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부르봉 가문]][[분류:1764년 출생]][[분류:1794년 사망]][[분류:베르사유 출신 인물]][[분류:프랑스의 공주]][[분류:참수된 인물]] ||<-2>
'''프랑스의 장공주[br]{{{+1 엘리자베트 필리프 마리 엘렌}}}[br]Élisabeth de France'''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Vigée_Le_Brun_-_Élisabeth_of_France,_Versailles.jpg|width=100%]]}}} || || '''이름''' ||엘리자베트 필리프 마리 엘렌[br](Élisabeth Philippe Marie Hélène)|| || '''출생''' ||[[1764년]] [[5월 3일]][br][[프랑스 왕국]] [[베르사유 궁전]]|| || '''사망''' ||[[1794년]] [[5월 10일]] (향년 30세)[br][[프랑스 제1공화국]] [[파리(프랑스)|파리]]|| || '''아버지''' ||[[루이 페르디낭|프랑스의 도팽 루이]]|| || '''어머니''' ||[[작센]]의 마리아 요제파|| || '''형제''' ||마리 제피린, [[루이 16세]], [[루이 18세]], [[샤를 10세]], [[마리 클로틸드]]|| || '''종교''' ||[[가톨릭]]|| [목차] [clearfix] == 개요 == 통칭 마담 엘리자베트(Madame Élisabeth)로 [[프랑스]]의 왕족이자 왕의 누이인 [[장공주]]. [[루이 페르디낭|프랑스의 루이 왕세자]]와 작센의 마리아 요제파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왕위를 물려받지 못한 채 사망하고 오빠인 [[루이 16세]]가 즉위함에 따라 왕의 여동생 신분이 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녀의 올케 언니가 된다. == 생애 ==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생후 19개월 만에 아버지 [[루이 페르디낭|루이 왕세자]]가 사망했고, 3살 때 어머니 마리아 요제파마저 사망하여 고아가 되면서 마루산 후작 마리 루이즈가 대신 길렀다고 전해진다. 오빠인 [[루이 16세]]와 유독 사이가 좋아 성장한 후에도 당시 왕족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결혼]]을 하지 않고 그의 곁에 남아 있었다. 충성심이 깊고 온화한 성품으로 오빠인 루이 16세뿐만 아니라 올케인 [[마리 앙투아네트]]와도 친밀한 사이였으며, 조카들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좋은 [[고모]]였다. 프랑스에 왕세자비로 들어와 왕후가 된 후에도 왕족들과 국민들로부터 오해를 받고, 원성을 듣느라 겉돌았던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마담 엘리자베트는 고마운 시누이였다. 그래서 한때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녀를 큰오빠인 [[요제프 2세]]와 맺어 주려 하기도 했으나[* 한국 같았으면 [[겹사돈]]이라며 기겁을 하겠지만 당시 유럽에서는 겹사돈이 드문 일이 아니었다. 당장 마리 앙투아네트의 아버지인 [[프란츠 1세]]와 이모부인 [[카를 알렉산더]]는 친형제지간이다.] 마담 엘리자베트가 거절했고,[* 마담 엘리자베트에게는 고모들이 되는 [[루이 15세]]의 세 딸들도 프랑스의 공주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 끝내 결혼하지 않고 프랑스에 남은 바 있으니 고모들의 영향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두 차례나 사별하고 다시는 재혼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천명한 바 있던 요제프 2세 역시 의사를 바꾸지 않아서 무산된 바 있었다. 루이 16세의 남동생들인 프로방스 백작(훗날 [[루이 18세]])[* 단 루이 18세는 바렌 도주 사건 때 루이 16세와 다른 루트로 도주에 성공한 것이지, 샤를 10세처럼 혁명이 터지자마자 망명한 것은 아니었다.]과 아르투아 백작(훗날 [[샤를 10세]])은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형과 그 가족들을 외면하고 살 길을 찾아 국외로 망명했다. 그러나 여동생 마담 엘리자베트만은 끝까지 국왕 일가와 운명을 함께 했다. 1791년에 국왕 일가가 도주할 때에도 같이 갔으나 [[바렌 사건|바렌에서 발각되어 체포된 후]] 역시 국왕 일가와 함께 탕플 탑에 감금되었다. 