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앤드루 잭슨)] [include(틀:앤드루 잭슨)] [목차] == 개요 == [[미국]]의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의 생애를 다룬 문서. == 성장기 == 스카치-아이리시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쉽게 말해 [[흙수저]]. 아버지 앤드루 잭슨은 어머니 엘리자베스가 잭슨을 임신 중일 때 사고로 사망했고,[* 앤드루 잭슨이 태어나기 불과 3주 전에 죽었다고 한다.] 형 휴 잭슨과 로버트 잭슨, 그리고 어머니 엘리자베스 허친슨 잭슨까지 모조리 [[미국 독립 전쟁|독립전쟁]]에서 사망하면서,[* 휴 잭슨은 전투에서 [[열사병]]으로 죽는다. 이 전투 이후 로버트와 앤드루가 인질로 감금되고, 도중에 [[천연두]]에 걸리고 만다. 형제가 석방되자 남은 세 가족은 천연두+집으로 돌아가는 64km의 여정+폭우 콤보를 견뎌야 했는데(폭우는 여정의 마지막 2시간 정도만 내렸다), 이 과정에서 로버트가 쇠약해져 죽는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도 조금 있다가 [[콜레라]]로 죽고 만다.] 앤드루 잭슨은 불과 '''14살에 전쟁 고아'''가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닌 결과 [[자수성가]]해 [[변호사]]도 되고 100여명의 흑인 노예를 거느리는 대농장주도 되었다. == 미영전쟁과 올드 히커리 == [[테네시 주]] 의원에 오르면서 정계에 몸을 담기 시작했고, 이후 6년간 테네시 지방의 [[판사]]일도 하다가 [[민병대]] 소장이 되었는데 그가 사령관을 하던 1812년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 시기 [[미영전쟁]]이 벌어진다. 미영전쟁은 결국 양국이 겐트 조약을 맺으며 종료되었지만, 당시 교통사정상 종전 소식이 신속히 전해지지 않아 각지에서는 여전히 전투가 벌어졌다. 그 중 가장 격전지였던 [[뉴올리언스 전투]]에서 잭슨은 지형지물과 포대를 활용하여 3배에 가까운 병력을 물리치고 영국군 1500여명의[* 다만 숫자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으니 유의.] 사상자를 입힌 반면 민병대 전사자는 고작 21명에 그치는 엄청난 전과를 거두면서 일약 전쟁영웅으로 떠오른다. 여기에 [[인디언]] 토벌전에서도 공을 세우면서 자수성가한 인물이라는 점까지 겹쳐 '''올드 히코리(Old Hickory)'''[*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56761&cid=200000000&categoryId=200001742|히코리 나무]]처럼 꺾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하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한국어로 치면 '옹고집 영감' 쯤에 해당하는 별명.]라는 별명과 함께 인기몰이를 하게 된다. == 대선 출마 == || [[파일:Andrew_Jackson.jpg|width=100%]] || || 1824년의 잭슨 || 1824년 처음 출마한 대통령 선거에서는 같은 [[민주공화당(미국)|민주공화당]] 후보였던[* 당시 민주공화당과 대립하던 연방당이 세를 잃으면서, 같은 당임에도 민주공화당 소속 후보들이 대선에 여러명 출마했다.] [[존 퀸시 애덤스]]에게 패배했는데, 선거에서는 1위를 차지했으나 선거인단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해 당시 법 규정에 따라 의회 투표를 치르게 되었는데, 애덤스가 다른 후보인 [[헨리 클레이]]에게 공직 자리를 약속하고 연합해 의회 투표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불만을 품은 잭슨은 애덤스와 클레이가 야합했다고 비난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민주공화당 내의 잭슨 지지파는 [[민주당(미국)|민주당]], 반대파는 [[국민공화당]]([[휘그당(미국)|휘그당]]과 현 [[공화당(미국)|공화당]]의 전신)으로 갈라서게 된다.[* 참고로 [[휘그당]]은 유래 자체가 영국의 그 휘그당과 같았는데, 영국 휘그당은 "반왕정", "반연방" 성향의 당이었다. 허나 휘그당의 전신인 국민공화당은 창당자 존 퀸시 애덤스의 아버지가 미국 초기 연방주의의 대표자격인 존 애덤스였고, 또 휘그당의 후신인 공화당도 19세기엔 연방주의를 주장했다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물론 이런 정당의 성향 변신은 미국사에서 제법 흔한 일이긴 하다. 