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 '''{{{+1 Esztergom}}}''' || ||<-2> [include(틀:지도,장소=Esztergom,너비=100%,높이=100%)] || ||<-2>|| [목차] == 개요 == [[헝가리]] [[가톨릭]]의 중심지인 [[도시]]. == 언어 표기 == || [[헝가리어]] || Esztergom || || [[슬로바키아어]] || Ostrihom[* 오스트리홈] || || [[크로아티아어]] || Ostrogon[* 오스트르곤] || || [[독일어]] || Gran[* 그란] || || [[터키어]] || Estergon[* 에스테르곤] || == 역사 == 헝가리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960년]] [[마자르족]]의 족장 게저(Géza)가 이곳을 자신의 거처로 삼았으며 아들 [[이슈트반 1세]]는 에스테르곰에서 태어나 [[교황]]으로부터 [[헝가리 왕국]]의 [[국왕]]으로 승인받았다. [[아르파드 왕조]] 시대에는 헝가리 왕국의 [[수도(행정구역)|수도]]로서 [[도나우강]]을 낀 [[국제도시]]로 번성했으나 [[몽골제국]]의 침공으로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이후 [[벨러 4세]]가 [[부다페스트|부더]]로 수도를 옮기면서 정치적인 입지는 약해졌으나 여전히 종교적인 중심지로서의 입지를 공고했다. 14~15세기에 [[카로이 로베르트]], [[러요시 1세]], [[지기스문트|지그몬드]], [[마차시 1세]] 등의 치세에도 에스테르곰은 여전히 중요한 도시였으나 [[1526년]] [[모하치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에게 대패하면서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입었다. [[러요시 2세]] 전사 후 [[오스트리아 대공국|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페르디난트 1세]]와 [[트란실바니아|에르데이]]의 서포여이 야노시가 에스테르곰을 두고 서로 싸웠고 때로는 [[오스만 제국군]]까지 이 도시를 공격했다. 결국 [[1543년]] [[쉴레이만 1세]]의 친정때 함락당해 150년 동안 [[오스만 헝가리]]에 속하게 되었다. [[제2차 빈 공방전]]에서 오스만 제국군이 패퇴하면서 [[대튀르크 전쟁]]이 발발했고 [[1683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해방되었다.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합스부르크 제국]]으로의 반환이 결정되면서 도시의 재건을 위해 [[헝가리인]], [[슬로바키아인]], [[독일인]]이 정착했고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 다시 발전이 정체되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에는 그저 그런 시골 마을에 불과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트리아농 조약]]으로 헝가리가 많은 [[영토]]를 잃고 나서야 다시금 중요성이 올라갔고 이때부터 많은 교육기관과 문화시설이 들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관광 == [[도나우강]]을 따라 여행하는 도나우벤드[* [[헝가리어]]로는 두녀커녀르(Dunakanyar)]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비셰그라드(헝가리)|비셰그라드]]와 묶어서 둘러보기 좋다. 헝가리 가톨릭의 중심지답게 에스테르곰 대성당이 가장 유명하며, 에스테르곰 왕궁도 볼만하다. 도나우강 건너편에는 [[슬로바키아]]의 슈투로보(Štúrovo)[* [[헝가리어]]로는 파르카니(Párkány). 원래 [[슬로바키아어]] 이름은 파르칸(Parkan)이었으나 1948년 슬로바키아어의 아버지 [[루도비트 슈투르]]의 이름을 따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있다.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의 막내딸 [[마리 발레리 마틸데 아말리에]]의 이름을 딴 다리를 건너서 갈 수 있다. [[분류:헝가리의 도시]][[분류:옛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