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헤센 대공)] ---- || '''{{{#FFF 에른스트 루트비히 폰 헤센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1차세계대전기의 독일 제국군 장성급 장교)] ---- }}} || ---- ||<-2><#FFF> {{{#E2001A '''헤센 대공국 제5대 대공[br]{{{+1 에른스트 루트비히}}}[br]Ernst Ludwig, Großherzog von Hessen'''}}}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rnst Ludwig.Grand Duke of Hesse.jpg|width=100%]]}}} || || '''이름''' ||에른스트 루트비히 카를 알브레히트 빌헬름[br](Ernst Ludwig Karl Albrecht Wilhelm)|| || '''출생''' ||[[1868년]] [[11월 25일]][br][[독일 제국]] [[헤센 대공국]] [[다름슈타트]]|| || '''사망''' ||[[1937년]] [[10월 9일]] (68세)[br][[바이마르 공화국]] [[헤센]]|| ||<|2> '''재위''' ||<#E7E7E7,#2D2F34>[[헤센 대공국]]의 대공|| ||[[1892년]] [[3월 13일]] ~ [[1918년]] [[11월 11일]]|| ||<|2> '''배우자''' ||[[빅토리아 멜리타|작센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공녀]][br],,(1894년 결혼 / 1901년 이혼),,|| ||졸름스호헨졸름스리흐의 엘레오노레 공녀[br],,(1905년 결혼),,|| || '''자녀''' ||엘리자베트, [[게오르크 도나투스]], 루트비히|| || '''아버지''' ||[[루트비히 4세(헤센)|루트비히 4세]]|| || '''어머니''' ||[[앨리스 모드 메리|영국의 앨리스]]|| || '''형제''' ||[[헤센의 빅토리아 공녀|빅토리아]], [[엘리자베트 알렉산드라 루이제 알릭스|엘리자베트]], [[이레네 루이제 마리아 아나|이레네]], 프리드리히, [[헤센의 알릭스|알릭스]], 마리|| [목차] [clearfix] == 개요 == [[헤센 대공국]]의 대공 [[루트비히 4세(헤센)|루트비히 4세]]와 [[앨리스 모드 메리|영국의 앨리스 공주]]의 장남으로 헤센의 마지막 대공이다. == 생애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에른스트알릭스.jpg|width=250%]]}}} || || 왼쪽부터 동생 [[헤센의 알릭스|알릭스]], 본인, 동생 마리 || 1868년에 헤센 대공국의 대공이던 루트비히 4세와 [[앨리스 모드 메리|영국의 앨리스 공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에른스트 루트비히는 루트비히 4세의 아들 중 유일하게 장성했던지라[* 루트비히 4세와 앨리스 공주의 차남 프리드리히는 3살 때 요절했다. [[혈우병]] 환자였고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는데, 이때 얻은 상처에서 피가 멈추지 않아 사망했다고 한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이후 조모 [[빅토리아 여왕]]의 주선으로 사촌인 [[빅토리아 멜리타|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녀 빅토리아]]와[* 외삼촌 [[알프레트(작센코부르크고타)|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작 알프레드]]의 2녀.] 결혼하여 1남 1녀를 낳았으나, 이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는 1895년에 낳은 딸 엘리자베트뿐이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에르니멜리타.png|width=250%]]}}} || || 에른스트 루트비히와 빅토리아 멜리타 || 에른스트 루트비히와 빅토리아의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에른스트는 대공으로써의 의무를 우선시했고 빅토리아는 자신에게 더 다정한 남편을 원했다. 빅토리아는 1895년에 딸 엘리자베트를 낳았지만 부부의 사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부부는 각각 하나뿐인 딸을 매우 사랑했다. 특히 에른스트 루트비히의 딸 사랑은 유명했는데, 그는 외동딸에게 모든 애정을 퍼부었다고 한다. 엘리자베트는 날이 갈수록 엄마를 빼닮아갔지만, 에른스트 루트비히는 아내에게는 무심한 반면에 딸을 너무나 사랑했다. 결국 가정은 부부가 서로에게 냉담하면서 딸의 애정을 경쟁하는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모되었다. 에른스트와 빅토리아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고 싸움이 오가곤 했다. 부부싸움이 일어나면 빅토리아는 남편에게 고함을 지르며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던졌다. 또한 당시 소문에 의하면 외출하고 돌아온 빅토리아가 에른스트 루트비히와 남자 하인이 동침(!)