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70> '''{{{#white 관등}}}''' ||||<:> 패자(沛者) || ||<:><#191970> '''{{{#white 직위}}}''' ||||<:> 중외대부(中畏大夫) || ||<:><#191970> '''{{{#white 이름}}}''' ||||<:> 어비류(於卑留) || ||<:><#191970> '''{{{#white 생몰연도}}}''' ||||<:> ? ~ 191년 || [목차] == 개요 == [[고구려]] [[고국천왕]] 때의 [[간신]], 반역자. == 생애 == 왕후[* 고국천왕의 [[왕후 우씨]]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의 친척으로, 패자(沛者)로서 중외대부(中畏大夫)라는 관직에 있었다. 왕후의 권세를 등에 업고는 같은 외척인 평자(評者) [[좌가려]]와 함께 나라의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자 그의 자제들도 좌가려와 어비류의 세력을 믿고는 하나같이 오만무례해져서 함부로 다른 사람들의 자녀와 집을 빼앗아가는 등 갖은 횡포를 부렸기 때문에 고구려의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원망하고 또한 분통해했다고 한다. 190년, [[고국천왕]]은 이들의 죄상을 알고는 크게 노하여 이들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이를 눈치챈 어비류와 좌가려는 연나부(椽那部)의 일부 세력들과 동조하여 모반을 꾀하였다.[* 연내부는 고구려 5부 중 하나인 연나부의 또다른 이름인데, 이들이 외척들과 동조한 것을 보면 왕후 우씨가 연내부 출신인 것으로 여겨진다.] 좌가려와 어비류의 무리들은 이듬해인 191년에 왕도를 공격하였으나 [[고국천왕]]이 기내(畿內)의 병력을 동원하여 이를 평정하였고, 결국 반란은 진압되었고 어비류 역시 목숨을 잃었다. 이들이 나라에 끼쳤던 폐해가 상당히 컸는데, 고국천왕이 이렇게 어려워진 국내 사정을 돌보기 위해 등용한 인물이 바로 그 유명한 [[을파소]]였다. [[분류:고구려의 외척]][[분류:191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