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 '''오승은'''}}}[br]'''吳承恩 | Oh Seungeun'''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877856565421568.jpg|width=100%]]}}} || ||<|2> '''출생''' ||[[1980년]] ([age(1980-12-31)]~[age(1980-01-01)]세) || ||[[서울특별시]]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학력''' ||[[신동중학교]] {{{-2 ([[졸업]])}}}[br] [[한성과학고등학교]] {{{-2 ([[졸업]])}}} [br]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학부/자연과학대학|자연과학대학]] {{{-2 ([[물리학]] / [[학사]])}}} [br]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대학원]] {{{-2 ([[물리학]][* [[생물물리학]] 전공] / [[박사]][* 박사 학위 논문: [[https://dspace.mit.edu/handle/1721.1/62650|Quantitative phase microscopy for the study of electromotility in living cells]]])}}} || || '''현직''' ||[[하버드 대학교]] 병원 쿠쉬너연구소 연구원 || || '''약력''' ||[[하버드 대학교]] 병원 시스템생물학과 박사후연구원 || || '''종교''' ||[[개신교]][* 유학 생활 중 개신교 관련 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하거나 목사님께 의지하기도 한다는 인터뷰가 많다.] || || '''링크''' ||[[https://kirschner.hms.harvard.edu/people/seungeun-oh|[[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width=24]]]] [include(틀:트위터 로고, 링크=seungeun, 크기=24)]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생물물리학]]자. '''[[대학수학능력시험|국가 주관 대입 시험]] 역사상 최초의 만점자로 기록된 인물'''로 유명세를 얻었다. == 상세 == 1968학년도 [[예비고사]] 도입 이후 [[학력고사]]를 거쳐 1994학년도 [[수능]]으로 변경된 입시 체제까지 30년 이상 전국 단위로 [[국가]]가 주관하여 실시하는 [[대학입시]]에서 최초로 만점을 받은 인물이다. [[19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1998년 11월 시행, 12월 성적 발표)에서 만점을 받았다. 당시 만점은 '''400점.'''(언어 영역(국어) 120점, 수리 영역(수학) 80점, 외국어 영역(영어) 80점, 과학/사회탐구영역 120점, 총 230 문항) [[19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99학년도 수능]]에서 만점자가 나오기 전까지 수능 역사상 최고득점을 받은 학생은 [[서울고등학교]]에 다니던 한성형 군으로 수리영역 II에서 1.5점짜리 문제를 하나 틀려 398.5점을 맞았다. [[수능]] 최초 만점의 상징성으로 [[언론]]에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녀가 쓴 오답노트로 그녀의 이름을 딴 "오승은의 수능 노트"(1999년 출간) 등 참고서/교재 등이 출간되기도 했고 자신의 노트를 출판해서 번 돈을 유학 자금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당시 만 18세의 [[한성과학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으며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에 거주했던 것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오승은은 [[인터뷰]]에서 "1학년 때 잠깐 [[과외]]를 한 적이 있지만 그 이후에는 하지 않았다.", "다만 [[언어영역]]과 [[사회탐구]] 영역은 [[수학]] 등에 비해 다소 약해 [[주말]]을 이용해 [[학원]]을 다녔다"고 언급했다. 또 소립자 [[물리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오승은은 부유한 가정 출신이다. 오승은의 아버지 오형환 씨는 1969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70년]] [[행정고시]] 8회 [[수석]] 합격자 출신으로, [[1998년]] 당시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연수원장이었으며 어머니 이우인 씨는 당시 서울 [[송파구]] [[방산중학교]]의 [[사회교사]]였다. 오승은은 1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당시 1년 연상인 오빠인 오석준 군(당시 19세)은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고 한다.[[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1998121600541 |#]] 이렇듯 [[부모]] 모두 인문계열 출신으로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던 집안이었는데 오승은은 자연 계열를 선택해 탁월한 성적을 냈다는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한 사항이다. [[클래식(음악)|클래식 음악]] 감상과 [[독서]]가 취미였고 [[지능지수]](IQ) 150의 [[영재]]였다. 