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828년 출생]] [[분류: 1894년 사망]][[분류:나폴리 출신 인물]] ||<-2>
'''{{{+1 엔리코 달가스 }}}[br]Enrico Mylius Dalgas''' || ||<-2>|[[파일:dalgas_enrico.jpg]] || || '''국적''' || [[파일:덴마크 국기.svg|width=28]] [[덴마크]] || || '''출생''' || [[1828년]] [[6월 16일]] || || '''사망''' || [[1894년]] [[4월 16일]] || [목차] == 개요 == [[덴마크]]의 군인출신 사회 부흥운동가. == 생애 == 엔리코 달가스는 [[1828년]] [[6월 16일]], [[18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 [[덴마크]]로 이주한 [[프랑스]]계 이민 집안에서 태어났다. [[1855년]] 북유틀란트 비보르 군사용 도로부설대의 중위로 임관되어 [[1856년]] 대위, [[1860년]] 중령으로 진급하였다. [[1864년]]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두 공국의 귀속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프로이센과의 두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패하여 실의에 빠져 있던 덴마크 국민들에게 용기와 의욕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달가스는 [[1866년]] [[오르후스]]에서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과 함께 히스협회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에 취임하여 유틀란트의 히스시대 개간에 착수하였다. 달가스는 비보르에서 근무하는 동안 유틀란트의 토양을 연구하고 이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때의 지식이 히스시대의 개간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히스협회 회원들의 열성에 감동한 덴마크 국민들이 그들의 작업에 자발작으로 참여하여 황무지에 나무심기를 거듭한 끝에 거친 땅을 옥토로 바꾸어 놓았고, 국민들도 실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행적이나 한 일의 구체적인 내용 등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그리 많지 않다. 달가스는 [[1894년]] [[4월 16일]] 항년 66세로 작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