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이슬람의 3대 성지)] [include(틀:우마이야 왕조)] [[파일:1280px-Jerusalem-2013-Temple_Mount-Al-Aqsa_Mosque_(NE_exposure).jpg]] 사원 전면의 모습 [[파일:예루살렘 오스만 성벽.jpg]] 성밖에서 바라본 모습 || [[아랍어]] ||{{{+1 المسجد الأقصى }}}|| [[영어]]: Al-Aqsa mosque [목차] == 개요 == [[예루살렘]]의 [[성전산]]에 있는 [[이슬람]]의 [[모스크]]이다. '알 아크사'라는 명칭은 [[성전산]] 전체를 부르는 한 가지 이름이지만, '알 아크사 모스크'라 하면 성전산 남부 예배당 건물을 가리킨다. == 성지 == [[파일:성전산 예루살렘 팔레스타인.jpg]] 좌측이 알 아크사 모스크, 우측이 바위의 돔이다 [[메카]]의 [[카바]], [[메디나]]의 [[예언자의 모스크]]와 함께 알 아크사 모스크는 [[이슬람]]의 3대 [[성지]]로 꼽힌다.[* 정확히는 성지는 알 아크사와 바위의 돔을 같이 말하는 것이다. 알 아크사도 중요한 성지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함마드가 승천한 장소인 바로 뒷 건물인 바위의 돔이다.] 이곳에서 드리는 예배는 다른 모스크에서 행하는 기도의 천배 효력이 있다 한다. 따라서 라마단 기간에는 이슬람권 각지에서 순례객들이 모여든다. == 역사 == 원래는 동로마 제국의 교회 건물이었으나 [[동로마 제국]]이 [[이슬람/정복|이슬람의 팽창]]으로 예루살렘을 빼앗긴 이후 [[정통 칼리파 시대]]에 [[우마르]]가 예루살렘에 무혈입성하며 이슬람의 관리 하에 놓였다. [[우마이야 왕조]]의 [[아브드 알 말리크]]가 명령하여 691년에 모스크로 개축하고 705년 완공했다. 이후로도 그와 그 아들이 증축하였다. 초창기 이슬람 모스크로 은색 돔을 얹었고 내부도 스테인드글라스와 타일로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지진과 화재 등으로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재건축되었다. 1099년 천주교 라틴 십자군의 예루살렘 성지 탈환의 결과로 알 아크사 모스크는 예루살렘 왕국의 궁전으로 사용되었다. 바로 뒤에 [[바위의 돔]]이 있는데 안쪽 기반암 위에서 하느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할 목적으로 그의 아들인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칠려고 한 장소며, 동시에 [[무함마드]]가 [[승천]]했다가 다시 내려온 곳이다. 또한 다윗이 말년에 평화로운 시기에 독단적으로 인구조사를 하려고 했다가 하느님의 벌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어나가자 다윗이 번제를 드려 재앙을 멈췄던 장소가 이곳이기도 하다. 알 아크사 모스크는 예배를 원활히 하고 승천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기념 모스크이다.[* 소수 이슬람 학자들은 알 아크사 사원 터가 승천 자리라고 주장하지만, 다수설은 바위의 돔이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1951년 요르단의 국왕 [[압둘라 1세]]가 암살당했기 때문에 요르단 출신 여행객들은 한 번쯤은 들른다. == [[2021년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 사건|2021년 팔레스타인인 무력진압 사태]]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2021년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 사건)] >“왜 라마단 기간에 사원을 공격했는가?” “알 아크사 모스크는 무슬림의 성지다. 이스라엘은 종교전쟁을 시작하고 있다” 2021년 5월 이스라엘이 시위대를 무력진압하면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이슬람교의 [[https://m.yna.co.kr/view/AKR20210516056000079|제3성지]]인 이 곳으로 대피한 시위대에게 큰 피해가 발생했으며 이는 유혈 사태의 단초 중 하나가 된다. == [[2023년 알아크사 분쟁]]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2023년 알아크사 분쟁)] [[2023년]] [[4월 5일]], [[이스라엘 경찰]]이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맞이해 염소를 희생시키려는 행사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를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약 400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분류:예루살렘]][[분류:이슬람 성지]][[분류:모스크]][[분류:팔레스타인의 랜드마크]][[분류:화폐의 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