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숲 속의 미마'의 등장인물, rd1=아퀼레이아(숲 속의 미마))] [include(틀:이탈리아의 세계유산)] ||<-2> [[유네스코|{{{#fff '''유네스코'''}}}]] [[세계유산|{{{#fff '''세계유산'''}}}]] || ||<-2>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width=160]] || ||<|2> {{{#ffffff '''이름'''}}} || 아퀼레이아의 유적 지구와 가톨릭 성당 || || Archaeological Area and the Patriarchal Basilica of Aquileia || || {{{#ffffff '''국가·위치'''}}} || [[이탈리아]] [[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 [[우디네]] || || {{{#ffffff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ffffff '''등재연도'''}}} || [[1998년]] || || {{{#ffffff '''등재기준'''}}} || (iii)[* 아퀼레이아는 초기 로마 제국의 가장 크고 부유한 도시 중 하나이다.], (iv)[* 고대 아퀼레이아 유적 대부분이 그대로 발굴되지 않은 채 남아 있어 지중해 지역에서 초기 로마 도시의 가장 완벽한 사례로 손꼽힌다.], (iv)[* 아퀼레이아에 있는 가톨릭 성당은 중세 시대 초기에 중부 유럽의 기독교 전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 ||<-2> [include(틀:지도, 장소=Aquileia, 높이=224px, 너비=100%)] || [[파일:trip-aquileia.jpg|width=500]] 로마 유적 [[파일:aquileia-basilica-01-1.jpg|width=500]] 중세 초기의 바실리카 [clearfix] [목차] == 개요 == {{{+1 Aquileia }}} [[이탈리아]] 동북부에 위치한 도시. [[베네치아]]에서 동쪽으로 125km 떨어져 있으며, 로마 시대의 유적과 바실리카로 유명한 작은 마을이다. 북으로는 [[오스트리아]], 동으로는 [[슬로베니아]]와 마주한 입지 조건 덕분에 과거부터 중부 유럽과의 교류가 잦았다. 과거에는 [[로마 제국]]에서 5위[* [[로마]] - [[알렉산드리아(이집트)|알렉산드리아]] - [[안티오키아]] - [[카르타고]] - 아퀼레이아의 순서] 안에 들고 본국 [[이탈리아 반도]] 한정 제2의 대도시였으나, 452년에 [[훈족]]에게 파괴된 후 쇠락, 현재 인구는 3500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이다. == 역사 == === 로마 시대의 번영 === 기원전 181년에 [[로마인]]들이 [[포 강]] 유역의 이민족이었던 [[갈리아]]인과 이스트리아인에 대항하기 위한 전초 기지로서 건설한 식민 도시이다. 기원전 90년에 자치 도시로 지정되며 귀족 가문들이 이주, 번영하기 시작하였다. 아퀼레이아는 로마 제국 시기에 이탈리아 반도에서 가장 큰 도시 중에 하나였고, 나티사 강[* 당시에는 [[이손초 강]]의 지류였으나 현재는 독립된 강이다.]을 통해 바다로 연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알프스]]를 넘어오는 중부 유럽의 상인들과의 교역이 이루어진 후 [[호박]] 등 [[보헤미아]] 일대의 특산품을 지중해 세계에 보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 역할은 6세기 이후 [[베네치아 공화국]]이 이어받았다. ==== 로마와 중/동유럽의 교통로 ==== 로마 제국과 독일 남부/보헤미아/발칸반도 일대 세력 간의 충돌 시애 아퀼레이아는 항상 그 지휘 본부가 되었다. 이란 세력과의 전쟁에서 안티오키아가 맡았던 역할과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기원전 11년, [[판노니아]][* 현 [[헝가리]].]와 [[일리리아]][* 현 [[크로아티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정복전쟁을 지휘하기 위해서 [[아우구스투스]]가 이곳에 본부를 설치하였다. 168년에 마르코마니족과의 전쟁에서 마지막 5현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아퀼레이아를 요새화 한 후 전쟁의 후방 보급 기지로 삼았다. 이 지역의 율리안 알프스는 낮은 편이라 북쪽 도나우 전선과의 교통이 원활하였기 때문이다. === [[훈족]]의 파괴 === 300여년간 번영하던 도시는 [[3세기의 위기|3세기의 혼란]]을 거치며 쇠퇴하였다. 238년에는 [[막시미누스 트라쿠스|막시미누스 트락스]] [[황제]]가 [[원로원]]과의 내전에서 이 도시를 공격하다가 암살당하기도 하였다. 비록 [[디오클레티아누스]] 시절에 궁전이 세워져 조폐국 기능을 얻는 영광을 얻었지만 425년에 [[라벤나]]로 이전되었다. 아퀼레이아는 452년에 [[아틸라]]의 훈족 군대에게 대대적으로 파괴되어 마을로 전락하였다. 훈족, 그리고 6세기 말의 [[랑고바르드족]]을 피해 달아난 주민들 중 일부는 베네치아 석호 일대에 정착하여 베네치아 공화국의 선조가 되기도 하였다. === 중세 : 종교적 중요성 === [[파일:Aquileia,_Basilica__Interno_-_Foto_Giovanni_Dall'Orto.jpg]] 다만 4세기 초에 건립되어 11세기와 14세기에 보수된 대성당은 1715년까지 총대주교구가 위치하여 종교적 중요성만은 근대까지 유지되었다. 성당 남쪽 홀 바닥을 장식한 모자이크는 6-7세기 ([[동로마 제국]] 시대)의 것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 위치 == 르네상스 도시로 유명한 [[우디네]]에서 남쪽으로 40km 떨어져 있고 몬팔코네와는 서쪽으로 18km 떨어져있다. [[슬로베니아]]와의 국경도시인 [[고리치아]]로부터 서남쪽으로 32km 떨어져 있으며 [[트리에스테]]와는 52km 떨어져 있다. 이 들과는 자동차로 모두 30분 내지 1시간 내외의 거리로 왕래할 수 있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아퀼레이아(숲 속의 미마), version=72, paragraph=3)] [[분류:이탈리아의 도시]][[분류:이탈리아의 세계유산]][[분류:프리울리베네치아줄리아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