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분류:1921년 출생]][[분류:2009년 사망]][[분류:울주군 출신 인물]][[분류:은관문화훈장]][[분류:영월 엄씨]] [include(틀:막사이사이상 수상자)] ||<-2> '''{{{+2 엄대섭}}}[br]嚴大燮'''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간송 엄대섭.jpg|width=100%]]}}} || ||<|2> '''출생''' ||[[1921년]] [[1월 21일]] || ||[[경상남도]] [[울산군]] [[웅촌면]] || ||<|2> '''사망''' ||[[2009년]] [[2월 5일]] (향년 88세)|| ||[[미국]] [[로스엔젤레스]] || || '''본관''' ||[[영월 엄씨]] || || '''호''' ||간송(澗松) || || '''수상/수훈'''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 부문[br][[은관문화훈장]]||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로 [[공공도서관]] 건립과 보급 운동에 힘썼다. == 생애 == 1921년 1월 21일 [[경상남도]] [[울산군]] [[웅촌면]][* 現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대대리에서 소작농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생계가 막연하여 8세 때 가족이 일본 [[규슈]]로 이주했다. 부모가 공사장 막노동을 하여 생계를 이어가다 [[국민학교]] 3학년 때 제철소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사고로 중상을 입어 불구가 되었다. 14세부터 [[소년가장]]으로 두부 장수, 세탁소 점원, 방직공장 직공 등을 전전하다가, 당시 일본 정부가 일용품 공급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한가지 착상을 떠올려 사업을 시작했다. 부잣집의 안입는 낡은 옷가지를 사들여 서민들에게 판매하는 것이었다. 이 사업으로 큰 돈을 벌어 19세 때 고향에 돌아와 백여 두락(2만여 평)의 논과 기와집, 멸치 어장을 사들였다. 1950년 '도서관의 운영과 실제'라는 책을 접하고 도서관 사업에 관심을 가졌다. 1951년 고향인 [[울산]]에 자신이 소장하던 3천여권의 도서를 갖고 사립무료도서관을 열고 지역 농촌마을로 순회문고를 운영했다. 1953년 [[경주시|경주]]에 장서와 시설을 기증해 경주시립도서관을 세웠다. 1955년 도서관협회 초대 사무국장을 맡아 [[문교부]] 주관의 농촌문고운동에 참여했다. 1961년 마을문고를 창안해 마을문고 보급운동을 벌였다. 1974년 말까지 35,011개 마을에 마을문고를 설치해 전국 농어촌 마을 95%에 문고가 설치되는 성과를 낳았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80년 [[막사이사이상]] 공공 봉사 부문 상을 수상했다. 이후 마을문고의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마을문고는 [[새마을운동]] 중앙본부로 흡수되었고 마을문고 운동에서는 손을 놓게 되었다. 도서관이 늘었지만 정보자료 이용 공간이 아닌 공부방으로 쓰이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대한도서관연구회'를 시작했다. 이동도서관 보급, 개가제 및 관외 대출, 입관료 폐지, 도서관법 개정 운동 등 도서관 개혁 운동을 벌였다. 모범 도서관이나 활동가에게 수여하는 '간송 도서관문화상'을 제정하여 시상했다. 2004년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로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09년 2월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