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오스트리아]] [include(틀:역대 합스부르크 네덜란드 총독)] [목차] = 개요 =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의 차녀 [[마리아 크리스티나(오스트리아)|마리아 크리스티나]]의 남편이자 작센 공작 = 생애 = == 합스부르크 황가의 사위가 되다 == 16세기 당시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남녀는 [[정략결혼]]이 당연하던 시대에 알베르토는 오스트리아의 황녀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연애결혼]]을 했다. 합스부르크 왕조가 정략결혼으로 영토를 넓힌 걸 감안하면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크리스티나가 황녀였고 알베르토 본인이 작센 선제후 겸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인 아우구스트 3세의 4남이어서 작센 선제후국의 후계자도 아니었고 다른 작위도 없어서 일국의 황녀의 남편이 되기엔 처지는 조건이었는데도 자유연애 뿐만 아니라 결혼까지 가능했던 이유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수많은 딸들 중 가장 총애했던 황녀였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잃고 우울해하던 1765~1766년,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슬픔에 잠긴 어머니에게 "연애결혼을 허락하면 평생 어머니 곁에 있을 수 있다"고 속삭였다. 결국 그녀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자녀들 중 유일하게 연애결혼을 허락받았다. 이것만으로도 행운인데 결혼하면서 막대한 지참금과 알베르토가 테셴 공작으로 임명되는 특권과 락센부르크의 대저택 등을 선물받았다. 알베르트 역시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의 총독 자리까지 받았다. 크리스티나가 알베르트보다 [[데릴사위|신분이 훨씬 높고 처가에서 여러 작위를 하사받았기에 크리스티나는 결혼 후에도 합스부르크-로트링겐의 성(姓)을 유지하였다]]. == 쓸쓸한 결혼 생활 == 크리스티나와 알베르토 두 사람은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여러모로 편애와 특권까지 받았고 크리스티나는 자신과 같은 이름의 크리스티나란 딸을 낳지만, 난산으로 산모와 아기 모두 죽을 뻔 한다. 아내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목숨을 건졌으나 딸은 다음 날 사망하였다. 이후 크리스타는 [[불임|평생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아내의 동생이었던 [[레오폴트 2세|레오폴트]]와 스페인의 마리아 루이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카를 대공]]을 입양하였다. 마리아 크리스티나 사후 양자 카를이 테셴 공작위를 이어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