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D7CBA 0%, #0755A1 30%, #0755A1 70%, #3D7CBA)" {{{#ffffff '''아리고 사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folding ▼ ||<-4> {{{#333333,#cccccc '''둘러보기 틀 모음'''}}} || ||<-4> {{{#333333,#cccccc '''대표팀'''}}} || || [[틀: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파일: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0755A1; font-size: 0.9em" [[틀: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ffffff '''이탈리아'''}}}]]}}}[br]{{{-2 18대}}} || || || || ||<-4> {{{#333333,#cccccc '''클럽'''}}} || || [[틀:AC 밀란 감독|[[파일:AC 밀란 로고.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DE0011; font-size: 0.9em" [[틀:AC 밀란 감독|{{{#000000,#e5e5e5 '''밀란'''}}}]]}}}[br]{{{-2 58대, 61대}}} || [[틀: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파일: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로고(2017~2024).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a81f29; font-size: 0.9em" [[틀: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ffffff '''A. 마드리드'''}}}]]}}}[br]{{{-2 82대}}} || || ||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D7CBA 0%, #0755A1 30%, #0755A1 70%, #3D7CBA)" {{{#ffffff '''아리고 사키의 수상 이력'''}}}}}} || || {{{#!folding ▼ ||<-4> {{{#333333,#cccccc '''둘러보기 틀 모음'''}}} || ||<-4> {{{#333333,#cccccc '''개인 수상'''}}} || || [[틀: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1980년대)|[[파일:World Soccer.pn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ED1C35; font-size: 0.9em" [[틀: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1980년대)|{{{#ffffff '''1989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 || || || ||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D7CBA 0%, #0755A1 30%, #0755A1 70%, #3D7CBA)" {{{#ffffff '''아리고 사키의 기타 정보'''}}}}}} || || {{{#!folding ▼ [include(틀:UEFA 선정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10인)]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rgba(50%, 50%, 50%, 30%) 0%, transparent)" {{{+1 {{{#000000,#e5e5e5 '''이탈리아의 前 축구 감독'''}}}}}}}}}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sptPostArticleImage-59420.jpg|width=100%]]}}} || ||<-2> {{{#000000,#e5e5e5 ''' 이름 ''' }}} || {{{+1 '''아리고 사키'''}}} [br] '''Arrigo Sacchi''' || ||<-2> {{{#000000,#e5e5e5 ''' 출생 ''' }}} ||[[1946년]] [[4월 1일]] ([age(1946-04-01)]세) [br] {{{-2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에밀리아로마냐주]] [[라벤나|라벤나현]] 푸시냐노}}} || ||<-2> {{{#000000,#e5e5e5 ''' 국적 ''' }}} ||[include(틀:국기, 국명=이탈리아)] || ||<-2> {{{#000000,#e5e5e5 ''' 신체 ''' }}} ||[[키(신체)|키]] 170cm || ||<-2> {{{#000000,#e5e5e5 ''' 직업 ''' }}} ||[[축구 선수]] ([[수비수(축구)|수비수]] / ^^은퇴^^)[br][[축구 감독]] ^^은퇴^^ || ||<|3> {{{#000000,#e5e5e5 ''' 소속 ''' }}} || {{{#000000,#e5e5e5 ''' 선수 ''' }}} ||푸시냐노 CF (1964~1977)[br]AC 벨라리아 (1977~1979) || || {{{#000000,#e5e5e5 ''' 감독 ''' }}} ||리미니 칼초 (1982~1983)[br][[ACF 피오렌티나|ACF 피오렌티나 유스]] (1983~1984)[br]리미니 칼초 (1984~1985)[br][[파르마 FC]] (1985~1987)[br]'''[[AC 밀란]] (1987~1991)'''[br]'''[[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 대표팀]] (1991~1996)'''[br][[AC 밀란]] (1996~1997)[br][[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8~1999)[br][[파르마 FC]] (2001) || || {{{#000000,#e5e5e5 ''' 기타 ''' }}} ||{{{-1 [[레알 마드리드 CF]] (2004~2005 / ^^기술 고문^^)}}} || [목차] [clearfix] == 개요 ==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전 [[축구 감독]]. [[토탈 풋볼]]의 창시자 [[리누스 미헬스]], [[카테나치오]]의 창시자 [[엘레니오 에레라]]와 더불어 이른바 [[사키이즘]](압박 축구)을 탄생시키며 현대 축구 전술의 근간을 마련한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AC 밀란]]에서 [[밀란 제너레이션]]을 이끌면서 [[UEFA 챔피언스 리그|유러피언컵]] 2회, [[세리에 A]] 1회 등 총 8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 지도자 경력 == >'''이탈리안 르네상스의 거장[br]master of the Italian renaissance''' >---- > [[UEFA]]에서 축구계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명감독 10인을 꼽으며 남긴 평. >사람들은 종종 결과만 중요하다고 하면서, 미래에 남는 건 커리어뿐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사람의 기억에 남는 것은, 축구의 위대함을 찾아 나설 때 얻어지는 느낌이다. '''가령, 비록 [[파비오 카펠로]]의 [[AC 밀란]]이 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우리는 아리고 사키의 [[밀란 제너레이션|AC 밀란]]을 더 생생하게 기억한다.''' > ---- > [[호르헤 발다노]][* 하단을 보면 알겠지만 사키 시절 밀란의 우승 기록은 카펠로 시절의 밀란보다 챔스만 1번 더 들었을 뿐, 리그 우승부터 4 대 1로 차이가 크다. 더구나 카펠로는 밀란에서 리그 [[무패 우승]]까지 달성했다.] === 세리에 C1, 세리에 B === 감독으로 성공했던 그도 원래는 축구선수를 꿈꾸었으나, 19살이 되던 해 자신의 재능을 깨닫고 축구선수로서는 성공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다가 33세의 나이로 은퇴했는데, [[세리에 D]]의 작은 팀 수비수로 뛰면서 낮에는 구두 세일즈맨을, 밤에는 전술 공부를 하며 불과 26세에 고향의 아마추어 팀 바라카 루고에서 첫 감독 생활을 하지만 베테랑 선수들과의 마찰로 오래 머물진 못한다. 이후 AC 벨라리아, [[AC 체세나]]를 거쳐 레가 프로 프리마 디비시오네[* 흔히 세리에 C1이라 한다.]의 리미니 칼초에서 첫 프로 감독직을 맡게 되나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한다. 이후 피오렌티나의 유스 감독직으로 활동하다 1년 만에 다시 리미니 칼초로 돌아와 팀을 상위권으로 이끌며 당시 3부 리그의 [[파르마 칼초 1913|파르마]]의 러브콜을 받는다. 파르마의 감독직을 수락하며 팀을 [[세리에 B]] 승격으로 이끌고, 당시 명문가 부활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공격적인 선수영입을 하며 강팀으로 재도약하던 전통의 명문 AC 밀란을 [[코파 이탈리아]] 예선과 16강전에서 각각 1:0으로 이기면서 주목을 받게 된다. 