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856년 출생]][[분류:1941년 사망]][[분류:안코나 출신 인물]][[분류:오스트리아의 인물]][[분류: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군/군인]][[분류:오스트리아-헝가리의 원수]][[분류:독일 국방군 원수]][[분류:오스트리아의 남작]][[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 [include(틀:1차세계대전기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장성급 장교)] [include(틀:독일 국방군/원수)] |||| '''{{{#191919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육군 원수[br]{{{+1 에두아르트 폰 뵘에르몰리 남작}}}[*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대로는 '폰뵘에르몰리'로 표기한다.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 또한 [[붙임표]]로 이어진 인명 등의 경우, 여러 요소가 하나의 단어를 이루는 복합어로 보고, 한글로 표기할 때에는 붙여 적는 것이 규정 용례이다.][br]Eduard Freiherr von Böhm-Ermolli}}}''' ||||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eneral_Eduard_von_B%C3%B6hm_Ermolli_w%C3%A4hrend_des_ersten_Weltkriegs.jpg|width=100%]]}}} || || 이름 ||'''Eduard Böhm'''[br]에두아르트 뵘[br]↓[br]'''Eduard von Böhm-Ermolli'''[br]에두아르트 폰 뵘에르몰리[* 가문이 귀족 작위를 받은 후의 이름.][br]↓[br]'''Eduard Freiherr von Böhm-Ermolli'''[br]에두아르트 폰 뵘에르몰리 남작[* 1917년 남작 작위를 받은 후의 이름.][br]↓[br]'''Eduard Böhm-Ermolli'''[br]에두아르트 뵘에르몰리[*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오스트리아 공화국]]에서 신분제가 폐지되고 귀족 접두어가 철폐되면서 개명한 이름.] || || 출생 ||[[1856년]] [[2월 12일]][br][[파일:교황령 국기(754-1803).svg|height=15]] [[교황령]] 안코나|| || 사망 ||[[1941년]] [[12월 9일]](향년 85세)[br][[파일:나치 독일 국기.svg|height=15]] [[나치 독일|독일국]] [[주데텐란트]]대관구 [[오파바|트로파우]][* 現 [[체코]] [[오파바]]]|| || 복무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width=23]][[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br](1875년 ~ 1918년)[br][[파일:나치 독일 군기(1938–1945).svg|width=23]] [[독일 국방군]][br](1938년 ~ 1941년)|| || 최종 계급 ||제국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 야전원수 계급장.svg|width=35px]] [[육군]] [[원수(계급)|원수]][br]{{{-2 (Generalfeldmarschall)}}}[br]독일 국방군 원수[br]{{{-2 (Generalfeldmarschall)}}} || ||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br][[제2차 세계 대전]]|| || 주요 서훈 ||[[백엽 푸르 르 메리트]]|| [목차] [clearfix] == 개요 == 에두아르트 폰 뵘에르몰리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인]]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육군 야전원수가 되었다. [[1940년]] [[10월 30일]], 명예 [[독일 국방군]] 원수가 되었다. == 생애 == 에두아르트 뵘(Eduard Böhm)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이탈리아]] 중부 [[교황령]] 안코나에서 태어났는데, [[오스트리아 제국]] 군인이던 부친 게오르크 뵘(1813~1893)이 그 곳에 주둔하던 때였다. 부친은 노바라 전투의 참전용사로, 은퇴한 후인 1885년 [[귀족]] 작위를 받았는데 그 무렵 부인 마리아 요제파 뵘(Maria Josepha Böhm)의 처녀 적 성씨인 에르몰리(Ermolli)를 합쳐 "von Böhm-Ermolli" 가문이 되었다. 뵘에르몰리는 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1875년 9월에 군 경력을 시작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오스트리아-헝가리군]] 제2군사령관이 되어 [[세르비아 침공|세르비아 전선]]에 투입되었다. [[러시아 제국]]이 징병령을 발동하자 제2군은 러시아 전선으로 투입되었다. 뵘에르몰리는 1916년 상급대장(Generaloberst)에 이어 1918년 1월 원수로 승진하였다. 그 해 3월 그의 부대는 [[우크라이나]]로 진격하였고, [[오데사]]에서 종전을 맞아 해체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된 이후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오파바[* 독일명 트로파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 전에는 [[리히텐슈타인]] 공가의 영지였다.]의 집에 거주했다. [[체코슬로바키아군/1938년|체코슬로바키아군]]에 복무하진 않았으나,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그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등의 예우를 했다. [[파일:220px-Boehm_Ermolli_1.jpg]] 원수 정복을 입은 말년의 모습 1938년 [[나치 독일]]이 그가 살던 [[주데텐란트|수데텐란트]]를 [[뮌헨 협정|점령]]하자 독일 시민이 되었고, 1940년 10월 31일 [[독일 국방군/원수|독일군 원수]]로 명예진급하였다.[* 임명 후 28 보병 명예연대장을 맡았다.] [[파일:Feldmarschaelle_03.1941.jpg|width=50%]] 1941년 3월, 히틀러 사열을 준비중인[* 1941년 12월 사망전까지, 일정에 이상이 없으면 보통 사열식 및 행사에는 보통 참석했었다.] [[에두아르트 폰 뵘에르몰리|뵘에르몰리]], 우측에 선 인물들은 [[에리히 레더]], [[발터 폰 브라우히치]], [[빌헬름 카이텔]], [[에르하르트 밀히]], [[루돌프 헤스]], [[하인리히 힘러]]. 1941년 사망하자 그의 장례는 [[빈(오스트리아)|빈]]에서 국장으로 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