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08년 출생]][[분류:2003년 사망]][[분류:부다페스트 출신 인물]][[분류:헝가리계 미국인]][[분류:미국의 물리학자]][[분류:카를스루에 공과대학교 출신]][[분류:라이프치히 대학교 출신]][[분류:미국으로 귀화한 인물]][[분류:유대계 미국인]] ||<-2> '''{{{+1 에드워드 텔러}}}[br]Edward Teller''' ||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dwardTeller1958_fewer_smudges.jpg|width=100%]]}}}|| ||<|2> '''출생''' ||[[1908년]] [[1월 15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부다페스트]] || ||<|2> '''사망''' ||[[2003년]] [[9월 9일]] (향년 95세)||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미국)]|| || '''분야''' ||[[물리학]] || || '''서명''' ||[[파일:Edward_Teller_signature.svg|width=50%]] || [목차] [clearfix] == 개요 == [[헝가리]] 태생의 [[미국]] [[물리학자]].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불린다. == 생애 == [[헝가리]]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났다. 청년기인 1920년대에 [[독일]]로 이주해서 [[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 들어 독일에서 [[유태인]] 박해가 심화되자 [[미국]]으로 망명하였고, 1940년대 [[맨해튼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어 '''세계 최초의 [[핵무기]] 개발에 일조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소련]]과의 [[냉전]]이 본격화되자 [[핵분열]] 기술에 바탕을 둔 기존의 [[원자폭탄]]보다 훨씬 강력한 '''핵융합 무기(즉, [[수소폭탄]](일명 H-Bomb))의 개발을 옹호'''하였고, 결국 1950년대 초 이를 개발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냉전]] 시대를 비롯한 일생의 대부분을 통틀어 핵 군비 경쟁에 적극 찬동하는 입장을 견지했으며, 냉전 막바지인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우주 배치형 미사일 방어, 즉 [[SDI]][* 전략방위구상(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을 뜻한다. '''[[스타워즈]]'''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에도 찬성한 바 있다. 역시 '''[[핵무기]] 개발의 [[선구자]]'''격 인물로 유명한 동시대의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소련의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핵무기]] 개발 후 양심의 가책으로 반(反)핵, [[평화주의]]를 주장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 같은 [[유태인]]이었지만 오펜하이머가 태어날 때부터 [[미국인]]이었던 반면, 텔러는 [[유럽]]에서 살다가 [[나치]]의 박해를 직접 경험하고서 미국으로 망명한 입장이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텔러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나치 독일]]의 [[나치즘]]과 [[냉전]]을 계기로 등장한 [[소련]] [[공산주의]] 위협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반공주의자]]였고, 핵무기를 통한 힘의 우위를 더욱 강조하게 된 것이다.][* 물론 망명 유태인 출신 과학자들 중에서도 이후 반(反)핵, 평화주의로 돌아선 사례는 적지 않다. [[맨해튼 계획]]이 시작된 계기를 마련했던 레오 실라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심지어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는데도 핵폭탄을 사용해서 한방에 공사를 끝내자는 주장까지 했을 정도다. 2003년에 향년 9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 기타 == 각종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전쟁광]] 유형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그를 모티브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대표적이다. 1957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중국]]의 [[양전닝]]은 그의 제자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23년작 영화 《[[오펜하이머(영화)|오펜하이머]]》에도 등장한다. 배우는 감독으로 유명한 [[사프디 형제]]의 베니 사프디. 실제 역사대로, 주인공인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수소폭탄]]의 개발을 놓고 대립하였으며, 그가 [[공산주의자]]로 매도당할 때 불리한 증언을 하는 등의 행적이 묘사되었다. 그나마 영화 종반부에 [[엔리코 페르미]] 상을 받은 오펜하이머와 화해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실제 역사에서 텔러는 오펜하이머보다 1년 앞선 1962년에 페르미 상을 받았는데, 오펜하이머를 다음(즉, 1963년) 수상자로 추천하여 화해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는 실제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는 연출로, 오펜하이머와 텔러가 서로 미소를 지으며 악수하는 사진을 《[[타임(주간지)|타임]]》 사진 기자가 찍기도 하였다. 다만 오펜하이머의 아내 키티는 굳은 얼굴이었고 여전히 텔러를 경멸했다. 그리고 오펜하이머 본인도 텔러에게 상처를 받은 것을 완벽히 떨쳐내지는 못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