결국 간발의 차로 세리에 A 승격에 실패하지만 코파 이탈리아의 경기를 보고 그에게 반한 [[AC 밀란]]의 구단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당시 아마추어 풋내기에 불과하던 그를 당시 밀란 감독인 스웨덴 삼총사이자 밀란의 전설이었던 [[닐스 리드홀름]]을 경질해가면서 감독에 임명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다. === [[AC 밀란]]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tatic.sportskeeda.com/sacchi-1872814.jpg|width=100%]]}}} || 하지만 언론들은 사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구두팔이에 불과한 아마추어 감독이 하루아침에 명문 팀 감독이 된 [[신데렐라]] 스토리는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고 언론은 매일같이 비선수 출신에 불과한 구두팔이에 그가 영입한 검증 안 된 젊은 선수들을 까면서 그를 조롱했지만[* 네덜란드 리그에서 날아다닌 반 바스텐이나 굴리트나 그때 당시엔 의문부호가 붙었다. 같이 영입된 안첼로티는 20대 후반이었다.] 사키는 오히려 "기수(騎手)가 되기 위해서 말(馬)이 될 필요는 없다"라고 응수하며 자신이 영입한 [[카를로 안첼로티]], [[마르코 반 바스텐]], [[루드 굴리트]] 등과 함께 '''부임 첫 해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하며 언론들의 의심을 불식한다. 1988/89 시즌 [[프랑크 레이카르트]]가 합류하면서 훗날 전설로 회자되는 '''[[오렌지 삼총사|{{{#orange 오렌지 삼총사}}}]]'''를 완성하고, 기존의 [[필리포 갈리]], [[마우로 타소티]], [[로베르토 도나도니]], [[프랑코 바레시]] 등의 활약과 [[파올로 말디니]],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알베리고 에바니]],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등 유스 출신 선수들의 포텐이 빵빵 터져주면서 모든 퍼즐이 맞춰졌고, 사키의 전술이 버무려져 세리에 A 우승과 동시에 '''20년 만의 [[유러피언컵]][* UEFA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 우승'''까지 견인한다. 부임 기간 4년 동안 리그 1회 우승, 유러피언컵 2회 우승, [[유러피언 슈퍼컵]] 2회 우승,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회 우승, [[인터컨티넨탈컵]][* [[FIFA 클럽 월드컵]]의 전신.] 2회 우승을 견인하며 유럽을 호령한다. 이후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직 제의를 수락하고 밀란 감독직을 [[파비오 카펠로]]에게 넘겨주고 사임한다.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goal.com/156562hp2.jpg|width=100%]]}}} || || '''{{{#fff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fff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 시절 [[1994 FIFA 월드컵 미국|{{{#ffffff 1994 미국 월드컵}}}]] 도중 [[로베르토 바조|{{{#ffffff 바조}}}]]와 망중한을 보내는 사키.}}}'''[* 각각 한 시대를 풍미한 감독과 선수이지만, 둘의 사이는 매우 좋지 않다.] || 다만,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생각보다 저조한 편이다. 게다가 까다로운 성격과 독단적인 팀 운영 방식으로 여러 선수들과 마찰을 빚어 평은 그다지 좋지 않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로베르토 바조, [[주세페 베르고미]], [[주세페 시뇨리]] 등이 있다. [[UEFA 유로 1992]] 조별 예선에서 세간의 평가와 달리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소련]]에게 밀려 조별 예선에서 [[광탈]]한다. 사실 이때 이탈리아는 사키가 감독을 맡았을 당시 이미 유로 본선 진출조차도 자력으로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후 절차부심하여 참가한 [[1994 FIFA 월드컵 미국|1994 미국 월드컵]]에서 [[AC 밀란]] 수비진을 통째로 뽑아오는 등 만전을 가하지만, 이번에는 공격진이 골을 넣지 못해 골골대다가 각 조 3위 간 경쟁 끝에 가까스로 조별 예선을 통과하고 이후 [[로베르토 바조]]가 끝없는 영웅 플레이로 팀을 결승전까지 인도한다. [[브라질]]과의 [[1994 FIFA 월드컵 미국/결승|결승전]]에서는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를 벌였지만, 영웅이었던 바조가 실축함으로써 준우승에 그친다.