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wxsi0t.jpg]] [목차] == 개요 == [[소아시아]] 서해안 도시 '[[에페소]]'의 7인의 잠든 자로 불리는 사람들은 성 막시미아노(Maximianus), 성 말코(Malchus), 성 마르티니아노(Martinianus), 성 디오니시오(Dionysius), 성 요한(Joannes), 성 세라피온과 성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로 이들의 이름들은 여러 전승 기록에 따라 다르게도 나타난다. 이들은 [[데키우스]] 황제의 통치 때 [[동굴]]에 감금당했으나 '''200년 후 살아있는 채로 발견되었고, 그들은 깨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고 전하며, 이후 [[성인(기독교)|성인]]으로 공경받기 시작했다. 장시간의 수면은 [[신화]]와 민담의 공통된 주제로, [[기독교]]의 색채를 머금고 있는 이 이야기는 이미 6세기에 널리 유포되었다.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은 500년경에 사루(Sarugh)의 성 야고보(Jacobus)가 시리아어로 남긴 기록이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 [[도미니코회]] [[수도자]]인 보레뉴(Voraigne)의 [[복자]] 야고보(Jacobus)가 [[황금전설]]을 포함시킨 후 인기가 많아졌다. == 내용 == 7인의 잠든 자들은 [[에페소]]에서 태어났다. [[로마 제국]]의 [[데키우스]] [[황제]]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처형하러 에페소에 와서 도시 중앙에 신전을 짓고,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자신과 함께 [[우상숭배|우상에게 제사]]를 올려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내어 "제사를 올리든지, 아니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경험하든지, 둘 중에서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그 일로 인해 고통이 너무나 두려웠던 나머지 친구가 친구를 배신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밀고하고, 아버지가 아들과 인연을 끊는 일도 발생했다. 이때 '7인의 잠든 자'로 불리는 7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체포되었다. 그들은 우상에게 희생제사를 드리기를 거부하는 데 앞장선 인물들로, 자신들의 집에 숨어 [[단식]]하고 기도하던 이들이었다. 때문에 많은 군중들은 그들의 체포에 대해 슬퍼하였다. 데키우스 황제에게 고발당한 후, 그들은 신심이 매우 깊은 신앙인임이 드러났다. 그들은 데키우스 앞에 재출두하기 전 배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 와중에 자신들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고, 모여서 회의하여 첼리온 산(Mount Celion)에 올라가 비밀리에 긴 시간을 지냈다. 그들은 서로를 돌보고 봉사하며, 도시로 내려올 때면 걸인 복장을 하고 내려오곤 했다. 데키우스 황제가 돌아와 그들을 소환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그들을 섬기며 식사와 음료를 대접하던 성 말코는 몹시 무서워하며 돌아와 황제의 광포함과 광기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모두 두려움에 빠졌다. 그러나 갑자기 그들은 [[야훼|하느님]]의 뜻대로 모두 잠에 빠졌고,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그들을 찾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데키우스 황제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그들이 살던 [[동굴]]의 입구를 돌로 막아 봉인하여 그들이 굶어죽도록 했다. 지방장관과 2명의 신자인 테오도루스(Theodorus)와 루피누스(Rufinus)는 그들의 [[순교]]록을 써서 돌 사이에 끼워 놓았다. 데키우스 황제가 사망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테오도시우스]] 황제 재위 30년에 그들은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데키우스 황제 재위에서 200년 후이니, 1세가 아니라 [[테오도시우스 2세]](408~450) 재위 기간일 것이다.] 그 무렵에 한 [[에페소]] 시민이 버려지고 별 쓸모없는 산에 [[목자|목동]]을 위해 마구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마구간을 만들던 한 [[벽돌]]공이 우연히 [[동굴]]을 열게 되었고, 그 순간 7명의 성인들은 잠에서 깨어 서로 인사를 하며 전날의 무서운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겨우 하룻밤만 지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성 막시미아노는 그들의 종이었던 성 말코에게 "시내로 가서 [[빵]]을 사와라. 어제 사왔던 양보다 조금 더 사와라"라고 시키고, 또한 "황제의 명령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성 말코는 5실링을 가지고 동굴을 나왔고, [[동굴]] 앞에 있던 벽돌공과 돌들을 보고 그들을 축복해 주었다. 그러나 성 말코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으므로, 앞에 놓인 돌들에 대해 별로 놀라움을 느끼지는 못하였다. 도시의 성문에 도달하자 성 말코는 점점 의심을 품게 되었고, 완전히 아연실색하게 되었다. 성문 위에 달려 있는 [[십자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바로 다른 성문에 가보자 역시 십자가가 달려 있었고, 모든 성문에 십자가가 달려있다는 사실과 도시 전체가 장식되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성 말코는 스스로를 진정시킨 뒤 자신의 얼굴을 숨기고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빵가게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야훼|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듣고, 말코는 머뭇머뭇하며 말했다. >어제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더니 어떻게 오늘은 모든 이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까? 