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일본의 세계유산)] [[파일:enryakuji.jpg]] ||<-3><#000><:> '''[[유네스코|{{{#fff 유네스코}}}]] [[세계유산|{{{#fff 세계유산}}}]]''' || ||<-3><#fff>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width=160]] || ||<|4> 이름 || 한국어 || [[고대 교토의 역사 기념물]] || || 영어 || Historic Monuments of Ancient Kyoto[br](Kyoto, Uji and Otsu Cities) || || 일본어 || 古都京都の文化財[br](京都市、宇治市、大津市) || || 프랑스어 || Monuments historiques de l'ancienne Kyoto[br](villes de Kyoto, Uji et Otsu) || |||| 국가·위치 || [[일본]] [[시가현]] [[오츠시]] || ||<-3> [include(틀:지도,장소=延暦寺, 너비=100%, 높이=224px)] || |||| 등재유형 || [[세계유산#s-3.1|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94년]] || |||| 등재기준 || (ii)[*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iv)[*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 |||| 지정번호 || [[http://whc.unesco.org/en/list/688|688]] || |||| 홈페이지 || [[https://www.hieizan.or.jp/|[[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width=25]]]] || [목차] [clearfix] == 개요 == {{{+2 [ruby(延, ruby=えん)][ruby(暦, ruby=りゃく)][ruby(寺, ruby=じ)] / Enryakuji / 연력사}}} [[일본]] [[시가현]] [[오츠시]] [[히에이산]]에 위치한 [[절(불교)|사찰]]이며, 일본 [[https://www.tendai.or.jp/|천태종(天台宗)]]의 총본산이다. 서기 788년에 작은 사찰로 창건되었으며, 822년부터 정식으로 승려를 배출하는 천태종의 본산이 되었다. [[헤이안 시대]]부터 조금씩 타 종단의 견제를 받기 시작하면서 [[자경단]] 목적으로 [[소헤이|소헤이(승병)]]를 양성했는데, 이것 때문에 오히려 엔랴쿠지가 독립화된 무장세력이 되었고, 부정부패가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센고쿠 시대]]에 엔랴쿠지는 그 자체가 하나의 [[다이묘]]처럼 되어 [[주지육림]]에 빠지고 민중을 괴롭혔다. 그러나 교토를 장악한 [[오다 노부나가]]에 밉보인 것[* 스스로가 하나의 [[다이묘]]처럼 변해버린 엔랴쿠지는 오우미 지방을 기반으로 하는 [[군벌]]이었고, 노부나가가 키나이로 진출하던 시절에는 북쪽의 [[아사쿠라 요시카게]], 동쪽의 [[아자이 나가마사]]와 동맹상태였다. 단순히 노부나가에게 밉보인 것이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 적대관계였던 셈.]을 계기로 노부나가가 민중의 여론을 등에 업고 1571년에 엔랴쿠지를 토벌하고 불태워버렸다.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불탄 뒤 재건된 건물이다. 평지가 좁은 가파른 산에 지어졌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절인만큼 전각 하나하나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1994년에 [[고대 교토의 역사 기념물]]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여담 == 한국사와도 약간 관련이 있는데, 승려 [[엔닌]]이 [[입당구법순례행기|중국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신라]]의 [[장보고]]가 도왔고 엔닌은 일본으로 귀국해 엔랴쿠지에서 지냈다. 그래서 지금도 장보고 기념비가 있다. [[무사시보 벤케이]]가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를 만나기 전 이곳에서 수행을 했었다고 한다. 2016년에 선배 승려가 후배 승려를 폭행하는 가혹행위 사건이 터졌는데, 조사 과정에서 과거에 [[야쿠자]]와 [[https://www.excite.co.jp/news/article/Cyzo_201606_post_20279/|연루된 사실이 덤으로 발각]]되는 바람에 오다 노부나가한테 박살난 기억을 잊었냐고 비난 받은적이 있다. 2021년 9월 12일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후손[* 이름은 오다 시게카즈(織田茂和)로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한다.]과 [[아케치 미츠히데]]의 후손[* 역사학자인 아케치 켄자부로(明智憲三郎)]을 법회에 초청하고 토론회까지 가졌다. 이를 두고 일본 국내에서는 '450년만의 화해'라는 반응이 많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nvemGGek_QY|#]] [[분류:시가현]][[분류:일본의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