하는 걸 목격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빅토리아는 이런 상태를 참을 수 없었지만, 빅토리아 여왕이 맺어준 혼인을 깰 수 없었기 때문에 이혼은 불가능했다. 결국 빅토리아 여왕 사후에야 빅토리아는 집을 나왔고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빅토리아는 이혼 후 코부르크에 있는 어머니의 집에 들어가 살았다. 빅토리아와 에른스트 부부는 딸 엘리자베트의 양육을 각각 반 년씩 맡기로 했다. 이 이혼은 유럽 왕실에 굉장한 스캔들이었고 빅토리아는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오직 에른스트 루트비히와 그의 누이인 [[헤센의 빅토리아 공녀]]만이 이혼을 최선의 선택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에른스트 루트비히와 빅토리아는 큰 비극을 마주했다. 이혼한 지 2년 만인 1903년에 딸 엘리자베트가 8살의 나이에 장티푸스로 사망한 것이다. 에른스트 루트비히는 끔찍히 아끼던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에른스트 루트비히는 딸이 죽은 지 30년 이나 지난 뒤에도 엘리자베트에 대해 "그 아이는 내 삶의 햇살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에른스트 루트비히는 빅토리아와의 이혼하고 딸이 사망한 이후 1905년에 졸름스호헨졸름스리흐의 공녀 엘레오노레[* 누나 [[헤센의 빅토리아 공녀]]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아버지끼리 친구였다고 한다. 하지만 엘레오노레와는 알지 못했다고 한다. 다이어리스트 헨리 칩스 새넌이 ’정말 소문처럼 두번째 부인은 오직 후계자를 얻기 위해 결혼한 것 같네.‘라고 일기에 쓴 것처럼, 재혼한 후처와도 사이가 안좋을 거라는 얘기가 돌았지만 빅토리아 멜리타 때와는 정반대로 엘레오노레와 꽤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고 한다.]와 재혼하여, 그녀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들인 [[게오르크 도나투스]]와 루트비히를 낳았다. 이후 아버지인 루트비히 4세가 1892년에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헤센 대공국의 대공이 되었다. 헤센의 대공이 된 에른스트 루트비히는 엄청난 예술 애호가였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rniefamily.jpg|width=250%]]}}} || || 1908년 볼프스가라텐[br]왼쪽부터 부인 엘레오노레, 장남 [[게오르크 도나투스]][* 고종사촌 [[바텐베르크의 공녀 앨리스]]의 딸이자 [[필립 마운트배튼]]의 누나인 [[그리스와 덴마크의 케킬리아]]와 결혼했다.], 본인, 차남 루트비히. || 이후 1900년에 보병대장이 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빌헬름 2세]]의[* 이모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자|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의 아들로 이종사촌 지간이다.] [[독일 제국군]] 본부에서 복무하였다. 하지만 에른스트 루트비히는 1차 세계 대전 이후로 러시아 제국의 황후였던 자신의 여동생 [[헤센의 알릭스|알릭스]]와 매제인 [[니콜라이 2세]], 조카들의 총살 소식을 들어야 했다. 심지어 러시아로 시집갔던 둘째 누나 [[엘리자베트 알렉산드라 루이제 알릭스|엘리자베트]]마저 갱도 안에 끌려가 폭탄으로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18년 11월 11일에 [[1차 세계 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종전되었고 [[독일 제국]]이 멸망하여, 공화정으로 전환되면서 에른스트 루트비히 역시 헤센의 대공위에서 폐위당했다. 대공 직위를 잃은 에른스트 루트비히는 이후 시민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다가 1937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하지만 에른스트 루트비히의 장례식이 거행된 지 1달 만에 [[헤센 대공가 비행기 추락사고]]가 일어나면서, 장남 [[게오르크 도나투스]]의 일가족들이[* 에른스트 루트비히의 후처 엘레오노레, 아들 게오르크 도나투스와 며느리 [[그리스와 덴마크의 케킬리아|체칠리아]], 그들의 두 아들들, 동승했던 간호사, 친한 친구, 비행기 조종사, 승무원 두 명까지 합해서 총 10명이 전원 현장에서 사망했다.] 막내딸을 제외하고 모두 사망하고 말았다.