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함경남도의 시군)] {{{+1 永興郡 / Yŏnghŭng County }}} ||<-2> {{{+2 영흥군}}} [br] 永興郡 / Yŏnghŭng County || || 국가 || [[대한민국]] || || 광복 당시 면적 || 2,192㎢ || || 광역시도 || [[함경남도]] || || 광복 당시 행정구역 || 1읍 11면 || || 시간대 || UTC+9 || ||<:><-2>[include(틀:지도, 장소=금야군, 높이=250px, 너비=100%)] || [목차] [clearfix] == 개요 == [[함경남도]]에 존재했던 군. 서쪽은 [[평안남도]]에 접하며, 동쪽은 [[동해]]에 면한다. 영흥은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금야군]]으로 불리며, [[1952년]] 이래 군의 서부지역은 [[요덕군]]이 되었다. == 역사 == [include(틀:조선의 계국백)] ||<-10> '''영흥군 행정구역 변천사''' || || 영흥대도호부[br](永興大都護府, 1413)[* 줄여서 영흥부(永興府)] ||<|2> → ||<|2> 영흥군[br](永興郡, 1895) ||<|2> → ||<|2> '''[[금야군]][br](金野郡, 1977)''' || 한사군 시대에는 임둔군(臨屯郡) 화려현(華麗縣)이었다. [[옥저]]의 영역이었고 [[고구려]]에 복속된 후에 장령진(長嶺鎭) 혹은 당문(唐文)·박평군(博平郡)이라 하였다. [[진흥왕]] 때 [[신라]]가 차지했고 이후 [[남북국시대]]에 신라와 발해의 경계 지역이었다. [[고려]]시기 명칭은 화주였다. 이후 [[조휘]]와 [[탁청]]의 반란에 의해 [[몽골 제국]]([[원나라]])으로 넘어가 [[쌍성총관부]]의 처소가 설치되는 등 이름이 쌍성으로 불렸으며 [[공민왕]] 때 되찾고 [[화령]]이 되었다. [[조선]] [[태조(조선)|태조 이성계]]의 고향. 이성계가 [[명나라]]에 조선과 함께 국호로 제안했던 화령이 바로 이곳이다. 조선 왕조가 영원히 흥하라는 의미로 영흥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이른바 '''흥왕의 땅(興王之地, 흥왕지지).'''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추존 환조)의 집으로 알려진 [[영흥본궁]]이 위치하고 있기도 하다. 이후 쟁쟁한 도시들이었던 [[안동시|안동]], [[강릉시|강릉]] 등과 함께 대도호부로 지정되면서 지역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1895년]]에는 [[23부제]]의 시행으로 함흥부 영흥군이 되었다. [[함흥차사]]의 [[유래]]가 된 [[박순(여말선초)|박순]]이 죽었다는 [[용흥강]](영흥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때문에 [[원산]]만(元山灣)이 [[영흥만]]으로도 불리는 것. 북한 치하에서는 아래 사유로 졸지에 금야강, 금야만으로 불리고 있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의 명칭인 금야는 [[김일성]]의 작명이다. [[1975년]]경 김일성이 조선왕조가 흥하라는 영흥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듣고 당장 이름을 바꾸라고 지시했던 것. [[석탄|검은 금]]이 많이 나고,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해서 금야(金野)군으로 바꾸었단다. 고로 통일되면 이름을 즉시 갈아치울 가능성이 크다. 다른 사례들만큼 노골적으로 불온한(?) 명칭은 아니지만, 김일성이 지은 이름이기 때문에 바뀔 가능성이 높다. 넓은 영흥 평야가 펼쳐져 있고, 금야군은 [[2008년]] 기준으로 인구 21만으로 여전히 북한의 군 가운데 네임드의 인구를 자랑하고 있다. 