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총대주교좌)] [[파일:external/www.odnowa.eostroleka.pl/zeslanie_ducha.jpg]] [목차] == 개요 == 성지 관리를 담당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 현재 [[예루살렘]] 총대주교는 교회별로 [[예루살렘 총대주교(정교회)|정교회 총대주교]]와 [[예루살렘 총대주교(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총대주교]], 그리고 [[가톨릭]] 측의 [[라틴 총대주교]]까지 총 3명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교회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그 이유는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으며, 복음이 이곳에서 전 세계로 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마 제국]]과 유대인들의 분쟁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는 쇠락해갔고, 초대 교회 5대 관구 중 [[교황|로마 교황좌]],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좌]],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좌]],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안티오키아 총대주교좌]]가 각각 [[가톨릭]], [[정교회]], [[콥트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반면 예루살렘은 특정 교파의 구심점 역할은 하지 못하고 현재 성지 관리만 하는 상태이다. [[https://www.thearda.com/world-religion/national-profiles?REGION=0&u=113c&u=23r|2020년 기준]] [[이스라엘|이스라엘국]] 인구의 2.17%는 그리스도인이며, 이 중 과반수인 1.27%는 [[가톨릭]], 0.46%는 [[정교회]], 0.14%는 [[개신교]], 기타 0.44%이다. == 공통 역사 == [[파일:external/aedificatiodei.files.wordpress.com/0104james-lordsbrother10_ebay.jpg]] [[사도행전]]이나 바울로 서간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첫 번째 지도자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인 야고보]]'이리라는 정황이 드러난다.[* 사도행전 15장] 또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부]] 에우세비오(Eusebius)는 저서 <교회사>에서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주교였다고 언급했다.[* 이 야고보가 사도 야고보(알패오의 아들)과 동일인물이냐 별개인물이냐가 다소 모호한데, 딱히 교리적인 확정은 없다.] 예루살렘은 초창기 그리스도교의 총본산이자 중심지였지만, 이내 인접한 대도시 안티오키아에서 교회가 급성장하고 뒤이어 2차에 걸친 유대-로마 전쟁을 통해 예루살렘 도시 자체가 몰락함에 따라 예루살렘 교회의 세력도 줄어들었다.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후 로마와 비잔티움 제국 치세 아래 그럭저럭 무난한 위치가 되었다. 이후 예루살렘은 카이사리아 관구에 속했다가 451년 칼케돈에서 소집된 [[칼케돈 공의회]]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콘스탄티노폴리스]]와 함께 총대주교좌 교회로 설정되었다. 하지만 총대주교좌로 정해진 후 쏜살같이 서열 2위까지 올라간 콘스탄티노폴리스와 달리 예루살렘은 계속 5위에 머물렀다. 그래도 [[단성론]]에 관해서 아예 교회가 반토막난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안티오키아]]에 비하면 홍역을 좀 덜 치른 편이다. == 교회별 총대주교 == * [[예루살렘 총대주교(정교회)]] * [[예루살렘 총대주교(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 [[라틴 총대주교]] * [[안티오키아 총대주교(멜키트 그리스 가톨릭)|예루살렘 총대주교(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안티오키아 총대주교가 겸임] [[분류:예루살렘 총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