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고려사)] ---- ||'''이름'''||안우경(安遇慶) || ||'''생몰년'''||? ~ 1372 ||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려 [[공민왕]] 시절 서북면도지휘사,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무신. == 생애 == 홍건적 침입 때 공을 세웠다. 1359년 첫 칩인과 1361년 재침입 때 모두 참전하였으며 개경탈환에 참여해 1등 공신이 된 무신이다. 또 흥왕사에서 공민왕 시해 시도가 일어났을 때 밀직사 [[최영]] 등과 함께 난을 진압하여 역시 1등공신에 책록되었다. 별로 유명세는 없지만 꾸준히 왜적방어사, 서북면도지휘사 등을 맡아 외란을 격퇴하는 무장으로 활약하였다. 원나라에서 덕흥군을 왕으로 삼고 기삼보노를 세자로 삼아 최유가 1만 군사로 의주를 포위하였을 때 도지휘사로 싸워 물리친 것도 안우경이다. 그는 [[이성계]]의 지원을 받아 패잔병까지 모조리 소탕하여 압록강 밖으로 쫓아낸다. 이후 1365년 또 침입하여온 홍건적을 평정하여 광문감승에 제수되고, 이어 찬성사가 되었다. 4월 왜구가 강화교동에 침입하였을 때도 찬성사로서 적을 방어하였다. 대체로 최영의 생애와 거의 비슷한 행적을 보이고 거친 관직도 상당히 비슷한데 심지어 최영이 귀양갈 때쯤 안우경도 2년 차이를 두고 신돈 때문에 귀양을 간다. 안우경은 경천흥과 신돈의 제거를 꾀하나 발각되어 남원에 장류되었고 이때 처자는 노비가 되고 가산은 몰수당했다. [[신돈]] 사후 문하찬성사가 되었고, 서경도만호로 오로산성을 쳐서 함락시키고 원나라의 추밀원부사 합랄불화를 사로잡아 돌아왔다. 이로부터 1년 후, 공민왕 21년에 사망한다. [[분류:고려의 군인]][[분류:137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