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육상 선수, rd1=여호수아(육상))] [include(틀:성경의 목차)] [include(틀:아홉 위인)] || '''◀ 이전''' ||<|2> '''{{{+1 여호수아}}}'''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ffffff; font-size: .75em" '''{{{#000000 수}}}'''}}}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ffffff; font-size: .75em" '''{{{#000000 여호 }}}'''}}} || '''다음 ▶''' || || [[신명기]] || [[판관기]] || ||<-3> '''언어별 명칭''' || || '''히브리어''' ||<-2>ספר יהושע (‎Sefer Yehoshua) || || '''아람어''' ||<-2>ܝܫܘܥ ܒܪܢܘܢ || || '''그리스어''' ||<-2>Ἰησοῦς τοῦ Ναυὴ (Iēsoûs toû Nauḗ)[* 코이네 그리스어로 "눈(나우에)의 아들 여호수아(이에수스)"라는 의미이다. 현대 그리스어로는 'Ιησούς του Ναυή (Iisoús tou Naví)'로 표기하며 [[정교회]]권인 러시아나 불가리아에서는 그리스어 발음을 따라 '이이수스 나빈(Иисус Навин)'으로 표기한다.] || || '''라틴어''' ||<-2>Liber Iosue || || '''영어''' ||<-2>Book of Joshua || || '''중국어''' ||<-2>若蘇厄書 || || '''일본어''' ||<-2>ヨシュア記 (ヨシュアき) || ||<-3> '''기본 정보''' || || '''저자''' ||<-2>대부분 여호수아 추정. 부족한 부분들은 후대에 보충 || || '''기록 연대''' ||<-2>B.C. 1400년경 || || '''분량''' ||<-2>24장 || || '''주요 인물''' ||<-2>여호수아 || [목차] [clearfix] == 개요 == >힘을 내고 용기를 가져라. 내가 이 백성의 선조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한 땅을 차지하여 이 백성에게 나누어줄 사람은 바로 너다. >---- >여호수아 1:6 {{{-2 ([[공동번역 성서|{{{#000,#fff 공동번역 개정판}}}]])}}} 구약성경의 6번째 책. [[모세]]의 사후, 그의 후계자로 임명된 '눈의 아들 여호수아(יְהוֹשֻׁעַ בִּן נוּן, Yehoshua Ben-Nun)'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얻기 위해 [[전쟁]]하는 얘기로, 성경 가운데 가장 호전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난공불락의 성으로 유명한 [[예리코의 전투|예리코 성]]은 여기서 나온다. 침공→ 전쟁→ 승리라는 간단한 패턴이 여러 번 반복되며 야전, 공성전, 기습 등의 다양한 전쟁 양상이 나오기 때문에 비기독교인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구약의 몇 안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15장부터는 땅 분배 등 부동산? 얘기가 나온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여호수아서가 초기 이스라엘에 대한 역사적 가치가 거의 없으며 훨씬 후기 시대를 반영한다는 데 동의한다.[* Killebrew, Ann E. (2005). 《Biblical Peoples and Ethnicity: An Archaeological Study of Egyptians, Canaanites, and Early Israel, 1300–1100 B.C.E》.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ISBN 978-1-58983-097-4.] 하지만 여호수아기의 서술을 완전 거짓 취급할 수는 없는데, 그 이유는 '라기스, 하솔, 베델, 에글론 등' 팔레스티나 고원 지역의 일부 성읍들은 실제로 이 시기에 파괴되었고 군사적으로 점령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건 여호수아 외 [[판관기]] 등의 서술에서 뒷받침해 줄 수 있다. >19 야훼께서 함께 하시어 유다 지파는 산악 지대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평지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아직 몰아내지 못했는데, 그들에게 철병거가 있기 때문이었다. >---- >- [[판관기]] 1:19 (공동번역) 즉 '[[가나안]] 정복'은 일부 산악 지대에서 일어난 군사적 충돌로서 볼 수 있다. 사실, 여호수아에서 워낙 전쟁 부분이 강조되어서 그렇지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기브온인들과 맺은 평화 협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여호수아에서도 이스라엘 민족들이 토착 민족만 과 공존 혹은 협정을 맺는 장면이 나온다. == 눈의 아들 여호수아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oshua_Renewing_the_Covenant_with_Israel_%28Bible_Card%29.jpg|width=300]] || {{{#FFFFFF '''이름'''}}} ||<-4>여호수아 Joshua || || {{{#FFFFFF '''출생지'''}}} ||<-4>고센 땅 || || {{{#FFFFFF '''생몰년도'''}}} ||<-4>?