오형환 씨는 당시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한양대]] [[행정학과]] 대학원 [[석사]] 과정을 준비하는 등 학구열이 넘쳤다고 한다. 오승은 역시 "[[공부]]에 흥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깊은 학구열 때문이었다"고 언급하며 "아버지를 닮으려고 노력했으며 [[교사]]이신 [[어머니]]의 영향도 컸다"고 말했다. 또 오형환 씨는 딸에 대해 "[[공부]]는 스스로 알아서 했기 때문에 일일이 간섭할 필요가 없었다"고 언급했다. 당시 [[한성과학고]] 3학년 주임이었던 송도찬 [[교사]]의 언급에 따르면 "머리가 총명한데다, 노력파여서 [[모의고사]]에서 항상 390점대를 얻어 전교 1등을 했고, 이미 [[수석]] 졸업이 확정된 상태였다"고 한다. 오승은은 [[중학교]] 때 [[수학]] [[경시대회]]에서 입상하고 또 강남교육청 주최 [[영어]] 듣기 대회에서 은상을 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고교 내내 성적 석차 1등 자리를 지켰고 [[잠]]은 7시간 이상 잤다고 한다. [[중학교]]때는 반에서 5등 정도의 석차였다고 한다.[[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8121627000501|#]] 해당 기사에 따르면 "초·중학교때 [[영어]]와 [[수학]]등 기초 과목만큼은 뛰어났으나 성적은 반에서 5등 안팎. 고교 진학때 [[음악]]과 [[체육]] 등 예능 과목 성적이 저조한 탓에 중학 졸업 성적이 전교 상위 3.7%로 과학고 지원 자격인 3%이내에 들지 못했지만 전국수학경시대회에서 장려상으로 입상한 경력을 인정받아 겨우 지원 자격을 얻는 행운을 안았다."고 한다.[* 단 오승은이 다녔던 중학교는 강남 8학군 한복판에 있는 학교이기때문에 해당 성적이 그리 의외의 성적인것은 아니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자연과학부 물리학전공(99[[학번]])에 학교장추천 수시로 이미 합격한 상태였으며 7학기(3년 6개월)만에 [[조기졸업]]했다. [[2003년]] 8월 12일 [[미국]] [[MIT]] [[대학원]] 물리학과로 [[유학]]을 떠나[[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6823 |#]] 이학[[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 [[의대]]로 건너가 [[박사후연구원]] (Post-Doc.) 신분으로 시스템 [[생물학]] ( system biology )을 연구했다. '동물 성장판의 세포와 뼈 길이 사이의 관계'에 [[논문]]을 2013년에 발표하며 ‘[[네이처(학술지)|네이처]] (Nature)’지의 [[논문]]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0327027006 |수능 만점 천재 소녀, 15년 후 ‘뼈 성장의 비밀’ 풀다]]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191203.99099001694|2020 수능 성적 발표…수능 만점자들은 뭐하고 지낼까]] 학술정보 검색 서비스인 구글 스콜라(Google Scholar)에서는 오승은 박사의 논문(2021년 10월 기준 18편)이 합산하여 약 2,000회에 가깝게 인용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활발히 활동 중이며 임팩트가 큰 논문들도 쓴 훌륭한 생물물리학자인 셈.[[https://scholar.google.com/citations?user=JoztQKcAAAAJ&hl=en|#]] == 여담 == [[메가스터디]] 대표이자 설립자 [[손주은]]의 제자라고 한다. 이 문서에 서술되어 있는 그와 가족들의 행적은 [[공부 쓴소리]]의 일종이면서 흔히 [[자기개발서]]에 많이 나오는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다]]"'''라는 말의 [[모티브#s-1.1|모티브]]로 여겨진다. 자세한 내용은 별도 문서 참고. 어떻게 만점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모르는 문제가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당대의 아이콘이었던 아이돌 [[H.O.T.]]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는 "HOT가 뭐죠?"라고 되물었다는 전설적인 일화가 있다. == 관련 기사 == * [[https://woman.donga.com/3/all/12/145708/1|오승은의 인생 노트 수능 사상 첫 만점자 14년 뒤 뼈 성장의 비밀 풀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오승은, version=82, paragraph=3)] [[분류:1980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생물학자]][[분류:대한민국의 물리학자]][[분류:한성과학고등학교 출신]][[분류:서울대학교 출신]][[분류:MIT 대학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 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