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AEAEA 0%, #FFFFFF 20%, #FFFFFF 80%, #EAEAEA)" {{{#ed1b2f ''' 에프라임 롱워스의 기타 정보 ''' }}} }}}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nclude(틀:리버풀 FC/명예의 전당)] }}}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rgba(50%, 50%, 50%, 30%) 0%, transparent);" {{{+1 {{{#000000,#e5e5e5 ''' 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phraim longworth.jpg |width=100%]]}}} || ||<-3> {{{+1 '''에프라임 롱워스'''}}}[br]'''Ephraim Longworth''' || ||<-2> {{{#000000,#e5e5e5 ''' 출생 ''' }}} ||[[1887년]] [[10월 2일]] [br] {{{-1 [[잉글랜드]] [[볼턴]] 할리웰 }}} || ||<-2> {{{#000000,#e5e5e5 ''' 사망 ''' }}} ||[[1968년]] [[1월 7일]] (향년 90세)[br] [[잉글랜드]] [[머지사이드|머지사이드 주]] [[리버풀]]|| ||<-2> {{{#000000,#e5e5e5 ''' 국적 ''' }}} ||[include(틀:국기, 국명=영국)] ([include(틀:국기, 국명=잉글랜드)]) || ||<-2> {{{#000000,#e5e5e5 ''' 직업 ''' }}} ||[[축구선수]] ([[풀백]] / ^^은퇴^^) || ||<|2> {{{#000000,#e5e5e5 ''' 소속 ''' }}} || {{{#000000,#e5e5e5 ''' 선수 ''' }}} ||하이드 유나이티드 FC (~1908) [br] [[볼턴 원더러스 FC]] (1908~1910) [br] → {{{-1 레이튼 FC (1910 / ^^임대^^)}}} [br] '''[[리버풀 FC]] (1910~1928)''' || || {{{#000000,#e5e5e5 ''' 기타 ''' }}} ||[[리버풀 FC]] (1928~1938/^^구장 관리인^^) || ||<-2> {{{#000000,#e5e5e5 ''' 국가대표 ''' }}} ||5경기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 / 1920~1923)^^ || [목차] [clearfix] == 개요 == [[잉글랜드]] 국적의 前 축구 선수. 20세기 초반 [[리버풀 FC]]에서 활약하였고, 리버풀 역대 최고의 주장 중 하나로 꼽힌다. == 클럽 경력 == 잉글랜드 볼턴의 할리웰에서 태어난 롱워스는 1908년 하이드 유나이티드에서 뛰다가 당시 랭커셔 리그에 소속되어있던 [[볼턴 원더러스 FC]]에 입단한 뒤 본격적인 시니어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일찍이 그는 좌우 풀백을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었으며, 이후 런던 서던리그의 레이튼 FC에서 몸담던 중 [[리버풀 FC]]의 [[톰 왓슨(축구)|톰 왓슨]] 감독에게 스카웃되어 안필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1910년 리버풀에 입성한 롱워스는 같은 해 9월 19일 [[셰필드 유나이티드]]와의 풋볼 리그 1부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이후 리버풀에서 상징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40세까지 무려 18년간 리버풀에서 뛰면서 370경기에 출전했으며, 커리어 중 두 차례 리버풀의 주장을 맡아 리버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롱워스는 지역방어가 대세였던 20세기 초 당시의 축구 트렌드에도 불구하고 건실하게 뛰어 폭넓은 활동량을 자랑했으며, '풀백의 왕자'라는 이명을 얻을만큼 당대 최고의 우측면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다. 반대편 풀백을 담당한 [[도날드 맥킨리]]와의 파트너십은 당대 리버풀의 중추를 이루어 그 명성을 자랑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1921-22 시즌과 1922-23 시즌에 롱워스는 리버풀이 백투백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우며 영광의 순간을 달성하기도 했다. 40세가 되던 1928년 4월 21일,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서 은퇴전을 치른 롱워스는 은퇴 이후 리버풀에서 스태프로 동행을 이어갔다. 그는 구장 관리인으로서 약 10년 간 [[안필드]]의 모든 것을 담당하며 리버풀에 헌신했다. 이후 1968년 90세의 나이에 영원한 리버풀의 전설로 타계하였다. == 국가대표 경력 == 1920년 힐스보로에서 열린 스코틀랜드와의 경기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 처음 선발되었고, 이후 국가대표팀의 주장직을 맡으며 활약했다. 1921년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처음 주장직을 맡았으며, 리버풀 선수 중 최초의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기록되었다. == 기록 == === 대회 기록 === * [[리버풀 FC]] (1910~1928) * [[프리미어 리그|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921-22, 1922-23 === 개인 기록 === * [[리버풀 FC]] 최초의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여담 == * 1910년에 함께 입단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좌측 풀백 [[도날드 맥킨리]]와 함께 당대 최고의 좌우 풀백 듀오로 불렸다. 맥킨리와 롱워스는 당대 축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공격적인 풀백들로, 당시 팀의 중추이자 팀의 주장단이기도 했는데, 약 90년 뒤인 2018년에 리버풀에는 또 다른 잉글리시-스코티시 풀백 듀오,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와 [[앤디 로버트슨]]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잉글랜드 출신의 우풀백 아놀드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좌풀백 로버트슨 또한 리버풀의 중추이자 팀 리더로 활약 중이다. * 리버풀에서 공식경기 370경기에 출전해 득점을 한 번도 기록하지 못했다. 이에 리버풀 최장경기 무득점 기록 보유자이다. [[분류:1887년 출생]][[분류:리버풀 출신 인물]][[분류:잉글랜드의 축구선수]][[분류:리버풀 FC/은퇴,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