楊懷 ?~212 [목차]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유장(삼국지)|유장]] 수하의 [[장군#s-1]]. [[촉]]을 집어삼키려는 [[유비]]를 사전에 막으려 했으나 역으로 당하고 만다. == [[삼국지(정사)|정사]] == 백수도독으로 [[방통]]의 평에 따르면 [[고패]]와 더불어 유장군 휘하의 [[명장]]으로 그의 병사들 또한 정예병이라며 높이 평가한 것을 보아 상당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장송]]이 살해당한 이후에 [[유장(삼국지)|유장]]으로부터 [[유비]]와 관계를 가지지 말라고 해서 유비의 노여움을 사 불려갔다가 참수당했다. 연의에서는 양회를 암살을 시도한 악인으로 그려놨지만 [[삼국지집해]] 선주전에서 조일청이 언급하는 [[태평어람]] 346권 인용 영릉선현전(零陵先賢傳)에는 다음과 같은 반대의 기록이 있다. >유장이 유비를 부르니, 유장의 장수 양회가 여러 번 간하여, 유비는 유장의 자식 유의(劉懿)와 양회를 불렀다. 주연이 무르익었을 때, 유비는 양회가 비수(匕首)를 지닌 것을 봤다. 유비가 그의 비수를 내놓으며, 이르길 "장군의 비수가 아름다운데, 고 또한 있으니, 이를 손에 넣고 볼 수 있겠소?" 양회가 이를 줬다. 유비가 비수를 얻고는 양회에게 이르길 : 너는 소인으로, 어찌 감히 우리 형제의 우호를 이간하느냐!" 양회의 욕설이 아직 이르지 못했는데, 유비가 그를 벴다. == [[삼국지연의|연의]] == 유장이 [[장로(삼국지)|장로]]의 침입을 막으려 유비를 불러들였을 때 고패와 함께 백수도독으로서 부수관을 지켰다. 이후 유비가 회군한다는 소식을 듣자 전송하는 척 하면서 기회를 보아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도리어 [[방통]]의 계략에 걸려 손도 써보지 못하고 붙잡혀 죽음을 당했다. == 미디어 믹스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양회(삼국지)/기타 창작물)]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양회, version=98, paragraph=3)] [[분류:후한의 인물]][[분류:한나라/무관]][[분류:212년 사망]][[분류:참수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