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티크펠트(Adolf Dickfeld : 1910년 2월 20일~2009년 5월 17일)''' [[분류:1910년 출생]][[분류:2009년 사망]] [목차] == 무선통신사에서 비행사로 == [[독일 제국]] 시절인 1910년 2월 20일에 [[브란덴부르크]] 왕국의 유터보크(Jüterbog)에서 [[육군]] 포병장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그가 처음 열정을 쏟은 취미는 바로 [[HAM|무선통신]]이었다. 1928년에 여느때처럼 교신을 엿듣다가 부근에 [[비행선]]이 추락하고 있다는 통신을 듣고는 곧바로 교신을 시도해 예상 착륙 위치를 알아내 일단의 친구들을 이끌고 달려가 추락한 비행선의 승무원들을 구조하는 작업을 도왔다. 이때가 바로 티크펠트가 비행이라는 매력적인 취미에 빠져들게 된 첫 계기였다. 이렇게 비행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글라이더]]에 대해 배운 그는 [[실레지아]] 지방에 있는 활공비행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때 그가 솔로비행을 할 때까지 조종에 관해 가르쳐 준 강사가 바로 저명한 여류 비행사 한나 라이치였다. 젊은 티크펠트는 글라이더 업계와 조종사들과 친분을 널리 쌓을 수 있었는데, 이때 그는 혼베르크의 엔지니어 겸 비행사 볼프 히스(Wolf Hirth)에게 [[항공기]] 구조에 관한 지식을 배울 수 있었고, 독일 최고의 활공 비행사로 일컬어지던 하이니 디트마르(Heini Dittmar)나 오스카 우르시너스(Oskar Ursinus) 같은 일류 조종사들과 교류하며 점점 비행에 깊이 빠져들었다. 결국 [[공군]]에 입대하기로 마음을 먹은 그는 1937년 3월 1일에 [[루프트바페]]의 전투비행학교에 입교하게 된다. == 서부전선에서 동부전선까지 == [[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 그는 독일 공군의 최정예 부대인 제52전투항공단(JG52)에 속해 있었다. [[프랑스 침공]] 작전에서 첫 실전에 데뷔한 그는 [[그리스]]와 [[크레타]] 침공 작전에 연이어 참가했고, 종래는 곧 침공을 개시하게 될 [[러시아]]에서 작전하기 위해 [[루마니아]] 공군 기지에 전개했다. 티크펠트는 8월 15일에 첫 격추를 신고하면서 자신의 격추 행진을 시작하게 된다. 1942년 3월 19일에 47번째 승리를 거둔 아돌프 티크펠트는 기사철십자훈장이 주어졌지만, 그의 활약은 그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5월 17일까지 그는 90대의 스코어를 헤아리고 있었지만, 그 다음날인 18일에는 하루에 무려 10대를 격파하는 기염을 토하며 루프트바페 통산 8번째로 100대 격추라는 초인적인 무공을 쌓아올렸다. 당시는 100대 격추라는 전공은 상상할 수도 없던 시절이었으며, 그로 인하여 이런 엑스페아텐 에이스들은 군의 [[프로파간다]]나 홍보에 동원되기 일쑤였다. 티크펠트 또한 군 상층부에서 그런 유혹의 손길이 다가왔지만, 묵묵히 계속 출격을 이어나가며 1942년이 저물 때까지 자신의 기록을 129대로 만들어 놓았다. == 부상과 지상근무 == [[제3제국]]의 패색이 점차 드리워지던 1943년 이후 [[브레멘]] 방공 임무에 나선 그는 여러 대의 중폭격기를 떨구는 활약을 펼쳤으나, 결국 [[P-47]]에게 격추되어 불시착하면서 [[척추]]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 그를 진단한 [[군의관]]은 비행금지 선고를 내렸다. [[헤르만 괴링]]은 티크펠트에게 [[히틀러 유겐트]] 비행 감찰관(Reich Inspekteur der Flieger Hitler Jugend)이라는 지상근무 보직을 주었다. 이 직함은 [[나치당]]에 입당한 청소년들을 장차 조종사로 활용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아돌프 티크펠트 [[대령]]은 전쟁 동안 무려 1,072회나 출격하며 136대의 적기를 격추했는데, 그중에서 128기는 [[독소전]]에서 거둔 전과였다. 또한 그의 주장에 따르면 1945년 4월 11일에는 1기의 P-47을 제트전투기 하인켈 [[He 162]]로 격추한 전과도 있으며, Bü 181 [[훈련기]]의 날개 밑에 로켓을 장착하고 소련 [[전차]]를 잡아낸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 노년 == 종전 후에도 비행사 일꺼리를 구하는데 성공한 그는 작은 수송기를 몰고 독일과 북아프리카를 오가며 비행을 계속했다. 나이를 먹고 은퇴한 후에는 자신이 20대 시절 글라이더를 몰곤 했던 [[다름슈타트]] 부근에 자택을 짓고 99세까지 장수하다가 2009년에 세상을 떠났다. == 서훈 == 1급 [[철십자 훈장]] (1940년 1월 12일) 공군 명예컵 (1941년 12월 15일) [[독일 십자훈장|독일 황금십자장]] (1942년 1월 22일) 기사철십자 훈장 (1942년 3월 19일) 곡엽기사철십자 훈장 (1942년 5월 19일) 불가리아군 공로 훈장(Орден за Военна Заслуга) 국방군 보고 언급 1회 [include(틀:2차 세계대전/전투기 에이스 52~66위)] [[분류:에이스 파일럿]][[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브란덴부르크 주 출신 인물]]