[* 바조는 승부차기 실축 때문에 영웅에서 역적으로 추락해 이탈리아 팬들에게 제대로 욕을 얻어먹는다. 그야말로 영웅에서 역적으로 추락해서 [[은퇴]]할 때까지 오만가지 욕을 얻어먹었다. 본인은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지만, 이후 신예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에게 밀려 [[유벤투스 FC|유벤투스]]를 떠나고 방랑 생활을 거듭한다.][* 그러나 이는 사키 감독의 실책도 없지 않은데 승부차기에서 1번 키커로 주장인 [[프랑코 바레시]]를 투입했는데 바레시는 연장 종료 직전에 다리 경련으로 실려나가기까지 했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4번 키커인 [[다니엘레 마사로]]의 경우 대회 내내 제 몫을 못하며 부진한 선수여서 승부차기로 투입할만한 선수도 아니었다. 바조 또한 대회 내내 햄스트링 통증으로 고생했으며, 전반전에도 통증이 올라와 실려갔다가 들어오는 등 경기 내내 부상을 안고 뛰었다. 바조의 실축이 임팩트가 강해서 그렇지 실제 패배 원인은 사키 감독의 키커 선정 탓이 더 큰 것.] 직후 야심차게 준비한 [[UEFA 유로 1996|유로 1996]]에서 또다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체코]] 등에게 밀려 조별 예선 광탈을 함으로써 1996년 11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축구 국가대표팀|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친선 경기를 끝으로 국가대표팀 감독 생활도 막을 내린다. === 그 후 === 1996년 이탈리아 감독직을 사임한 뒤 후임 감독이었던 파비오 카펠로에 이어 다시 AC 밀란에 복귀하게 되지만 리그 11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한 시즌 만에 사임한다. 다음 시즌인 1997/98 시즌에 카펠로가 다시 사키의 후임으로 밀란에 복귀하지만 카펠로 역시 리그 10위를 기록하며 한 시즌 만에 사임하게 된다. 이후 [[라리가]] 무대로 발을 돌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부임하지만 성적이 부진하여 시즌 도중에 경질되었다. 2001년 잠시 [[파르마 FC|파르마]]의 감독직을 역임했고 현역에서 완전히 물러난 뒤, 2004년 [[레알 마드리드 CF|레알 마드리드]]의 기술 고문으로 한 시즌간 재직했다. 이때 [[세르히오 라모스]]를 보고 [[플로렌티노 페레스]]에게 '''"회장, 새로운 [[파올로 말디니|말디니]]가 나타났소"'''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2007년 11월, [[핌 베어벡]] 사임 후 공석이 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직을 두고 [[대한축구협회]]에서 사키에게 감독직을 제안했다는 기사가 떴다.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6&aid=0000083518|#]] 그러나 사키는 "더 이상 감독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라며 명시적으로 거절했다고 한다. 어떤 기사에서는 "감독직 제의는 큰 영광이지만 감독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라고 했다고 한다. --솔직히 사키 정도 명성 가진 감독이 아시아 국대로 올리가..-- 어쨌든 이후에도 감독직은 맡지 않으면서 실제 은퇴하였다. == 전술 철학: [[사키이즘]] == 지금은 당연시되는 지역 방어와 압박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리고 사키는 이 생소한 개념들을 지금의 축구 전술에 있어서 필수적인 개념으로 정착시킨 장본인 중 한명으로 취급받는다. [[사키이즘]]의 가장 큰 쾌거는 [[리누스 미헬스]]가 제창한 [[토탈 풋볼]]을 더욱 효율적으로 완성한 데에 있다. 토탈 풋볼의 신봉자였던 아리고 사키는 이 개념을 당시 이탈리아 축구판에 맞게 현지화할 필요가 있었는데, 특히 '''"압박 축구는 마라도나를 견제하기 위해서 만든 전술이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던 아리고 사키는 당대 세리에A를 휘젓던 [[마라도나]]를 견제하기 위해 4-4-2 포메이션을 확립하고, 각각의 포메이션을 3선 혹은 4선으로 나눠서 각각의 선수가 그 지역을 커버하는 개념을 제창했다. 