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599년 출생]][[분류:1655년 사망]][[분류:청나라의 황족]] 愛新覺羅濟爾哈朗 (1599 ~ 1655) [목차] == 개요 == [[청나라]]의 황족. 태조 [[천명제]] 누르하치의 동생이었던 [[아이신기오로 슈르하치]]의 6남이자 태종 [[숭덕제]] 홍타이지의 사촌 동생이었다. == 행적 == 백부인 누르하치가 어릴 때부터 길렀고, 호쇼이 버일러에 봉해졌으며, [[1626년]]에 동몽골의 할하(칼카) 바린부 및 자루트부 정벌에 참전해 공을 세웠다. [[1627년]]에 일어난 [[정묘호란]]에 참전했을 때 [[인조]]가 사신을 보내 동맹을 요청하자 [[아이신기오로 아민|아민]]이 한양을 공격하려 했는데, 지르가랑은 깊이 들어가지 않고 평산에 주둔하며 대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과의 동맹이 체결되자 돌아갔고 5월에는 홍타이지를 따라 명군을 공격해 금주를 포위한 후 [[아이신기오로 망구르타이|망구르타이]]와 함께 명군을 격파했으며, 영원으로 가서 명군의 총병 만계와 조우하자 힘껏 싸워 격파했다. [[1628년]]에는 [[아이신기오로 호오거]]와 함께 몽골의 구터이 타부낭을 토벌해 죽였다. [[1629년]] 8월에는 명나라를 공격해 금주와 영원을 공격해 곡식을 불태웠으며, 10월에 홍타이지가 군을 인솔해 홍산구로 들어가자 지르가랑은 [[아이신기오로 요토]]와 함께 대안구를 공격하고 마란영의 명나라 구원군을 격파했다. 이후 마란영, 마란구, 대안구 등 3개의 명군 영채를 투항시키고 석문채로 가서 명나라의 구원군을 공격해 격파했다. 준화에서 군을 합쳐 북경에 육박했고, 통주의 장가만을 순행했다가 [[1630년]] 1월에 홍타이지를 따라 영평을 포위했으며, 배반한 장수 유흥조를 공격해 죽이고 유흥조의 동생인 유흥현을 붙잡았다. 영평을 함락한 후에는 격문을 보내 난주와 천안 등을 항복시켰고 3월에 아민이 교대하자 군을 이끌고 돌아갔다. [[1631년]] 7월에 태종 홍타이지가 6부를 설치할 때 형부를 관장했고 황제를 따라 대릉하성을 포위했으며, [[1632년]] 5월에는 동몽골 차하르부(찰합이부)에 대한 정벌전에 종군해 귀화성으로 달려가 무리 1,000여 명을 거뒀다. [[1633년]] 3월에는 수암에 축성을 했고, 이전인 [[1629년]]에 명장 [[원숭환]]에게 참수당한 [[모문룡]] 휘하의 [[공유덕]]과 경중명이 5월, 산동성의 등주에서 항복하려 할 때 명나라의 황룡이 수군을 이끌고 조선과 연합해 이를 공격하려 하자 지르가랑은 [[아이신기오로 아지거]]와 함께 진강으로부터 맞이해 황룡 등을 퇴각시켰다. [[1636년]] 4월에 호쇼이 우전 친왕에 봉해졌고, [[1638년]] 5월에 영원을 공격했으며, 군을 옮겨 모룡관과 오리보의 둔과 대를 함락했다. [[1639년]] 5월에 금주와 송산을 공략해 승리하고 명군 2,000명을 사로잡았으며, [[1640년]] 3월에는 의주성을 수리했고 9월에는 금주를 포위했다가 성 남쪽에 매복을 설치하고 명군이 진군하지 않자 추격해서 격파했다. [[1641년]]에는 금주를 포위한 뒤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포위를 했고 [[1642년]]에 [[조대수]]를 투항시켰으며, 송산, 탑산, 행산 등을 함락시켰다. [[1643년]]에 세조 [[순치제]]가 즉위하자 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도르곤]]과 함께 보정했지만 사실상 도르곤이 국사를 모두 맡았다. 9월에 영원을 공격했고 [[1647년]]에는 왕부의 저택이 정해진 제도를 만든다고 해서 보정을 멈추게 되었다. [[1648년]] 3월에는 친왕 호오거가 황제 옹립을 모의하고 지르가랑을 불러 성취하고자 한 것을 고발하지 않았다면서 체포당해 군왕으로 강등되었다가 4월에 친왕의 작위를 회복했다. 9월에는 정원대장군이 되어 호광을 함락했고 10월에 산동에 머물던 유택청이 배반하자 주살했다. [[1649년]] 1월 장사에 머물렀는데 명나라의 하등교, 마진충, 도양용이 [[이자성]]의 잔당인 일척호와 함께 호남에 근거하자 청군을 나누어 진격해 하등교를 붙잡았으며, 4월에 진주에 머무르다가 일척호가 도주하자 보경을 함락하고 남산파, 대수, 홍강 등 여러 지역의 명군을 격파했다. 7월에 정주를 함락하고 형주를 공격해 양용을 죽였으며, 도주, 여평, 오살토사 등 60여 개 성을 함락했다. [[1651년]] 2월에는 손친왕 만다하이, 단중친왕 보로, 경근친왕 니칸과 함께 친왕 [[도르곤]]의 작위를 삭제해달라고 청했으며, 1652년에는 숙 호쇼이 우전 친왕이 되었고, 1655년에 57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