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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에디 슬리먼}}} [br] Hedi Slimane''' || ||<#FFFFFF><-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hedi-slimane-yr.webp|width=100%]]}}} || ||<|2> '''출생''' ||[[1968년]] [[7월 5일]] ([age(1968-07-05)]세)|| ||[[프랑스]] [[파리(프랑스)|파리]]||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프랑스)] || || '''직업''' ||[[패션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 '''학력''' ||École du Louvre|| || '''경력''' ||[[셀린느]] 아티스틱 디렉터 {{{-2 (2019 - )}}}[br][[생 로랑]]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 (2013 - 2016)}}}[br][[디올 맨|디올 옴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 (2000 - 2007)}}}[br][[생 로랑|이브 생 로랑 리브 고쉬]] 아티스트 디렉터 {{{-2 (1997)}}} || || '''수상''' ||[[2002년]] CFDA 올해의 국제 디자이너상 || || '''링크''' ||[[https://www.hedislimane.com/|HEDI SLIMANE]]|| [목차] [clearfix] == 개요 ==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전 [[디올 맨|디올 옴므]],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현 [[셀린느]] 아티스틱 디렉터이다. == 생애 == === 유년기 === 에디 슬리먼은 [[1968년]], [[프랑스 파리]] 19구에서 [[튀니지]]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시작한 예술 활동은 바로 [[사진]]이었다. 11살 때, 처음으로 사진이라는 것을 접했고 [[카메라]]를 선물 받아 흑백 암실에서 [[인쇄술]]을 배웠다고 한다.[* 에디 슬리먼에 따르면 1981년, 중고품 가게를 구경하다가 자신의 생일날 [[니콘]] FM을 구입했다고 한다.] 16살 때 슬리먼은 자신만의 [[옷]]을 만들기 시작하며 [[패션]]을 처음으로 접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딱히 패션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 미술이론 교육 분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교인 École du Louvre에서 [[미술사]]를 전공했으며 한 남성 디자이너 하우스에서 재단사 견습생으로 지내기도 했다. 사실 슬리먼이 어릴 적 소망했던 꿈은 [[패션 디자이너]]가 아닌 [[저널리스트]]와 [[리포터]]였기 때문에 [[프랑스]]의 [[신문]] 회사인 Le Monde 사무실에 방문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 커리어 === [[1992년]]부터 [[1995년]]까지 패션 컨설턴트 장 자크 피카르트의 아래에서 7명의 유명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 헬무트 랭, 시빌라, 마놀로 블라닉, 아이작 미즈라히, 로메오 질리, 비비안 웨스트우드]들이 참여했던 [[루이비통]] “[[모노그램]] [[캔버스]]” 100주년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초기 경력을 시작했다. [[1996년]], 피에르 베르제는 슬리먼에게 [[생로랑]]의 레디-투-웨어 남성복 컬렉션 디렉터 자리를 맡게 했으며 나중에는 아티스틱 디렉터 자리까지 맡게 된다. 2000/01년 A/W Black Tie 컬렉션에서 앞으로 자신의 대명사가 될 “[[스키니]]” 실루엣의 등장을 암시한 후 생로랑을 떠나 질 샌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제의를 거절하고 [[크리스찬 디올]]의 남성복[* [[디올 옴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맡게 된다. [[2001년]] [[6월]], 슬리먼은 “Higher”라는 이름을 가진 [[디올 옴므]]의 첫 [[향수]] 제품의 출시를 주도했다. 슬리먼은 이 제품의 포장 박스를 디자인하기도 했고 유명한 [[포토그래퍼]]인 리차드 아베돈과 함께 [[광고]] 캠페인에 참여했다. [[2002년]] [[4월]]에는 CFDA[*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 상을 수상한 최초의 남성복 디자이너라는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다. 에디 슬리먼 덕분에 기성복과 액세서리를 포함한 디올의 [[오트쿠튀르]]의 매출은 [[2002년]] 당시 무려 41%가 증가했다고 한다. [[브래드 피트]]는 [[제니퍼 애니스턴]]과의 [[결혼]]을 위해 에디 슬리먼에게 [[웨딩드레스]] 제작을 의뢰하기도 했으며, 여성복 컬렉션을 디자인했던 적은 없었지만 그가 디올에 재임하는 동안 [[마돈나]]와 [[니콜 키드먼]]을 포함한 수많은 여성 연예인들이 그의 옷을 입었다. 또한 [[다프트 펑크]]와 [[리버틴즈]], [[프란츠 퍼디난드]], 더 킬스와 같은 [[밴드]] 그룹들과 [[믹 재거]], [[잭 화이트]] 등과 같은 많은 [[예술가]]들을 위해 무대 의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에디 슬리먼은 [[피닉스(밴드)|피닉스]], Readymade FC, The Rakes, Razorlight 등과 같은 밴드들에게 디올 옴므의 [[런웨이]] 쇼에서 사용할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의뢰했다. 이처럼 에디 슬리먼은 [[아방가르드]]한 신진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7년]] [[7월]]을 끝으로 에디 슬리먼은 디올 옴므와의 재계약을 추진하지 않았다. 