1793년 [[마리 앙투아네트]]는 처형되기 전날에 시누이 마담 엘리자베트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으나, 이 편지는 결국 전해지지 못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편지를 통해 마담 엘리자베트에게 자신들([[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을 떠나려면 얼마든지 떠날 수 있었을텐데도, 끝까지 곁에 있어 줘서 고맙다는 뜻을 전하면서 자신들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비록 자신은 죽더라도 마담 엘리자베트와 아이들만은 살아남고, 아이들이 나중에 [[고모]]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가족들 중 장녀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만 살아남았기에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된 후에도 마담 엘리자베트는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와 함께 탕플 탑에 계속 감금 중이었으나[* 다만 어디까지나 같은 탑에 감금되어 있었을 뿐이고, 마담 엘리자베트와 마리 테레즈는 서로를 만나지 못했으며 마담 엘리자베트가 죽은 후에도 마리 테레즈는 고모의 죽음 소식을 듣지 못했다.], 1794년 5월 10일 결국 마담 엘리자베트도 30세의 젊은 나이로 처형된다. 30세 생일을 맞은 지 불과 일주일 만이었다. 혁명재판소에서 마담 엘리자베트가 받은 죄목은 국외로 망명을 시도하고 국왕 일가의 도주를 도운 죄, 외부의 적들과 내통하였고 그들에게 군자금을 지원해 프랑스의 안전을 위협한 죄, 조카 [[루이 17세]]와 [[근친상간]]을 하였다는 죄였다. 그 중 근친상간 혐의에 대해선 한 나라의 [[공주]]가 왕세자인 어린 조카와 근친상간을 했다는 죄목[* 당시 조카 루이 17세는 10세도 안 된 어린아이였다.] 자체도 어처구니가 없는 데다가, 평소 신앙심과 충성심이 깊었던 마담 엘리자베트가 그럴 짓을 할 이미지가 전혀 아니었기에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를 위협하던 외국 세력을 지원했다는 증거들이 나와서, 이후 재판에서 마담 엘리자베트는 사형 판결을 받았다. 마담 엘리자베트는 처형 당일 처형장으로 가기 전 함께 사형될 사형수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었다. 여담이지만 [[단두대]]에서 마담 엘리자베트의 어깨에 걸쳐져 있던 숄이 흘러내렸고 그녀는 사형 집행인에게 숄을 다시 걸쳐 달라고 부탁했으나, 그 순간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는 바람에 그 부탁이 유언이 되어버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 가족관계 == ||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13> 프랑스의 엘리자베트[br]{{{-2 (Élisabeth of France)}}} ||<|6> [[도팽 루이 페르디낭|프랑스의 왕세자 루이]][br]{{{-2 (Louis, Dauphin of France)}}} ||<|3> [[루이 15세]][br]{{{-2 (Louis XV of France)}}} || || [[프티 도팽 루이|부르고뉴 공작 루이]][br]{{{-2 (Louis, Duke of Burgundy)}}} || || [[사보이아 가문|사보이아]]의 마리아 아델라이데[br]{{{-2 (Marie Adélaïde of Savoy)}}} || ||<|3> [[마리아 레슈친스카|마리 레슈친스카]][br]{{{-2 (Marie Leszczyńska)}}} || || [[스타니스와프 1세 레슈친스키]][br]{{{-2 (Stanisław I Leszczyński)}}} || || 카타지나 오팔린스카[br]{{{-2 (Katarzyna Opalińska)}}} || ||<|7> [[작센 선제후국|작센]]의 마리아 요제파[br]{{{-2 (Maria Josepha of Saxony)}}} || ||<|3> [[아우구스트 3세]][br]{{{-2 (August III)}}} || || [[아우구스트 2세]][br]{{{-2 (August II)}}} || || 브란덴부르크바이로이트의[br]크리스티아네 에버하르디네[br]{{{-2 (Christiane Eberhardine[br]of Brandenburg-Bayreuth)}}} || ||<|3>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요제파[br]{{{-2 (Maria Josepha of Austria)}}} || || [[요제프 1세]][br]{{{-2 (Joseph I)}}} || || [[빌헬미네 아말리|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br]빌헬미네 아말리]][br]{{{-2 (Wilhelmine Amalia[br]of Brunswick-Lüneburg)}}} || == 대중매체 ==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만화)]]에서도 등장. [[프랑스 혁명]] 이후 큰오빠 [[루이 16세]]와 올케 [[마리 앙투아네트(베르사이유의 장미)|마리 앙투아네트]] 일가와 함께 폐위되어 탕플 탑에 수감되자, 왕위를 노리고 해외로 망명하여 자신들을 버린 작은오빠 [[루이 18세|프로방스 백작 루이]]와 셋째오빠 [[샤를 10세|아르투아 백작 샤를]]을 저주한다. 급기야 국민투표를 통해 루이 16세의 처형이 결정되자 마리 앙투아네트와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조카]][[루이 17세|들]]과 함께 슬퍼하고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는 소리를 듣고 절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