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안동 지동 2호묘 금동관1.jpg]] [[http://blog.daum.net/kinhj4801/15961717|사진 출처 : 경북대학교 박물관 2 - 실내전시관]] [목차] == 개요 == 1989년 [[경북대학교]]에서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에 위치했던 '안동 지동 고분군'(安東枝洞古墳) 제2호묘에서 출토한 5세기 경 [[신라]]시대 여성용 금동관. 현재 [[경북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안동 지동 2호묘 금동관2.jpg]]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지동에 있었던 안동 지동(혹은 교동) 고분군 제2호묘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동관으로, 유물의 제작 연대는 5세기(서기 400년대) 경으로 확인되었다. 안동 지동 고분은 [[안동시]]의 반변천 서쪽 길비들에 있는 독립된 구릉의 남서 사면 일대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대한민국]] 정부에서 [[임하댐]] 건설을 추진하면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학계에서 긴급히 조사단을 파견하여 1989년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한 두달여간의 급박한 조사 결과 앞트기식(橫口式)으로 추정되는 돌방(石室) 3기, 구덩식 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 6기 등 10여 기의 신라 고분까지는 확인하였으나 당시 시대가 시대상인지라 제대로 된 조사를 마치기 전에 모두 수몰되어 더 많은 고분이 있었는지는 더 이상 확인이 불가능하다. 이 금동관은 2호묘에서 발굴되었으며, 금동관의 서쪽 끝에 피장자의 하악골편이 발견되어 무덤의 주인이 금동관을 착용한 상태에서 매장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덤 주인의 뼈를 조사한 결과 [[남성]]이 아닌 [[여성]]인 것으로 확인되어 이 관은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 [[안동]] 지역의 [[신라]] 여성이 사용하던 것임이 밝혀졌다. [[파일:안동 지동 2호묘 금동관3.jpg]] 출토 당시 금동관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그 우측에 동제의 요패와 철탁이 놓여 있었다. 북장벽에 검초모양의 청동제품, 세환이식, 도자 등이 있었고, 다양한 [[황금]] 유물들과 함께 긴목항아리·고배·배와 방추차 등도 함께 발견되었다. 이 금동관은 전형적인 [[신라]] 양식이지만 대륜에 ‘山’자형 입식 4개를 붙인 것으로 입식의 상하가 분리되지 않고 붙어 있는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양식은 신라 후기에 해당되며, 단양 하리, [[경주시|경주]] 등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1,600여년 전 [[안동]] 지역의 [[신라]] 여성이 사용하던 위세품으로, 신라시대 여성의 사회적 위치 및 안동 지역 금속공예술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분류:신라의 금제유물]] [[분류:경북대학교박물관 소장품]] [[분류:안동시의 문화재]] [[분류:대구광역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