐다. 그러나 모든 여성들이 왕비의 스타일을 따라하면서 의복에 있어 민족적 통일성을 줄 수 있었다. [[파일:Amalia girl.jpg]] 오늘날 그리스에서는 아말리아 드레스를 그리스 전통의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카니발이나 국가 행사가 있을 때 위의 사진처럼 아이들이 입곤 한다. [[분류:그리스 왕비]][[분류: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분류:비텔스바흐 가문]][[분류:1818년 출생]][[분류:1875년 사망]][[분류:올덴부르크 출신 인물]][[분류:폐렴으로 죽은 인물]][[분류:테아티너 교회 안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