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위서)] 令狐愚 (? ~ 249) [목차]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로 자는 공치(公治). 본명은 영호준(令狐浚)이며 [[왕릉(삼국지)|왕릉]]의 외조카로 [[영호소]]의 족자가 된다. 병주 태원군 사람. == 생애 == 황초 연간(220~226년)에 화융호군이 되었다가 오환교위 [[전예]]가 호를 토벌해 공을 세웠지만 지시를 조금 위반하자 법으로 그를 잡아넣으려고 했으며, [[조비]]가 격노해 영호우를 포박하고 벼슬을 파면해 죄를 묻고서 조서를 내렸다. 조비가 조서를 내리면서 영호준은 어찌 그리 멍청하냐고 했기에 우(愚)를 이름으로 삼았으며, 정시 연간(240~249년)에 [[조상(삼국지)|조상]]의 장사가 되었다가 후에 지방으로 나가 연주자사가 되었다. 평아에 주둔해 왕릉과 함께 비밀리 상의해 나이가 어린 [[조방]]을 폐위하고 초왕 [[조표(조위)|조표]]가 나이도 많고 재능이 있으므로 그를 세워 허창을 수도로 해야 된다고 했으며, 249년 9월에 장군 [[장식#s-2]]을 백마로 파견해 조표와 왕래했다. 11월에 조표에게 다시 장식을 파견했지만 장식이 돌아오기 전에 질병으로 죽었으며, 결국 후에 이 일이 발각됨에 따라 그의 묘는 파헤쳐져 관이 잘리고 그 시신은 시장에 3일간 말려졌다가 인수와 조복이 불태워져진 뒤, 시체는 직접 흙에 묻혀지게 되고 말았다. 이렇게 그의 오만한 행동으로 인한 몰락에 대해 [[영호소]]는 사전에 미리 경고를 했었지만 영호우는 오히려 그에게 자신의 관직을 자랑했다고 한다. 또한 [[독발수기능]]의 난를 진압한 [[마륭]]이 그의 식객이었다. == 창작물에서 == === [[삼국지 시리즈]] === || [[파일:영호우.jpg|width=400]] || || [[삼국지 14]] 일러스트 || [[삼국지 14]]부터 등장하고 능력치는 통솔 24, 무력 38, 지력 66, 정치 50, 매력 19로 일러스트는 성격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반영하여 두 손을 모은 채 째려보고 있다. 개성은 공명, 오만, 주의는 아도, 정책은 화계연구 Lv 2, 진형은 학익, 전법은 도발, 매성, 친애무장은 [[왕릉(삼국지)|왕릉]], [[조상(삼국지)|조상]], [[조표(조위)|조표]], 혐오무장은 [[사마의]]다. === [[삼국전투기]] === 꼬마 니콜라의 아냥으로 등장. 처음 등장한 신성 전투 (1)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소개컷에는 덕은 없지만 정치력은 있는 서기 3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신성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과거 화융호군이던 영호준은 220년즈음 별 시덥지않은 일로 전예를 잡아넣다가, 조비에게 찍혀서 이름도 영호우로 바뀌고 조비~[[조예]] 때까지 밑바닥을 전전하다 조방이 황제가 되자 조상에게 붙어서 다시 떠오르게 되었다고 언급되었다. 그렇게 240년쯤 그는 연주자사가 되었고, 당시 수춘에 기거하던 외삼촌인 사공 왕릉을 뒷배로 둔 회남 지방의 최강자가 된 것으로 묘사되었다. 고평릉 사변 이후 왕릉의 친구인 사마의가 절대권력을 잡으며 왕릉도 승진하자 영호우는 왕릉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지만, 왕릉의 반응이 떨떠름한 것을 감지하고 왕릉에게 황제가 군림하는 나라니 [[사마의(삼국전투기)|신하]]가 좌지우지하는 건 꼴불견이라고 말하며 황제를 초왕 조표로 갈아치우는 계획을 제안했다. 왕릉이 이를 수락하며 영호우는 초의 조표에게 의견을 물으러 사신도 보냈지만, 정작 그 사신이 돌아오기도 전에 영호우 본인은 병사하여 어이없게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각주] [[분류:조위의 인물]][[분류:249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