~기원전 1245년 || || {{{#FFFFFF '''종교'''}}} ||<-4>[[유대교]] || || {{{#FFFFFF '''아버지'''}}} ||<-4>눈 || || {{{#FFFFFF '''직업'''}}} ||<-4>종교지도자 || || {{{#FFFFFF '''전임'''}}} ||<-4>[[모세]] || 본서의 주된 인물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יְהוֹשֻׁעַ בִּן נוּן, Yehoshua Ben-Nun)'이다. 본명은 "[[구원]]"을 의미하는 '[[호세아]](הושע, Hoshea)'이며, [[모세]]에 의해 새롭게 붙여진 이름인 '여호수아'는 "[[야훼|주님]]은 구원이시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곧 '''[[예수]]'''(ישו)란 인명의 원형이기도 하다.[* 히브리어 발음으로 예호수아(여호수아) -> 예수아(예수) ]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서력기원|기원전]] 12세기 경의 인물로 추정되며 110세에 생을 마쳤다. [[성인]]으로서의 축일은 [[가톨릭]]과 [[정교회]] 모두 [[9월 1일]]이다. [[성경]]의 첫 등장은 [[출애굽기]]로 아말렉군의 습격을 모세의 응원 하에 대응한 지휘자이며 [[조운]]처럼 상승장군이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탐군 12인 중에 하나이며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함께 [[이집트]]를 탈출한 세대 중에서 가나안에 들어간 두 생존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모세]]는 신관, 정치가, [[예언자]], 군인 등 여러 가지 성향의 인물인 데 반해 여호수아는 그냥 정치가 및 군인으로만 나오는 흥미로운 차이점이 있다. 이는 제사에 관련된 것이 체계화되면서 신관의 역할은 레위 지파, 제사장 가문에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민수기]]에서는 [[12지파]] 중 에브라임 지파 대표로 [[가나안]](현 [[팔레스타인]])의 정찰병으로 활동, 12명의 정찰병 중 여분네의 아들 갈렙[* 유다 지파 대표로 정찰병이 된 사람으로, 유대인에 편입된 외래민족이다. 민수기에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만 나오지만, 여호수아에는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으로 적고 있다. ]과 더불어 긍정적인 보고를 하였고, 이에 당시 성인들 중 갈렙과 함께 유일하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모세]] 사후에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가나안]] 점령 전쟁과 땅의 분할을 지휘했다. [[모세]]의 후계자 겸 수종자로, 여호수아 1장 1절에서는 야훼의 종 모세의 수종자 여호수아로 기록되나, 마지막 장인 24장 29절에서는 야훼의 종 여호수아로 묘사된다. 모세 이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유대 민족을 이끈 여호수아의 고뇌와 성장에 초점을 맞춰 읽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그의 전임자인 모세는 40년간 대제국 이집트의 왕자였으며, 40년간은 유목민의 주요 생계를 책임지는 목자로서 활동했고, 이후에는 이집트의 지배자 파라오와의 항쟁을 통해 히브리인을 해방시켰고, 그 거대한 민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했다. 그 와중에도 "이집트로 돌아가자"는 자기 백성의 원성과 불평을 수도 없이 들으며 40년간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직접적으로 인도하며 자기 민족의 세대교체기가 다할 때까지 홀로 지도자로서 활동했던 외로운 투사였다. 때문에 당시 여호수아가 아무리 야심가였다고 해도, 모세 생전에는 감히 그의 카리스마를 넘어서지 못한 채 1인자의 그늘에 가린 2인자였다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줄거리 ===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곧바로 요르단강을 건너 가나안 지방의 관문인 예리고 성[* 공동번역 성서상의 표기이다. 개신교 통용 표기는 "여리고", 가톨릭 통용 표기는 "예리코"이다. 현대 히브리어로는 예리호(יְרִיחוֹ, [jɛʁiˈχo\])로 발음한다. ]을 침공한다. 난공불락의 성으로 명성이 높은 예리고 성이었지만 여호수아는 [[야훼]]의 명령에 따라 높은 성벽 둘레를 엄숙하게 행진하여 7일이 되던 날 일제히 나팔을 불며 고함을 지르자 예리고의 강한 성벽은 무너져 내렸다.[* [[테크노마트 진동]]과 같은 공명 현상 또는 지진에 의한 붕괴로 보는 해석이 있는데, 가능성은 있어도 증명하긴 어렵다. 사실 그 많은 사람들이 동일 주파수로 소리를 질렀을 확률보다는 그냥 타이밍 맞게 지진이 일어났다는 게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고고학적 발굴로는 저 시대 때 아예 성벽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예리코의 전투]] 항목 참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209578| 예리고 성에 대한 기사(상)]]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210383|(하)]] 예리고 성벽을 돌파하여 주민들을 몰살시키고 도시를 철저히 파괴한 후 득의양양한 여호수아는 가나안 고원의 베델 인근 도시이자 요충지인 작은 성 '아이'를 공격하지만 방심한 탓에 패하고 만다. 