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797년 출생]][[분류:1885년 사망]][[분류:독일제국군/군인]][[분류:독일의 귀족]][[분류:나폴레옹 전쟁/군인]] [include(틀:1870~1880년대의 독일제국군/북독일 연방의 장성급 장교)] |||| '''{{{#fff 독일 제국군 보병대장[br]{{{+1 에두아르트 보겔 폰 팔켄슈타인}}}[br]Eduard Vogel von Falckenstein }}}''' ||||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팔켄슈타인.jpg|width=100%]]}}} || ||<#666> {{{#FFF 이름}}} ||'''Eduard Vogel von Falckenstein'''[br]에두아르트 보겔 폰 팔켄슈타인[*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대로는 '폰팔켄슈타인'으로 표기한다.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 || ||<#666> {{{#FFF 출생}}} ||[[1797년]] [[1월 5일]] [[프로이센 왕국]] || ||<#666> {{{#FFF 사망}}} ||[[1885년]] [[4월 6일]](향년 88세) [[독일 제국]]|| ||<#666> {{{#FFF 복무}}} ||프로이센군(1813년~1871년[br][[파일:독일 제국 전쟁기.svg|width=25]] [[독일 제국군]](1871년 ~ 1873년) || ||<#666> {{{#FFF 최종계급}}} ||[[파일:General_(Wurttenburg).gif|width=35px]] 독일 제국군 보병대장|| ||<#666> {{{#FFF 주요참전}}} ||[[나폴레옹 전쟁#s-3.2.4|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br]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br][[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br]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br][[프로이센-프랑스 전쟁]]|| ||<#666> {{{#FFF 서훈}}} ||[[푸르 르 메리트]]|| [목차] [clearfix] == 개요 == 에두아르트 보겔 폰 팔켄슈타인은 독일제국의 장성으로 최종계급은 보병대장이다. 무려 1813년에 군에 입대한 고참이다. == 생애 == === 초기 === 팔켄슈타인은 기초적인 교육을 마치고, 1813년 프로이센군에 자원입대하였다. 그는 예거(Jäger)로 자원입대하였는데, 당시 시기가 [[나폴레옹 전쟁#s-3.2.4|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시기였기 때문에 팔켄슈타인은 그 전쟁에 참전하였다. 팔켄슈타인은 1841년 소령이 되었고 [[1848년 혁명]] 당시 베를린에서 다쳤다. 이후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이 발발하자 팔켄슈타인은 근위 소총 대대의 사령관으로 싸웠다. 이후 1850년, 9군단의 참모총장이 되었다.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이 발발하였을때는 무능하였던 [[프리드리히 폰 브랑겔]]장군의 참모총장이었다. 하지만 이후 [[헬무트 폰 몰트케]]로 교체되었다. 1864년 4월 22일, 팔켄슈타인은 푸르 르 메리트를 수훈받았고, 1865년 장군이 되었다. === 보오전쟁과 보불전쟁 === 보오전쟁이 발발하자, 팔켄슈타인은 서쪽에 있던 독일군을 지휘하였다. 팔켄슈타인은 마인강 근방에서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리아의 연합군을 상대했다. 팔켄슈타인은 하노버 왕국의 카셀을 점령하였다. 하지만 팔켄슈타인의 리더쉽이 뛰어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헬무트 폰 몰트케|몰트케]]는 팔켄슈타인으로 하여금 하노버 군대를 끝장내라고 명령하였으나, 팔켄슈타인은 보급의 부재로 항복을 받고 싶어했다. 이에 분노한 [[빌헬름 1세]]와 몰트케는 팔켄슈타인이 하노버 왕국군을 강하게 공격하기를 원하였다. 하지만, 하노버 왕국군은 보급의 부재로 고통받고 있었으며, 팔켄슈타인의 느린 진격에도 꽤나 겁먹고 있었다. 팔켄슈타인도 금방 전투를 이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팔켄슈타인에게 날라온 것은 [[랑엔잘차 전투]]의 패배했다는 사실었다. 다음날 도착한 팔켄슈타인은 다행히도 하노버 왕국의 항복을 얻어냈다. 여하튼 이일로 팔켄슈타인은 많은 양의 돈을 받았다. 이후에도 참모부와의 충돌로 팔켄슈타인은 해임되고, [[에트빈 폰 만토이펠]]으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팔켄슈타인은 보헤미아의 총독이 되었다. 보불전쟁이 발발하였을때, 팔켄슈타인은 하노버에 거주하며, 독일 해안 지역의 방어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민병대로 구성된 해상방어대(Seewehr)를 구성했다. 그 공로로 1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1873년 전역하고, 1885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