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1312531 20%, #1B1B47)" '''{{{+1 앙드레 바쟁}}}[br]André Bazin'''}}} ||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앙드레 바쟁.jpg|width=100%]]}}}|| ||<|2> '''출생''' ||[[1918년]] [[4월 8일]] || ||[[프랑스]] [[낭트]] [[페이드라루아르]] [[메네루아르]] [[앙제]] || ||<|2> '''사망''' ||[[1958년]] [[11월 11일]] (향년 40세) || ||[[프랑스]] [[일드프랑스]] [[발드마른]] 노장쉬마른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프랑스)] || || '''직업''' ||[[영화 평론가]], [[배우]], [[작가]] || || '''이력''' ||[[카예 뒤 시네마]] 초대 편집장 || || '''활동''' ||[[1943년]] - [[1958년]]|| [목차] [clearfix] == 개요 == >'''" 영화란 무엇인가? "''' >---- > - 앙드레 바쟁이 쓴 책의 제목. 그가 평생동안 고민한 질문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영화 평론가]]. [[누벨바그]] 거장들[* [[프랑수아 트뤼포]], [[장뤽 고다르]] 등]의 정신적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수많은 작품들을 [[재평가]]하여 영화사와 영화 평론을 재정립한 인물로,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시민 케인]]〉, 〈[[게임의 규칙]]〉과 같은 걸작들을 발굴한 사람도 바로 이 사람. == 소개 == 1918년, 프랑스 앙제[* [[앙제 SCO]]의 연고지]에서 태어나,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공부했다. [[1943년]]부터 영화 평론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1951년]]엔 '[[카예 뒤 시네마]]'를 창간하였다. 앞서 밝혔듯이, 누벨바그 거장들의 정신적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누벨바그라는 경향이 앙드레 바쟁의 영화이론으로부터 뻗어나왔고, 많은 누벨바그 감독들이 앙드레 바쟁이 창간한 '카예 뒤 시네마' 출신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란 [[프랑수아 트뤼포]]에게 바쟁이 많은 후원과 조언을 해주었기에, 트뤼포와는 [[아버지]]와 [[아들]]로 불린다. 그 때문인지 바쟁이 죽은 후, 트뤼포가 나서서 바쟁의 유고를 정리하였다. 1958년, 40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사인]]은 [[백혈병]]. === 발굴 === 앙드레 바쟁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많은 걸작과 거장들을 발굴한 것이 꼽힌다. [[장 르누아르]], [[오슨 웰스]], [[루이스 부뉴엘]][* 〈[[안달루시아의 개]]〉 감독]과 같은 거장들을 발굴하였으며, 〈시민 케인〉, 〈게임의 규칙〉 등의 작품들을 혹평으로부터 구원해냈다. 이러한 발굴 작업은 후계자들에게 이어졌으며, 트뤼포는 [[히치콕]]을 발굴해내었다. 그 가운데 장 르누아르에 대해 애정을 쏟았으며, 장 르누아르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바쟁과 르누아르의 관계는 매우 긴밀하여, 르누아르는 〈게임의 규칙〉 복원판을 바쟁에게 바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정성일 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동의 차이 속에서 반복을 발견해내는 것은 영화 앞에 선 바쟁이며, 반복 속에서 차이를 만드는 것은 역사 속의 르누아르이다. 이로써 영화는 하나의 더 할 나위 없는 완전한 원의 운동이 되는 것이다. > - [[정성일]] [[http://seojae.com/web/kino/kino199802-01.htm|출처]] === 비판 === 광범위했던 활동에도 불구하고, '''일부 작품이나 감독을 간과했다'''는 비판이 있다. 가장 큰 예시로, [[존 포드]]를 등한시했다. 물론 존 포드의 〈[[역마차(영화)|역마차]]〉나 〈[[수색자]]〉 같은 작품엔 호평했으나, 그 평가가 항상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었다. 이는 후계자들인 누벨바그 세대에게도 보이는 면인지라,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는 앙드레 바쟁이 존 포드에 둔감했던 탓이라며 비판했다. 일종의 '바쟁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장르]]와 [[리얼리즘]]을 선호하는 바쟁의 취향을, 후계 비평가들이 그대로 이어받아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는 리얼리즘을 거부하고 영화를 만들었는데, 때문에 바쟁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1980년대]]가 될 때까지 바쟁의 후계자들은 타르콥스키를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앙드레 바쟁이 '선구적인 작품'이라 호평한 〈시민 케인〉, 〈게임의 규칙〉이 언제나 '세계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을 비롯한, 현재까지도 그 힘을 과시하는 바쟁의 영향력으로 인해, 평단 내에서도 바쟁의 권위에 대한 논란이 조금 있다. == 여담 == 한 권의 완성된 책보단 잡지에 투고하는 짧은 글을 더 선호하였기에, 바쟁의 평론은 대다수 잡지글로만 남아있다. 대다수의 바쟁의 책들은 사후에 트뤼포가 유고를 정리·편집하여 출간한 책들이다. 원래 문체가 현학적인데다가 국내 역본들이 모두 딱딱한 [[번역체]]를 구사하는지라, 글 읽기가 조금 난감한 구석이 있다. [[영화제]]를 좋아하지 않아서 [[칸 영화제]]를 비롯해 영화제의 유사-종교적 절차를 비웃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작 칸 영화제는 바쟁관이라는 이름의 영화관을 헌정해버렸다. [[http://annual-parallax.blogspot.com/2011/09/|링크]] == 저서 == * '''영화란 무엇인가?''' (''Qu'est-ce que le cinéma?'') * 장 르누아르 (''Jean Renoir'') | 프랑수아 트뤼포 편집 * 오슨 웰스와 영화 미학 (''Orson Welles: A Critical View'') | 프랑수아 트뤼포 편집 그 외 다수 [[분류:프랑스의 영화 평론가]][[분류:1918년 출생]][[분류:1958년 사망]][[분류:파리 고등사범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