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의사이자 교수. 1957년 1월 27일생.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중앙대학교병원|중앙대학교 용산병원]] 내과에서 근무하였다. [[중앙대학교/학부/의과대학|중앙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현재는 [[흑석동(서울)|흑석동]]에서 오연상내과를 개원하여 진료하고 있다.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한 의사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987년 1월에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고문에 의한 사건이라고 양심 선언을 한 의사이다.''' 물론 서슬퍼렇고 폭압적인 당시 전두환 정부 시대에 대놓고 고문치사 사건이라고 말한건 아니다. 당시 오연상은, 경찰에서 박종철이 턱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희대의 망언을 이상하게 여긴 기자들에게 양심 선언을 부탁받았는데 이에 대해 '박종철을 조사해본 결과 바닥에는 물이 흥건했고 폐에서 수포음이 들렸다.'라고 귀띔을 해 준 정도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오연상이 직접 고문 장면을 목격한 것이 아닌 이상 "이것은 고문으로 인한 사망이다"라고 주장 했다면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사서 독재 정권 입장에서 사건을 은폐하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아무리 독재 정권이라도 의사가 전문가로서 가감 없는 팩트만 전달하는데 운동권으로 몰아서 조질 수는 없었고, 이 현명한 판단이 향후 민주화 항쟁으로 이어지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시신을 중대 용산병원 응급실로 이동시키려는 경찰을 속인 후 국립경찰병원으로 이동시켜 의료사고로 둔갑시키려던 의도를 저지했고[* 이 상황에서 응급실로 가게되면 '''의료사고''' 또는 '''객사''' 처리가 된다. 이런 상황에 당시 경찰의 권력을 생각하면 사건을 묻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것이 결국 박종철이 고문에 의해 사망했다는 것이 밝혀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폭로 이후 == 이 사건 이후 분노한 경찰들과 안기부는 [[적반하장]]으로 오연상에게 [[코렁탕]]을 먹이고 싶었지만 이미 사건은 오연상에게 코렁탕을 먹이기에 너무 사건이 커지고 늦어버려서 다행히 무사했다. 실제로 오연상 본인도 그때 당시 어떻게 코렁탕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 대해 사건이 이미 너무 커져버려서 자신을 잡아들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고 회고했다. 이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서 1987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에서 제1회 KNCC 인권상을 받았다. == 기타 == * 김종민, 전현무, 유병재가 남영동 대공분실을 답사하는 선을 넘는 녀석들 촬영이 있었는데 거기서 오연상과 친분이 있던 김종민이 오연상에게 직통을 걸어 그날의 증언을 부탁했고, 이에 흔쾌히 응해줬다. 상술한 내용은 해당 방송분에서 본인의 증언이다. == 대중매체 == [[1987(영화)|영화 1987]]에서 [[이현균(배우)|이현균]]이 연기했다. [[분류:1957년 출생]][[분류:서울대학교 출신]][[분류:중앙대학교 재직]][[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의학·약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