이 도시는 다르게 지어진 에페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이 도시는 참으로 [[에페소]]가 맞다"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성 말코는 동료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빵]]을 사고 돈을 지불했다. 그러자 말코가 건넨 돈을 보고, 상인은 놀라서 "이 젊은이가 오래된 보물을 발견했다!"고 외쳤다. 그리고 "옛 황제들의 보물을 보여주면 빵과 돈을 주겠다."고 말하며, "어디서 왔느냐? 친구가 되어 비밀을 지키겠다"고 말코에게 보챘다. 성 말코는 너무나 놀라 공포에 질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말을 하지 않자, 사람들은 그의 목을 끈으로 묶어 도시 가운데로 끌고 갔다. 성 마르티노(Martinus) [[주교]]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정관인 안티파테르는 이 소식을 듣고, 성 말코와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을 자신들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성당으로 소환된 성 말코는 자신이 데키우스 황제에게 넘겨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주교와 집정관은 돈을 보고 놀랐으며, "알려지지 않은 이 보물을 어디서 발견했느냐?"고 물었다. 성 말코는 "그 돈은 어디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나의 가문과 재산에서 나온 것입니다"라고 설명하였다. 집정관은 "이 돈은 데키우스 황제의 통치 초기의 것으로, 현재 통용되는 것과 전혀 다르다"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성 말코는 무척 당혹스러워하며 "우리들은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로부터 도망쳐 있으며, 만약 이 도시가 에페소가 맞다면 어제 황제가 에페소로 들어왔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주교는 한참을 생각한 후, 주님께서 이 젊은이를 통해 무엇인가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성 말코는 주교와 집정관에게 말했다. >나를 따라 오십시오. 첼리온 산에 있는 나의 동료들을 보여주겠습니다. 그리고 믿으십시오. 우리 모두가 데키우스 황제의 면전에서 도망쳐왔다는 것만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들은 성 말코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고, 도시의 많은 군중들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성 말쿠스가 [[동굴]]에 먼저 들어가고 주교가 뒤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동굴을 막았던 돌들 사이에서 [[은]]으로 봉인된 2개의 편지를 발견했다. 주교는 함께 온 이들을 불러 모아 놓고 그들 앞에서 편지의 내용을 읽었다. 모든 이들이 놀라며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동굴 안에 앉아있는 성인들을 보았다. 그들의 용모는 피어나는 [[장미꽃]] 같았으며,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있었다. 성 막시미아노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설명하며 "부활을 굳게 믿는다면 영원히 살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그리스도께 자신들을 맡겨드리고 숨을 거두었다. 그날 밤 성인들은 황제에게 나타나 "우리가 다시 부활할 그날까지 누워있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황제는 동굴을 진귀한 돌로 아름답게 꾸미고, 귀한 보물로 그들의 무덤을 장식하였다. == 전승의 해석 == 이 사건은 몇몇 잊혀진 묘소를 발굴하던 중 “주님 안에서 잔다(Requiescant in Dominus)”라는 용어를 오해한 데서 나온 이야기일 가능성이 있으며, 아니면 육신의 [[부활]]에 대한 논쟁과 연관되어 기록된 신심 깊은 가공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야기의 근원이 어찌되었건 시간이 지나면서 이 영웅들은 [[성인(기독교)|성인]]으로 추앙되었다. 특히 동방교회([[정교회]])에서 이 성인들은 지금까지도 매우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들이 발견되었던 [[동굴]]은 순례자들에게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그들의 시신은 큰 석관에 담겨 [[프랑스]]의 [[마르세유]](Marseille)로 옮겨져서 성 빅토르(Victor) 성당에 안장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바로니우스(Baronius)는 이 이야기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들의 축일은 로마 [[순교]]록에 의해 보존되었다. 교회미술에서 그들은 '[[동굴]]에서 잠들어 있는 7명의 젊은이'로 묘사되고 있다. == [[이슬람]]에서 == 의외일 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는 [[쿠란]] 제 18장에도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다만 여기서는 사람 수가 언급되어 있지 않은 반면, 동굴 입구를 지키던 개 한 마리와 함께 309년간 잠들어 있다가 깨어났다고 묘사된다.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49026|#]] 잠든 자들의 동굴이라고 알려진 곳은 중동에 여러 개 있지만,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기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에페소(현 [[셀축]])에 위치한 동굴이 진짜라 믿는다고 한다. [[분류:가톨릭]][[분류:이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