여당이 되면 연방주의를, 야당이 되면 반연방주의를 주장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것도 현대에 와선 민주당 친연방, 공화당 반연방으로 대개 고정되어있긴 하지만. 참고로 이때의 민주당도 지금의 민주당과는 성향이 상당히 달랐다). 휘그당에는 국민공화당 외 별별 잡세력이 다 모였는데, 심지어 반[[프리메이슨]] 세력도 있었다.] '''미국의 유서깊은 양당제는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1828년 대선에서 앤드루 잭슨은 재선을 노리던 존 퀸시 애덤스를 밀어내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때부터 미국은 재산권과 상관없이 (일부 주가 아닌 모든 주에서) 백인 남성 한정 보통선거제가 도입된다. 참고로 미국에서 흑인 남성은 남북전쟁 이후 19세기 중후반 선거권이 부여되나 현실적 제약은 있었으며, 여자까지 포함하는 연방 단위의 보통선거제는 1920년 이뤄진다.] 이전 미국 대통령들과 달리 '''서민''', '''아웃사이더''' 출신도 대통령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인물인 셈이다. == 재임 시기 == 잭슨이 대통령이 되고 난 후 미국은 정치, 사회적으로 [[대격변]]을 치른다. 그의 시대에는 [[산업혁명]]과 [[서부]]개척이 서서히 이뤄지기 시작하며 엄청난 사회적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 시기 [[노동운동]]은 격화되어 갔고 [[노예제]] 문제로 인한 남부와 북부의 대립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또한 잭슨은 [[관료제]] 개혁과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정책들을 내세웠고 이 시대부터 좀 더 '''대중주의적인 정치'''가 시작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는 동부 출신 엘리트가 아니라 흙수저 출신 대통령인 잭슨이 고인물이던 당시 기득권층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공학적 측면도 있었다.] 물론 동시에 관료제 개혁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엽관제]]의 시작이고, [[아메리카 원주민]]과 노예 문제에는 철저한 [[인종주의]]로 대한데다 [[독불장군]]적인 모습도 많이 보였던 점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때 잭슨은 관례로 취급되어 잘 쓰이지 않았던 [[거부권]] 등 대통령의 권한을 적극 발동하면서 의회와도 대립하였다. 그러면서도 잭슨은 대중주의를 이용해 자신을 민주주의 수호자나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정치인으로 포장하며[*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잭슨의 취임식 땐 흙투성이 장화 따위를 신고 온 농부나 노동자들이 그렇게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이 잭슨과 악수 한번 하려고 몰려들다보니 그 날 백악관은 흙투성이 난장판이 되었다는데, 이들은 잭슨이 '보통 사람들의 시대'를 열어줄 것이라며 환호했다고 한다.] 지지층들을 계속 끌어안는 지도력을 발휘했고, 그 결과 재선에서도 무난히 승리하게 된다. === 잭슨 민주주의(Jacksonian Democracy)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잭슨 민주주의)] == 퇴임 이후 == || [[파일:Andrew_Jackson_end_of_years.jpg|width=280]] || || 1843년의 잭슨[* 이 사진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안경]]을 쓴 국가원수가 찍힌 사진이다. 사실 안경 자체는 잭슨 외에도 많은 미국 대통령들이 썼었으나 그 이미지가 있는 대통령이 별로 없는 것이긴 하다. 대표적으로 남아있는 대통령들이 28대 [[우드로 윌슨]], 33대 [[해리 S. 트루먼]].] ||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는 고향의 농장에서 지내다가 1845년 6월 8일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앤드루 잭슨, version=646, paragraph=2)] [[분류:앤드루 잭슨]][[분류:인물별/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