예를 들어 [[밀란 제너레이션]]과 당시 [[디에고 마라도나|마라도나]]가 이끄는 [[SSC 나폴리]]가 붙었고, 마라도나가 나폴리 진영에서 공을 잡은 경우를 상정해보자. * 1차적으로 전방의 [[마르코 반 바스텐|반 바스텐]]-[[로베르토 도나도니|도나도니]]-[[루드 굴리트|굴리트]]-콜롬보가 마라도나를 압박한다. * 그런데 마라도나가 이 압박을 뚫어내고 밀란의 왼쪽 진영으로 파고든다면, 2차로 도나도니-[[카를로 안첼로티|안첼로티]]-굴리트-[[프랑크 레이카르트|레이카르트]]가 마라도나를 압박한다. * 그런데 또 마라도나가 그것을 뚫고 밀란의 왼쪽 진영으로 들어간다면, 3차로 안첼로티-레이카르트-[[파올로 말디니|말디니]]가 마라도나를 압박한다. 거기다 뼛속까지 토탈인 굴리트까지 압박에 가담할 수 있다. * 그런데 마라도나가 이것마저 뚫고 밀란의 후방 중앙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자. 그러면 레이카르트/안첼로티-말디니-바레시 그리고 이 시점에서는 코스타쿠르타까지 가담하여 마라도나를 압박한다. 물론 뼛속까지 토탈인 굴리트는 여기에 또 낄 수도 있다. 이렇게 3선, 4선에 걸쳐서 상대방의 공격 전개를 방치하지 않고 계속해서 강하게 압박하는 축구는 사키이즘의 절대 명제였다. 물론 [[사기 캐릭터|혼자 그걸 다 뚫는다면 할 말 없지만]], 마라도나급 축구도사가 아닌 딴에야 아니 그 마라도나조차도 혼자선 웬만큼 컨디션 좋지 않고선 뚫을 수 없는게 압박 축구였다. 그리고 이런 압박 축구의 효율성이 입증되자, 여러 팀에서도 이 개념을 차용하면서 현대 축구에선 다소간 수준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 적용하고 있는 개념이다. 참고로 위에서는 수비적인 압박만 언급했지만 [[밀란 제너레이션]]은 공격적 압박도 역대급인 팀이었다. 상황에 따라서 공격적으로도 수비적으로도 강한 팀이 될 수 있는 전술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 영향력 === 축구계에서 사키가 남긴 발자취는 크다. 상기했듯 [[사키이즘]]이라 불리는 압박 축구 전술을 구사해 이후 현대 축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0년대 후반 당대 최강의 팀이자 [[요한 크루이프|크루이프즘]]의 후계자로 평가받는 [[펩 과르디올라|펩]]이 이끌던 [[FC 바르셀로나|바르사]]마저 사키의 전술을 많이 차용했고--크루사키즘--[* 다만 상기했듯 두 개념 모두 토탈 풋볼에서 영향을 받은 개념이긴 하다. 크루이프즘은 대놓고 적자고, 사키이즘은 --사파-- 토탈 풋볼의 압박 개념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전술이라고 볼 수 있다. 크루이프즘이 숏 패스와 주도권 축구로 대표된다면(다만 사키이즘에 비교되면서 압박 개념이 마치 없는 것마냥 매도되기도 하는데, 애초에 토탈 풋볼 시절부터 압박은 중요한 개념이었다. 크루이프 역시도 공을 뺏기면 바로 되찾아오기 위해 압박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키이즘은 지역 방어와 압박 개념을 접목시켰다.], [[위르겐 클롭]] 감독의 [[게겐 프레싱]]도 사키이즘에서 사실상 진화한 개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키의 제자로 꼽히는 감독으로는 [[프랑크 레이카르트]], [[마르코 반 바스텐]], [[루드 굴리트]], [[카를로 안첼로티]], [[로베르토 도나도니]] 등이 있다. 한편, 제자는 아니지만 2003-04 무패 우승 시즌 당시 [[아르센 벵거]] 감독의 [[아스날 FC|아스날]]이 사용한 4-4-2도 당시엔 사키이즘의 극대화로 평가받기도 했다. == 감독 기록 == === 대회 기록 === * [[파르마 FC]] (1985~1987, 2001) * 세리에 C1: 1985-86 * [[AC 밀란]] (1987~1991, 1996~1997) * [[세리에 A]]: 1987-88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988 * [[UEFA 챔피언스 리그|유러피언컵]]: 1988-89, 1989-90 * [[유러피언 슈퍼컵]]: 1989, 1990 * [[인터컨티넨탈컵]]: 1989, 1990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1991~1996) * [[FIFA 월드컵]] 준우승: 1994 === 개인 수상 === * 유럽 올해의 축구 감독[* 제프 헤르베르거 어워드]: 1989 * 유럽 시즌의 축구 감독: 1989-90 *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 1989 * 세미나토레도로: 1988, 1989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2011 * UEFA 회장상: 2022 === 수훈 ===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3등급: 2012 == 인종차별 논란 == * [[인종차별]]성 발언을 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제일 호되게 당한 케이스가 '''"이태리 국대에 흑인이 너무 많다"'''라는 소리를 한 것이었는데 당연히 주변에서 많은 비판을 했고 거상 에이전트 [[미노 라이올라]]는 '''"이런 인간들 때문에 세리에가 이 모양이야…. 