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854년 출생]][[분류:1917년 사망]][[분류:바르민스코마주르스키에 주 출신 인물]][[분류:독일의 귀족]][[분류:독일의 생물학자]][[분류:노벨생리학·의학상 수상자]] ||<-3> {{{+1 '''[[1901년|{{{#fff 1901년}}}]] [[노벨생리의학상|{{{#fff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 ||<-3>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width=220]] || ||<-3> [[노벨생리학·의학상/수상자|{{{#fff '''수상자 전체 목록 보기'''}}}]] || || 1901년 ||<|2> → || 1902년 || || '''에밀 아돌프 폰 베링''' || [[로널드 로스]][* 말라리아의 인체 침투 과정 연구.] || ||<-2>
'''{{{#white {{{+2 Emil Adolf von Behring}}}[br]{{{+1 에밀 아돌프 폰 베링}}} }}}'''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에밀폰베링.jpg|width=100%]]}}} || || {{{#white '''본명'''}}} ||||에밀 (아돌프) 폰 베링[br]Emil Adolf von Behring || || {{{#white '''출생'''}}} ||||[[1854년]] [[3월 15일]], [[프로이센 왕국]][br][[서프로이센]]주 로젠베르크군 한스도르프[* 그가 태어난 곳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동프로이센]]으로 독일에 잔류하였으나, 1945년 이후 [[폴란드]]로 넘어갔다.] || || {{{#white '''사망'''}}} ||||[[1917년]] [[3월 31일]] (향년 63세),[br][[독일 제국]] [[마르부르크]] || || {{{#white '''국적'''}}} ||||[[독일]]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width=28]] || || {{{#white '''분야'''}}} ||||[[생리학]], [[면역학]], 세균학 || [목차] [clearfix] == 개요 == 1854년 프로이센 왕국(현재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독일의 세균학자로 1901년의 첫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1917년 [[독일 제국]]에서 63세의 나이에 죽었다. == 생애 == [[서프로이센]]주 출신으로, 원래 [[군의관]]이 되려고 1878년 베를린의 육군군의학교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근무하였다. 그곳에서 일본인 생물학자인 [[기타자토 시바사부로]]와 함께 파상풍에 걸린 다른동물의 피를 통해 수동적으로 면역을 만들 수 있음을 밝혀냈다. 1890년 그는 전염병연구소로 소속을 옮겨 [[소독]]에 대해 연구하였다. 이후 [[혈청]]의 항균작용에 관한 연구에서 전염병의 면역치료에 관한 문제로 전환하여 그 해 연말에 기타자토 시바사부로와 함께 [[디프테리아]] 치료 혈청 및 [[파상풍]] 혈청을 발견했다. 이 일로 에밀은 1901년 노벨상을 받았고, [[빌헬름 2세]]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아 이름에 '폰(von)'을 붙이게 됐다. 자신의 연구로 책을 썼는데 《혈청치료의 실제적인 목표》(1982년), 《파상풍의 원인과 원인적 치료》(1904년)등이 있다. 여담으로 이후 노벨의학상을 받게되는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