성경 기록에 따르면 7장에서 수하 중 하나였던 유다 지파의 아간이 '전리품을 취하지 말라'라는 신명을 어긴 탓에 생긴 일이다. 원흉인 아간은 [[야훼]]의 계시인 제비뽑기를 통해 색출되고, 본인 및 자녀들과 우양, 재산은 돌을 맞아 죽는다.[* 성경 본문에도 아이성 공략의 패전의 원인은 아이성이 작은 것에 방심해 소규모 병력만 올려보낸 것으로 나온다. 때문에 신의 개입의 요소를 일단 접어두고 현실적으로 해석하면 근본적인 패전의 책임은 여호수아에게 있기에 아간에게 책임을 돌린 건 여호수아 자신의 실책을 감추기 위한 책임 전가로 볼 여지가 크다. 이는 중국의 [[조조]]가 군 사기를 올리기 위해 군량 담당관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죽인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괴로움의 골짜기라는 뜻의 아골이라는 지명의 유래. 대신 다음번 전투에서는 유인책을 써서 아이성의 군대를 이끌어내고 그 사이에 성을 점령한다. [[갑툭튀]]한 이스라엘 군대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자 당황한 가나안의 여러 왕들은 동맹을 맺고 대군을 동원하여 맞서지만, 주님의 가호를 받는 이스라엘 앞에서 차례대로 [[개발살]] 나고 결국 멸망하고 만다. 최종적으로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에 개선하여 이스라엘 12지파에게 영토를 갈라주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듯 싶었으나 가나안 민족들을 철저히 소멸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일부는 노예로 부려먹었고, 일부는 저쪽에서 필사적으로 저항해서 이스라엘이 정복을 포기했다.] 바로 다음 장인 [[판관기]](사사기)에서 이스라엘 12지파는 다른 민족들에게 [[역관광]]당해 피지배 민족으로 전락해 버렸다. 아무래도 여호수아 다음의 후계자 문제때문에 이렇게 되어버린 것 같다. 신정 국가를 지향한 당시 유대인들은 왕을 모시지 않고 각 지파별 자치제를 택했기 때문에 가나안 족속이 반격하면 지도자가 나올 때까지는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뛰어난 지도자[* 사사 혹은 판관이라고 한다.]가 통치→ 강해짐→ 뛰어난 지도자 사망→ 몰락→ 다시 뛰어난 지도자가 통치를 반복하는 루프식 역사가 시작된다. === 주요 구절 === >9 "너는 내 명령을 듣지 않았느냐? 힘을 내고 용기를 가져라. 무서워 떨지 마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느님 야훼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 >여호수아 1:9 (공동번역)[* 모세의 사후 가나안 입성을 앞둔 여호수아에 대한 야훼의 약속. 개역개정에서는 '강하고 담대하라.'로 유명한 구절.] >33 그리고 나서 온 이스라엘은 장로들과 장교들과 법관들 그리고 외국인 본토인 구별 없이 모두가 야훼의 계약궤를 멘 레위인 사제들 앞에서 법궤를 향하여 양쪽으로 갈라섰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빌어주기 위하여 야훼의 종 모세가 처음 지시했던 대로 반은 [[게리짐 산|그리짐산]] 앞쪽에, 반은 에발산 앞쪽에 섰던 것이다. >34 그 뒤 여호수아는 법의 축복 조항과 저주 조항을 법전에 기록된 대로 낭독하였다. >35 여호수아는 여자와 아이들 또 그들 가운데 끼여 사는 실향민들까지 참석한 이스라엘 대회에서 모세에게 지시받은 말을 한마디도 빼지 않고 낭독하였다. >---- >여호수아 8:33~35 (공동번역)[* 아이성 점령 이후 여호수아의 설교 대목. 영적 침체기로 평가받는 판관(사사) 시대를 생각하면 따끔한 대목.] >주님께서 아모리 사람들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신 날에, 여호수아가 주님께 아뢰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앞에서 그가 외쳤다. "태양아,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달아,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러라!" 백성이 그 원수를 정복할 때까지 태양이 멈추고, 달이 멈추어 섰다. '야살의 책'에 해가 중천에 머물러 종일토록 지지 않았다고 한 말이,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 >여호수아 10:12-14 (새번역) >23 여호수아는 [[야훼]]께서 [[모세]]에게 약속해 주신 대로 전 지역을 정복하고는 그 땅을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하여 지파마다 제 몫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전국에서 전란이 멎었다. >---- >여호수아 11:23 (공동번역) >15 만일 야훼를 섬기고 싶지 않거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여러분이 오늘 택하시오.