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850년 출생]][[분류:1935년 사망]][[분류:독일제국군/군인]][[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분류:독일의 귀족]][[분류:힐데스하임 출신 인물]] [include(틀:1차세계대전기의 독일 제국군 장성급 장교)] |||| '''{{{#fff 독일 제국군 육군 상급대장[br]{{{+1 알렉산더 폰 린징겐}}}[br]Alexander von Linsingen}}}''' ||||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린징겐.jpg|width=100%]]}}} || ||<#666> {{{#FFF 이름}}} ||<(>'''Alexander Adolf August Karl von Linsingen'''[br] 알렉산더 아돌프 아우구스트 카를 폰 린징겐[*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대로는 '폰린징겐'으로 표기한다.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 || ||<#666> {{{#FFF 출생}}} ||<(>[[1850년]] [[2월 10일]][br]{{{-1 [[독일 연방]] [[파일:하노버 왕국 국기.png|height=15]] [[하노버 왕국]]}}} || ||<#666> {{{#FFF 사망}}} ||<(>[[1935년]] [[6월 5일]][br]{{{-1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height=15]] [[나치 독일|독일국]] [[하노버]]}}} || ||<#666> {{{#FFF 복무}}} ||<(> [[프로이센군]](1868년~1871년) [br][[파일:독일 제국 전쟁기.svg|width=25]] [[독일 제국군]](1871년 ~ 1918년) || ||<#666> {{{#FFF 최종 계급}}} ||<(>[[파일:KHeer_OF9_GenOberst_(Bayern)_1918.gif|width=35px]]상급대장 || ||<#666> {{{#FFF 주요 참전}}} ||<(>[[보불전쟁]][br] [[제1차 세계 대전]] || ||<#666> {{{#FFF 주요 서훈}}} ||<(>백엽 [[푸르 르 메리트]] || [목차] [clearfix] == 개요 == 알렉산더 폰 린징겐은 독일 제국 [[육군]] [[장교]]로, [[장군참모]]를 거치지 않고 상급대장까지 단 엄청난 인물이다. 보통 장군참모 과정 없이는 [[장군]]이 되어도 소장 정도밖에 못 단다. == 생애 == 알렉산더 폰 린징겐은 1850년 2월 10일에 태어났다. 린징겐은 1868년 프로이센 육군에 입대하였다. 그는 하노버와 베를린에서 생도생활을 하였다. 1869년 그는 소위로 임관되었다. 그는 [[보불전쟁]]에 참전하며 많은 전투에서 활약을 거두었다. 린징겐은 1870년 제정 철십자 훈장 2급을 받았다. 1874년 11월 1일, 그는 중위로 승진함과 함께, 제 30 보병 연대의 부관이 되었다. 1875년 3월 29일, 린징겐은 하노버에 배치된, 제39 보병 여단의 부관이 되었다. 1878년 10월 12일, 그는 78 보병 여단의 부관이 되었다. 1882년 10월 14일, 린징겐은 대위로 진급하였다. 이후 그는 중대의 중대장이 되었다. 7년뒤, 그는 소령이 되었고, 여러 연대의 연대장이 되었다. 그는 장군참모를 거치지 않고, 소장이 되었고, 81 보병 여단의 여단장이 되었다. 이후 1905년 그는 27사단의 사단장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할때쯤엔 [[마른 전투]]에 참여할 2군단의 군단장이었다. 이후 남부군의 사령관으로 동부전선에 배치되어 스트리이 전투에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승리하고 약 '''60,000명'''의 러시아군 포로를 잡았다. 그 공로로 1915년 5월 14일에 푸르 르 메리트를 받았고, 7월 3일에는 백엽 푸르 르 메리트를 받았다. 이후 린징겐은 버그 군(Bugarmee)의 사령관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린징겐 집단군이 되었다. 그는 1915년 8월 27일, 러시아군에게 빼앗긴 브레스트리토프스크를 되찾아왔다.1916년 6월, 린징겐의 군대는 [[브루실로프 공세]]를 맞았다. 린징겐은 갑작스러운 다른 방법의 공세로 인해 후퇴 할 수 밖에 없었다. 1918년, 린징겐은 상급대장이 되고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의 서명 이후 우크라이나로의 공세에 참여하였다. 이후 [[구스타프 폰 케셀]]이 사망하자, 그의 후임으로 베를린의 총독과 마르켄의 총사령관을 함께 섬겼다. 이후 1918년 11월 9일 전역하였다. 조용히 살다, 1935년 나치독일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장례식은 매우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 [[파일:Staatsbegräbnis_Alexander_v._Linsingen_08.06.1935.jpg|width=500]] || || 린징겐의 장례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