요덕군의 인구는 4만이다. 60년대 남한의 군 인구와 비슷한 수준. == [[이북5도위원회|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 [include(틀:함경남도의 하위행정구역)] [[파일:함경남도 영흥군기.png |width=50%]] [[파일:영흥군.jpg]] 여기에서는 광복 당시의 영흥군 현황에 대해 서술한다. 영흥군은 광복 당시 1읍 11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횡천면, 요덕면, 선흥면의 서부 산악지대를 제외한 나머지 읍면은 대체로 평탄하다. * '''영흥읍'''(永興邑) * 관할 리: __남산(南山)__, 국봉(國峰), 남성암(南星巖), 내동(內洞), 도랑(都浪), 도정(都井), 문흥(文興), 반룡(盤龍), 사현(社峴), 삼사(三思), 상마산(上馬山), 상산(商山), 상태(上泰), 성북(城北), 신남(新南), 신흥(新興), 연동(硯洞), 영풍(永豊), 용남(龍南), 용연(龍淵), 용원(龍源), 운평(雲坪), 중마산(中馬山), 중면(中面), 중흥(中興), 팔정(八井), 필석(筆石), 하국사(下國寺), 하태(下泰), 형탄(荊灘) * 원래 '홍인면(洪仁面)'과 '복흥면(福興面)'의 2개 면이었다가 1935년 홍인면이 영흥면으로 개칭되고, 1942년 복흥면을 통합해 영흥읍으로 승격되었다. * [[평라선]]과 [[금야선]]이 이곳에서 분기하며 관내에 [[금야역]](구 영흥역)이 있다. * '''고령면'''(高寧面) * 관할 리: __안동(安東)__, 가진(加進), 명장(明場), 모로(慕老), 무학(武鶴), 백안(白安), 비동(枇洞), 삼봉(三峯), 신성(新城), 신흥(新興), 연동(蓮洞), 연풍(淵豊), 이동(梨洞), 조산(藻山), 중흥(中興), 청학(靑鶴), 청흥(淸興), 풍동(豊東) * 영흥군의 북부 해안지역. * '''덕흥면'''(德興面) * 관할 리: __신풍(新豊)__, 광성(廣城), 구상(龜上), 구평(龜平), 구하(龜下), 금파원(金坡院), 내동(內洞), 농암(籠巖), 덕고개(德古介), 동한봉(東鷳鳳), 백남(白南), 백북(白北), 부남(富南), 신창(新昌), 신흥(新興), 쌍흥(雙興), 용천(龍川), 원흥(元興), 작동(鵲洞), 지인(智仁), 직동(直東), 직서(直西), 청남(淸南), 청동(淸洞), 청북(淸北), 풍성(豊城), 풍양(豊陽), 풍전(豊田), 한봉(鷳鳳), 화산(禾山) * '''선흥면'''(宣興面) * 관할 리: __성(城)__, 검산(劍山), 남흥(南興), 문상(文上), 문흥(文興), 서상(西上), 신흥(新興), 연상(囦上), 완문(完文), 용남(龍南), 용반(龍盤), 용상(龍上), 용신(龍神), 용암(龍巖), 용연(龍淵), 용운(龍雲), 인풍(仁豊), 자산(慈山), 증하(曾下), 태명(太命), 평천(平川), 향산(香山), 향봉(香峰) * 요덕·횡천면과 함께 군 서부 산악지역에 위치한 면이다. 면 소재지인 성리를 비롯한 용흥강과 용수피천 일대에 있는 좁은 골짜기 지대는 2010년대 금야강(용흥강을 북한에서 부르는 이름) 발전소 건설로 인해 수몰되었다. * '''순령면'''(順寧面) * 관할 리: __신정(新亭)__, 갈전(葛田), 경암(鯨巖), 광진(廣津), 능동(陵洞), 대흑석(大黑石), 덕양(德陽), 덕포(德浦), 두산(頭山), 석남(石南), 석북(石北), 성남(聖南), 소라(所羅), 소흑석(小黑石), 송전(松田), 송치(松峙), 쌍화산(雙花山), 용천(龍川), 원천(原川), 유남(柳南), 유북(柳北), 작산(鵲山), 정자(亭子), 주남(州南), 중양(中陽), 태평(太平), 풍남(豊南), 풍동(豊東), 풍양(豊陽), 풍흥(豊興), 화도(禾島), 흥남(興南) * [[평라선]] 철도가 면의 서부를 지나며 관내에 [[현흥역]]이 있다. 또한 지선철도인 [[금야선]]이 [[풍남역]]에서 시종착한다. * 소흑석리에 [[영흥본궁]](준원전)이 있었으나 6.25 때 소실되었다. * '''억기면'''(憶岐面) * 관할 리: __조양(朝陽)__, 구만(九灣), 남동(南東), 남서(南西), 남세(南細), 덕상(德上), 덕중(德中), 덕하(德下), 동세(東細), 미양(美陽), 봉양(鳳陽), 북세(北細), 삼기(三岐), 선흥(善興), 소산(昭山), 신성(新城), 신양(新陽), 신흥(新興), 양상(兩上), 양중(兩中), 양하(兩下), 오포(梧圃), 와우(瓦隅), 용호(龍湖), 율산(栗山), 인성(仁成), 인흥(仁興), 중남(中南), 치(峙), 탑산(塔山), 흥암(興巖) * 용흥강과 덕지강이 합류하는 [[삼각주]] 지대에 위치한 면으로, 산이 없고 평야만 존재한다. * '''요덕면'''(耀德面) * 관할 리: __중신(重新)__, 남산(南山), 대숙(大淑), 백동(柏洞), 북평(北坪), 성(城), 소숙(小淑), 용상(龍上), 용천(龍泉), 인상(仁上), 인흥(仁興), 입석(立石), 평전(坪田), 하신(下新), 화전(花田) * 그 악명높은 '''[[요덕 제15호 관리소]]'''가 이곳에 존재한다. 