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일:Erik Nilsson.png|width=100%]] || || 이름 ||에리크 헨뤼 식스텐 닐손[br](Erik Henry Sixten Nilsson) || || 생년월일 ||[[1916년]] [[8월 6일]] || || 사망년월일 ||[[1995년]] [[9월 9일]] (향년 79세) || || 국적 ||[[파일:스웨덴 국기.svg|width=28]] [[스웨덴]] || || 출신지 ||[[림함]] || || 포지션 ||레프트 풀백 || || 신체조건 ||182cm | 77kg || || 소속팀 ||'''[[말뫼 FF]] (1934-1953)''' || || 국가대표 ||57경기 (1938-1952) || [목차] [clearfix] == 개요 == [[스웨덴]]의 전 축구 선수 == 생애[*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 == === 선수 생활 === ==== 클럽 ==== 어린 시절 고향팀 림함스 IF(Limhamns IF)에서 축구를 배운 닐손은 1934년 [[말뫼 FF]]로 이적했고 1953년 은퇴할 때까지 [[원 클럽 플레이어|모든 커리어를 말뫼에서 보냈다]].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1950년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AC 밀란]]이 닐손에게 영입 제의를 보냈지만 닐손은 제의를 거절[* 닐손의 나이가 당시 34세에 가까워서 밀란이 제의를 철회했다는 이야기도 있다.]하고 말뫼에 남았다.[* 닐손은 스웨덴에 남았지만 이 무렵에 많은 스웨덴 선수들이 이렇게 [[세리에 A]]에 진출했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1949년에 AC 밀란으로 한번에 영입된 [[군나르 그렌|그레]][[군나르 노르달|놀]][[닐스 리드홀름|리]] 트리오,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인테르]]의 [[렌나르트 스코글룬드]], 이들보다 조금 뒷세대인 [[ACF 피오렌티나]]의 [[쿠르트 함린]] 등이 있다.] 닐손은 [[알스벤스칸]]과 [[스벤스카 쿠펜]]에서 각각 5회씩 우승을 차지했다. ====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 ==== 닐손은 14년간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블로굴트]]에서 뛰면서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1938년 월드컵]],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1950년 월드컵]], [[1948 런던 올림픽|1948년 올림픽]], [[1952 헬싱키 올림픽|1952년 올림픽]] 등 많은 국제 대회에 참가했다. 닐손이 처음 참가한 국제 축구 대회는 1938년 월드컵이었는데 이때의 닐손은 올레 셸그렌(Olle Källgren)의 후보 선수였다. 그는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8강 이후#s-4.1|3, 4위전]]에서 처음 월드컵 무대에 나갔지만 스웨덴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브라질]]에 2대4로 패해 4위에 만족해야 했다. 닐손 역시 다른 축구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대표팀 커리어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1948년 올림픽으로 다시 국제 무대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스웨덴은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유고슬라비아]]를 3대1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는데 이는 현재까지 스웨덴 축구 역사상 유일한 올림픽 금메달이다.[* 스웨덴은 이 대회 8강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을 12대0으로 무참히 깨버렸는데 닐손 역시 스웨덴의 선발 수비수로 뛰었다.] 1948년 올림픽 이후 닐손은 스웨덴 대표팀의 [[주장]]이 되었고 1952년에 대표팀에서 은퇴할 때까지 계속 주장직을 역임했다. 12년 만에 1950년 월드컵에 출전한 닐손은 제2차 세계 대전 전후의 월드컵에 모두 출전하게 되었는데 이는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스위스]]의 [[프레디 비켈]]과 함께 단 두 명만이 가진 기록이다. 닐손은 이 대회 최고급 수비수 중 하나로 평가되었으며 스웨덴은 지난 대회보다 더 나은 3위의 성적을 거뒀다. 1952년 올림픽 4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스웨덴은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헝가리]]에 0대6으로 셧아웃당하며 세계 축구계에 충격을 선사했다.[* 이 팀이 바로 1954년까지 2년여간 세계 축구계를 주름잡게 될 매직 마자르가 되는 팀이다.] 그래도 스웨덴은 [[3위 결정전|동메달 결정전]]에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서독]]을 2대0으로 누르고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1952년 스웨덴의 마지막 A매치였던 10월 16일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전이 닐손의 마지막 A매치였고 그는 57경기째 출전으로 대표팀 경력을 마감했다. == 플레이 스타일 & 평가 == 닐손은 36세까지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대표팀]] [[주장]]으로 활약할 정도로 꾸준하고 기복이 없는 선수였다. 그는 빠르고 단단하며 위치 선정 능력과 전술적인 시야도 갖춘 수비수였다. 가끔은 팔꿈치를 써서라도 공격수를 막아야 직성이 풀리는 면도 있었지만 그의 현역 시절엔 스웨덴에서 가장 믿을 만한 수비수였다. 스웨덴의 역대 최고급 수비수로도 꼽힐 수 있는 선수이다. == 수상 == === 선수 === ==== 클럽[* 에릭손은 [[말뫼 FF]]의 [[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 ==== * [[알스벤스칸]] 우승 5회: 1943-44, 1948-49, 1949-50, 1950-51, 1952-53 * [[스벤스카 쿠펜]] 우승 5회: 1944, 1946, 1947, 1951, 1953 * 알스벤스칸 준우승 3회: 1945-46, 1947-48, 1951-52 * 스벤스카 쿠펜 준우승 1회: 1945 * [[수페레탄|디비시온 2 쇠드라]] 우승 2회: 1934-35, 1935-36 ==== 국가대표 ==== * [[FIFA 월드컵]] 3위 1회: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1950]] * [[올림픽]] 우승 1회: [[1948 런던 올림픽|1948]] * 올림픽 3위 1회: [[1952 헬싱키 올림픽|1952]] ==== 개인 ==== * [[굴트볼렌|스웨덴 축구 올해의 선수]] 1회: 1950 * 스웨덴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03 [각주] [[분류:1916년 출생]][[분류:1995년 사망]][[분류:1934년 데뷔]][[분류:1953년 은퇴]][[분류:말뫼 출신 인물]][[분류:스웨덴의 남자 축구 선수]][[분류:수비수]][[분류:말뫼 FF/은퇴, 이적]][[분류:원클럽맨/축구]][[분류:스웨덴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분류: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참가 선수]][[분류:스웨덴의 올림픽 축구 메달리스트]][[분류:1948 런던 올림픽 축구 메달리스트]][[분류:1952 헬싱키 올림픽 축구 메달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