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일본군/장성급 장교)] [[파일:Lt.Gen_Hiroshi_Ōshima_IJA.jpg|width=400]] 大島浩(おおしま ひろし) 1886.04.19~1975.06.06 [목차] == 개요 == 일본군 육군의 군인이자 외교관. 최종계급은 중장이다. [[일본]] [[기후현]] [[에나군]] 이시무라정[* 지금의 기후현 에나시]에서 태어났다. == 생애 ==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38년에 주독 대사가 되었다. [[독일]]에 파견된 외교관답게 [[독일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줄 알았다고 한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삼국 동맹을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 중 하나. 군국주의에 상당히 매료되어 나치를 추종하였다. 독일과 일본을 아울러서 각종 주요 정보를 누설함으로써 추축국이 빠르게 몰락하는데 톡톡한 기여를 하였다. 그 전말은 이렇다. 고위 외교관인 그는 정기적으로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고위인사들과 접촉을 가졌는데, 오시마는 이렇게 얻은 고급 정보를 일본의 외교 암호기기인 [[PURPLE(구문인자기)|퍼플(PURPLE)]]을 통해 무선으로 도쿄에 타전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1940년경부터 이미 퍼플의 암호를 해독하고 있었으며, 오시마가 본국에 전송하는 고급 정보는 그대로 미국의 손에 들어갔다. 세계대전기 육군참모총장이자 전후 국무장관을 지냈던 [[조지 C. 마셜]] 원수는 오시마를 가리켜 "히틀러의 의도에 관한 정보의 기초적 원천"이라고 말했을 정도... 즉 그는 암호를 보내는 족족 연합군에게 귀중한 정보를 헌납하고 있는 셈이었던 것이다. 결국 '''미드웨이나 사이판, 스탈린그라드, 임팔 전투'''등 중요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공짜로 연합군에게 제공하게 되었다. 특히 가장 압권인 것은 1943년 11월, 오시마가 [[대서양 방벽]]에 배치되어 있는 독일군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일본에 전송한 것이 그대로 미국에 누설되어, 결국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그는 전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기소되어 1948년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1955년 감형을 받아 석방되었다. [[자유민주당(일본)|자유민주당]]으로부터 몇 차례 의원 출마 권유를 받았으나 "본인은 [[항복|국가를 잘못 이끈 죄]]가 있다"며 거절하였다. == 관련 문서 == * [[PURPLE(구문인자기)]] [[분류:일본 제국의 군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1886년 출생]][[분류:1975년 사망]][[분류:에나시 출신 인물]][[분류:종3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