그러자 디올은 에디 슬리먼에게 본인의 이름을 딴 “에디 슬리먼” 상표의 자금에 대해 논의를 제안했지만 슬리먼은 “나의 이름 및 브랜드 관리를 잃고 싶지 않다”며 제안을 거절했고, 디올과는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2011년]] [[3월]], [[존 갈리아노]]가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인해 디올에서 쫓겨난 뒤 에디 슬리먼이 디올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2012년]] [[3월]], 생로랑과 모기업인 PPR은 거의 8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스테파노 필라티를 대신해 에디 슬리먼이 생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맡을 것이라며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슬리먼은 [[파리(프랑스)|파리]]에 위치한 브랜드의 본사가 아닌 [[로스앤젤레스]]에 자신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이후 [[2016년]] [[4월]], 약 4년 동안 생로랑에서 컬렉션을 발표한 뒤 생로랑을 떠났으며, 에디 슬리먼의 후임 자리는 [[안토니 바카렐로]]가 맡게 되었다. [[2018년]] [[1월]], [[LVMH]]는 슬리먼이 피비 파일로를 대신해 [[셀린느]]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맡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며 패션계 복귀를 알렸다. 셀린느 로고의 ‘é’ 위 악센트를 제거하고 알파벳 사이의 간격도 줄여 한층 더 촘촘하고 두꺼운 로고를 만들어내며 리브랜딩을 했다. == 예술 활동 == 패션에 관한 출판 프로젝트를 의뢰하는 뉴욕의 분기별 [[잡지]] “Visionaire”에 [[2000년]]도 즈음 의뢰를 받아 에디 슬리먼이 프로젝트에 참여를 하게된 잡지는 총 6,000장으로 한정 [[출판]]되었으며 가격은 175달러로 책정되었었다. 슬리먼이 [[파리(프랑스)|파리]]와 같은 [[미래]]의 [[도시]]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제안하는 내용으로 제작에는 총 29명의 [[예술가]], [[사진가]], [[건축가]], [[음악가]], 그래픽 및 웹 사이트 [[디자이너]]가 참여했다. 생로랑을 떠난 직후, 슬리먼은 [[베를린]]으로 이주했고, 큐레이터인 클라우스 비센바흐의 초청으로 [[2000년]]에서 [[2002년]] 사이에 쿤스트-베르케 현대 미술 연구소에서 거주했다. 이때 당시에 출판한 ‘Berlin’은 예술서적 출판사 Steidl과 함께 발표한 흑백사진 선집으로 에디 슬리먼이 직접 촬영한 베를린의 모습을 담아낸 첫 번째 서적이다. [[2004년]] Steidl이 출판한 ‘Stage’는 [[록 음악]]의 부흥과 2.0세대에 관한 에디 슬리먼의 두 번째 저서이다. 또한 [[2004년]], 슬리먼은 [[피닉스(밴드)|피닉스]]의 [[앨범]] Alphabetical의 앨범 표지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2005년]], Steidl에서 출판한 ‘London Birth of a Cult’는 에디 슬리먼이 [[피트 도허티]]의 일상을 담은 사진집으로 [[런던]] [[펑크 록]]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2005년]] [[7월]] 5일,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한 [[클럽]]에서 열린 에디 슬리먼의 [[생일]] 파티에서 도허티가 깜작 무대에 올라 슬리먼의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2006년]] [[5월]], 에디 슬리먼은 자신만의 사진 블로그인 '''HEDI SLIMANE DIARY'''를 개설했다.[* 혹시라도 에디 슬리먼의 포토그래피 작업물들을 보고 싶다면 이 사이트에 방문하면 된다. 자주 올라오진 않지만 꾸준히 업로드되는 편.] 이후 [[보그(패션지)|보그]]와 VMAN, Purple 등과 같은 잡지에 광고사진을 찍으며 [[포토그래퍼]]로서의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다. [[2011년]], 에디 슬리먼은 파리와 [[브뤼셀]]의 Almine Rech 갤러리에서 존 발데사리, 에드 루샤, 크리스 버든, 스털링 루비, 마크 하겐, 패트릭 힐을 포함한 [[캘리포니아]] 예술가들의 그룹 쇼인 "Myths and Legends of Los Angeles"을 큐레이션하기도 했다. 에디 슬리먼의 작품은 2011년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에서 공개되었으며, 슬라먼은 캘리포니아에서 촬영했었던 아카이브 사진들을 선보였다. “California Song”라는 제목의 이 [[전시회]]는 락 그룹 No Age의 사운드 트랙과 함께 개최되었다. == 저서 == 패션 디자이너뿐만이 아닌 포토그래퍼로서도 충실히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에디 슬리먼이 맡는 브랜드들의 광고 캠페인 이미지들은 전부 본인이 촬영할 정도이다.] 사진집들도 꾸준히 출판하고 있다. 에디 슬리먼을 좋아하거나 혹은 패션과 사진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구매해서 감상해보는 것도 좋다.[* 출판된 지 오래되어서 구하기가 힘들다거나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그의 웹사이트에 방문하는 것도 포토그래피 작업물을 감상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 2002년 , Charta * 2003년 , Steidl/7L * 2004년 , Steidl/7L * 2005년 , Steidl/7L * 2006년 , a Visionaire bookzine * 2008년 , JRP-Ringier * 2011년 [* 총 4가지 버전이 있다. [[영국]](UK), [[미국]](US), [[프랑스]](FR), [[러시아]](RU)], JRP-Ringier == 여담 == * 그가 패션계에 남긴 커다란 족적에 관해서는 [[디올 옴므]] 참조. * 그가 다녀간 브랜드의 홈페이지가 서로 유사하다. [[셀린느]]와 [[생로랑]] 둘 다 똑같은 디자인의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다. * 에디가 처음으로 자신의 쇼에 세운 동양인 여자 모델은 2016 S/S [[생 로랑]] 쇼에서 [[최소라]], 동양인 남자 모델은 2019 S/S [[셀린느]] 쇼에서 [[한지(모델)|한지]]이다. [[분류: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분류:프랑스의 사진가]][[분류:1968년 출생]][[분류:파리 출신 인물]][[분류:프랑스의 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