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에서 여러분의 조상들이 섬기던 신을 택하든지, 여러분이 들어와서 살고 있는 이 땅 아모리인의 신을 택하든지 결정하시오. 그러나 나와 내 집은 야훼를 섬기겠소." >---- >여호수아 24:15 (공동번역) === 기타 === * 여호수아가 가나안 다섯 왕과의 연합 전투에서 승리하고 추격할 시간을 벌기 위해 "해야,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멈추어라."[* 여호수아 10:12] 명령하자 해와 달이 멈추었다는(!) 일화가 나온다.[* 비슷한 일화로 히스기야의 수명 증가 언약 건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것과 관련해서 'NASA에서 일하고 있는 과학자들이 컴퓨터로 우주선의 탄도 궤적을 계산하다가 오류가 났는데 그 이유가 하루에 해당하는 시간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카더라 통신]]이 한동안 인터넷에 떠돈 적이 있지만 허위인 것으로 밝혀졌다.([[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523&orderby_1=editdate%20desc&keyword=nasa&isSearch=1|NASA는 잃어버린 하루를 찾아냈는가?]]) 워낙 널리 알려진 얘기라서 그런지 창조과학자들조차 이건 잘못 알려진 사실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 [[성서고고학#s-2|성서 고고학자]]들은 혜성이 지구 주위를 꽤나 빈번히 지나다녔는데, 이것이 기상 현상에 영향을 주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퉁구스카에 운석이 떨어졌을 때도 지구 반대편의 [[영국]], [[스칸디나비아]] 쪽에서 밤늦게까지 은은하게 빛이 비추었는데, 이것을 고대인들이 해와 달이 멈추었다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 하지만 중세의 몇몇 학자들은[* 많은 사람들의 착각과는 달리 중세 기독교가 꼭 지동설을 반대했던 것은 아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도 기독교 신앙을 가졌기도 하고.] [[성경]]에서 여호수아가 멈추라고 한 것은 태양이지 지구가 아니라는 논리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반대하기도 했다. 다만 당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근거가 지금에 비해 부족했다.[* 지동설은 티코 브라헤의 관측을 바탕으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체계화한 이후 근거를 갖추게 된다.] * 현대에는 [[이스라엘]]이 중동 분쟁 도중과 팔레스타인 지역 분쟁과도 비교하는데, 야훼는 여호수아에게만 전쟁을 허락했을 뿐, 지금의 유대인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지역의 주민들은 원래 그 지역의 유대인들의 후손이다. * 새찬송가 347장 ‘허락하신 새 땅’에는 여호수아를 기반으로 작사되었다. * 성경 등장인물들 중에 영상매체화되는 빈도가 저조한 편이다. 창세기의 인물들, 모세, 삼손, 다윗 등에 비해 극적인 이야기가 별로 없는 데다 주역이 되는 활약이 보기에 따라서 침략 전쟁이 되는 데다 매국노로 볼 수 있는 라합이나 패전의 책임을 모두 덮어쓴 감이 강한 아간 이야기 등 해석에 따라서 혐오감을 주는 일화들이 존재하고 어떻게 미화를 해도 개운치 않은 느낌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화 [[십계(영화)|십계]],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에서는 모세를 따르던 젊은 시절의 여호수아가 나온다. * 모세의 출애굽 당시 이미 이집트의 노예로서 지내온 세월이 존재한 덕분에 '''강하고 담대하라'''라는 구절이 나온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리더인 모세는 이집트의 왕족출신이라 달랐을 수 있지만 모세를 제외하면 히브리인들은 이집트에서 노역을 하며 지내왔고 심지어 모세의 출생당시엔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죽여라'라는 파라오의 명령까지 있었다. 심지어 출애굽 이후로도 나고자란 애굽을 그리워하기까지하며 야훼가 만나와 메추리를 내리기까지 했음에도 불평과 불만을 시시때때로 토해내며 모세가 시내산에 올랐을 땐 금송아지 숭배까지 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 등 수차례 야훼의 이적을 보았음에도 클레임을 걸어대던 민족인만큼 야훼가 아끼던 모세만해도 결국 못참고 돌판을 후려패서 가나안에 못들어가게 됐는데 모세만큼 야훼가 아꼈다는 묘사가 없는 여호수아 입장에선 상당히 심적으로 쫄릴 수 있었다는 추측이다. 그리고 결국 당시 정탐을 갔던 갈렙을 제외하면 전부 가나안 정벌에 회의적으로 반응했으며 그 결과 둘을 제외한 나머지, 즉 이집트의 노예출신들은 전부 죽고 노예로 지낸 경험이 전무한 광야에서 태어난 그 자손대에 가서야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을 거란 말을 듣고 만다. [[분류:구약성경]][[분류:성경/등장인물]][[분류:아홉 위인]] [include(틀:포크됨2, title=여호수아, d=2022-07-08 14:3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