위 행정구역 기준 대숙리, 소숙리, 입석리, 평전리 전역과 북평리 상당수가 전부 관리소 영역이다. * '''인흥면'''(仁興面) * 관할 리: __포중(浦中)__, 금피(⾦⽪), 남양(南陽), 내남(內南), 내평(內坪), 녹상(⿅上), 능동(陵洞), 동산(東⼭), 동소치(東蘇峙), 동양(東陽), 동원(東原), 동천(東川), 동평(東坪), 미흥(美興), 방축(防築), 상평(上坪), 선앙치(善仰峙), 성재(城岾), 성흥(城興), 송현(松峴), 연봉(連峯), 영풍(永豊), 왕상(旺上), 왕하(旺下), 용산(龍⼭), 용연(龍淵), 원거(院巨), 원동(元東), 원상(元上), 원서(元⻄), 은봉(銀峯), 의성(義成), 작동(芍東), 장재(長峙), 처인(處仁), 천동(泉洞), 칠동(七洞), 포상(浦上), 포하(浦下), 풍왕(豊旺), 향봉(香峰), 화성(化城), 화흥(化興) * [[평라선]] 철도가 지나가며 관내에 [[인흥역]](구 마장역), [[범포역]], [[왕장역]]이 있다. * 북한 행정구역상 한때 존재했던 [[인흥군]] 소재지. * '''장흥면'''(長興面) * 관할 리: __원하(院下)__, 동하(東下), 문성(文城), 봉남(鳳南), 봉양(鳳陽), 삼봉(三峯), 송산(松山), 신흥(新興), 연치(囦峙), 염교(濂郊), 원산(元山), 원상(院上), 인상(仁上), 인하(仁下), 인흥(仁興), 정동(正洞), 정동(鼎東), 정서(鼎西), 초상(草上), 초하(草下), 현흥(賢興) * '''진평면'''(鎭坪面) * 관할 리: __진흥(鎭興)__, 건천(乾川), 신당(薪塘), 영하(永河), 용천(龍川), 우당(禹塘), 응봉(鷹峰), 제도(猪島), 진수(鎭岫), 천황(天皇), 평탄(坪灘), 한동(翰洞), 흥성(興城) * '''호도면'''(虎島面)[* 섬이 아니라 [[호도반도|호도'반도']]이다. 실제로 원래는 호도라는 섬이었는데 육지와 연륙되어 반도가 되었다.] * 관할 리: __방구미(芳久美)__, 갈고치(葛古峙), 구장(舊獐), 독구미(獨九味), 두무포(斗武浦), 모사도(茅沙島), 소응진(巢鷹津), 소포(蘇浦), 송빈(松濱), 신장(新獐), 용미(龍迷), 원상(原上), 원평(原平) * 영흥군의 남부 해안지역. 광복 직후 독구미리(원상리 일부), 모사도리(송빈리 일부)가 신설되었다. * '''횡천면'''(橫川面) * 관할 리: __대평(大坪)__, 덕평(德坪), 미로(美老), 미자아(美自牙), 산계(山界), 산성(山城), 상동산(上東山), 상평(上坪), 신흥(新興), 원흥(院興), 자아(自牙), 중동산(中東山), 중흥(中興), 천흥(泉興), 초평(草坪), 하동산(下東山), 하평(下坪) * 철옹산 동쪽의 중흥리는 [[평안남도(이북5도위원회)|평안남도]] [[맹산군]] 쪽으로 [[땅거스러미|파고들어가 있다]]. 이에 북한 행정구역상 평안남도 맹산군에 편입됐다. * 북한 행정구역상 [[요덕군]] 소재지. 다만 [[요덕역]]은 구 [[고원군]] 소속이던 관평리에 있다. == 고적 == 영흥읍에는 누정인 군자루(君子樓)가 서 있다. 순령면에는 [[이자춘|조선 환조]]의 옛집인 영흥본궁이 있었다고 하지만, 컬러사진을 찾아볼 수 없는 관계로 [[6.25 전쟁]] 중 파괴되지 않았나 추정된다. == 출신인물 == * '''[[이성계]]''' - 조선의 첫번째 국왕. * [[조일문]] - 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 제12대 국회의원, 건국대학교 총장 [[분류:이북 5도의 군]][[분류:함경남도의 폐지된 행정구역]][[분류:1977년 폐지된 행정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