[* 게오르크 도나투스의 막내딸 요한나는 당시 나이가 너무 어리고 아파서 비행기에 타지 않아 살아남았고, 부모와 형제의 사망 이후 숙부 루트비히에게 입양됐지만 이 사고가 일어난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수막염에 걸려 3살의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이후 명목상의 헤센 대공위를 물려받은 둘째 아들 루트비히마저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면서 헤센 대공가의 직계는 사실상 끊어졌다. 1968년 이후 [[헤센 가문]]은 친척인 헤센-카셀 가문이 대표하고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에르니손주.jpg|width=250%]]}}} || || 왼쪽부터 손자 루트비히, 손녀 요한나, 본인, 손자 알렉산더. || == 가족관계 == === 조상 === ||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13> [[헤센 대공국]] 대공 에런스트 루트비히[br]{{{-2 (Ernest Louis, Grand Duke of Hesse and by Rhine)}}} ||<|6> [[루트비히 4세(헤센)|헤센 대공국 대공 루트비히 4세]][br]{{{-2 (Louis IV, Grand Duke of Hesse and by Rhine)}}} ||<|3> [[헤센 대공국]]의 카를 공자[br]{{{-2 (Prince Charles of Hesse and by Rhine)}}} || || [[루트비히 2세(헤센)|헤센 대공국 대공 루트비히 2세]][br]{{{-2 (Louis II, Grand Duke of Hesse and by Rhine)}}} || || [[바덴의 빌헬미네|바덴의 빌헬미네 공녀]][br]{{{-2 (Princess Wilhelmine of Baden)}}} || ||<|3> [[프로이센의 엘리자베트|프로이센의 엘리자베트 공주]][br]{{{-2 (Princess Elisabeth of Prussia)}}} || || [[프로이센]]의 빌헬름 왕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4남이다.][br]{{{-2 (Prince Wilhelm of Prussia)}}} || || 헤센홈부르크의 마리아 안나 여방백[br]{{{-2 (Landgravine Maria Anna of Hesse-Homburg)}}} || ||<|7> [[앨리스 모드 메리|영국의 앨리스 공주]][br]{{{-2 (Princess Alice[br]of the United Kingdom)}}} || ||<|3> [[앨버트 공|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베르트 공자]][br]{{{-2 (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 || [[에른스트 1세|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에른스트 1세]][br]{{{-2 (Ernest I, Duke of Saxe-Coburg and Gotha)}}} || ||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루이제 공녀[br]{{{-2 (Princess Louise of Saxe-Gotha-Altenburg)}}} || ||<|3> [[빅토리아 여왕]][br]{{{-2 (Victoria)}}} || || [[에드워드 어거스터스|켄트와 스트래선 공작 에드워드 왕자]][* [[조지 3세]]의 4남이다.][br]{{{-2 (Prince Edward,[br]Duke of Kent and Strathearn)}}} || || [[마리 루이제 빅토리아|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빅토리아 공녀]][br]{{{-2 (Princess Victoria of Saxe-Coburg-Saalfeld)}}} || === 자녀 === ||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배우자 / 사망''' || ||<-5> [[빅토리아 멜리타|작센코부르크고타의 빅토리아 멜리타 공녀]][br]{{{-2 (Princess Victoria Melita of Saxe-Coburg and Gotha)}}} || || '''1녀''' || 엘리자베트 공녀[br]{{{-2 (Princess Elisabeth)}}} || [[1895년]] [[3월 11일]] || [[1903년]] [[11월 16일]] (8세) || || ||<-5> 졸름호엔졸름리히의 엘레오노레 공녀[br]{{{-2 (Princess Eleonore of Solms-Hohensolms-Lich)}}} || || '''1남''' || 헤센의 대공세자 [[게오르크 도나투스]][br]{{{-2 (Georg Donatus, Hereditary Grand Duke of Hesse)}}} || [[1906년]] [[11월 8일]] || [[1937년]] [[11월 16일]] (31세) || [[그리스와 덴마크의 케킬리아]][* [[요르요스 1세]]의 손녀이다.][br]슬하 3남 1녀 || || '''2남''' || 헤센의 공자 루트비히[br]{{{-2 (Louis, Prince of Hesse and by Rhine)}}} || [[1908년]] [[11월 20일]] || [[1968년]] [[5월 20일]] (59세) || 마거릿 캠벨 게데스 || [[분류:헤센 대공]][[분류:1868년 출생]][[분류:1937년 사망]][[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분류:독일제국군/군인]][[분류:헤센다름슈타트 가문]][[분류:망국의 군주]][[분류:다름슈타트 출신 인물]][[분류:가터 훈장]][[분류:로젠회에 안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