이런 말 볼 때마다 부끄러워 죽겠어"'''라면서 사키를 깠고 심지어 [[제프 블라터]]마저 사키를 대차게 깠다. 집중적으로 비판을 받다 보니 아리고 사키도 변명을 했는데 그 변명이라는 게 '''"나 코치였을 때 흑인 선수 많이 썼다. 그러니까 나 인종차별주의자 아니다. 난 그저 이탈리아 국대에 흑인 선수가 너무 많아서 이탈리아 국대의 아이덴티티가 흐려지는 게 걱정되었을 뿐"'''이라는 발언이어서 오히려 욕을 더 바가지로 먹었다. [[http://www.espnfc.us/italy/story/2302871/ex-italy-boss-arrigo-sacchi-clarifies-too-many-black-players-comments|#]] 물론 사키가 뭘 걱정한진 알겠지만 이미 국적 시대로 글로벌 추세가 바뀌는 시점에 인종, 민족으로 정체성을 따지는 것부터가 구시대, 선천적인 요소만 가지고 하는 [[편견]]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 여담 == *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2018 러시아 월드컵]]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F조|본선 F조]]에서 벌어진 [[신태용호/2018 FIFA 월드컵 러시아/독일전|대한민국과 독일의 최종전]]을 시청한 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대표팀]]은) 투지와 결정력에서 승리할 자격이 충분했다"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https://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09&aid=0003812968|기사]] * 2021년 10월,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436&aid=0000050297|인터뷰]]를 통해 현대 축구에서 본인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감독이 누구인 거 같냐는 물음에 [[리버풀 FC|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감독과 [[맨체스터 시티 FC|맨체스터 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을 꼽았다. 이어서 "펩과 클롭은 축구를 진보하게 하는 위대한 이들이며, 그러한 감독들이 없다면 축구는 죽을 것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또한 사키는 클롭의 리버풀을 보고 [[걸작]]이라는 표현과 함께 진정한 팀이라는 극찬을 남기기도 했다. 자신의 다음 생에는 [[EPL]] 감독이 되어보고 싶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 2000년대 중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엔 이미 은퇴 상태로, 감독으로의 복귀는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늘 말을 했고 역시 영광스러운 제안이지만 마찬가지로 현장으로의 복귀는 불가능하다면서 거절했다. 오랫동안 실전무대에서 활동을 안한 것도 한몫했을듯. == 둘러보기 == [include(틀:1994 FIFA 월드컵 미국 참가 감독)] [각주] [[분류:1946년 출생]][[분류:1964년 데뷔]][[분류:1979년 은퇴]][[분류:에밀리아로마냐 주 출신 인물]][[분류:이탈리아의 축구선수]][[분류:이탈리아의 축구감독/은퇴·사망]][[분류:수비수]][[분류: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분류:AC 밀란/역대 감독]][[분류:ACF 피오렌티나/역대 감독]][[분류:파르마 칼초 1913/역대 감독]][[분류: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역대 감독]][[분류:UEFA 챔피언스 리그 다회 우승 감독]][[분류:1994 FIFA 월드컵 미국 참가 감독]][[분류:UEFA 유로 1996 참가 감독]][[분류:FIFA 월드컵 준우승 감독]][[분류:1964년 데뷔]][[분류:1979년 은퇴]][[분류:축구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